요즘 친구의 설득에 넘어가 같이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둘째를 낳고서는 몸이 예전처럼 잘 돌아오지 않아서 안그래도 동네 Leisure centre에 일주일에 두번 정도 운동을 다니고 있긴 했다. 그러다 친구 T가 자신이 예전부터 다니던 헬스클럽 회원권을 다시 끊어서 다닐 생각인데 같이 다니자고 꼬시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레저센터 (공공체육시설?)을 이용해서 일주일에 두번을 다니면 한달에 대략 30파운드정도인데, 친구가 말하는 사설 헬스클럽 회원권은 한달에 60파운드가 넘는지라 계속 망설이다가, 먼저 가입한 친구추천으로 일주일 무료 시설 체험을 해보고 결국 가입하기로 결정! 아무래도 회원으로 유지되는 곳이라 헬스장 공간도 꽤 넓고 각종 다양한 도구와 기계들이 구비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상담도 잘해준다. 이왕 돈을 쓴거 일주일에 3-4번씩 꼬박꼬박 가서 운동하고, 수영하고, 자쿠지도 갔다가 스팀룸까지 가고, 샤워까지 다 하고 오는 편인데.... 이 헬스클럽이 얼마나 좋은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은게 아니라... 거기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청소부들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 사설 헬스클럽은 그 이름과 돈값을 하기 위해서인지, 청소부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갈때마다 항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청소를 하고 있다. 다들 대략 젊은 편이고, 얼굴색도 다양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지만, 들어보면 다들 악센트가 섞여있다. 여성 전용 탈의실에도 매번 한 두명이 거의 수시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바닥을 청소하고, 보관함을 청소하고, 샤워실을 청소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티나게 내 앞길을 가로막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도리어 정반대로,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이라고 지시를 받기라고 한 것처럼 아주 조용히 사람들의 동선을 미리 피해다니며 청소한다. 당신이 지나가고 나면, 행여라도 당신이 떨어뜨린 머리카락에 대해 당신이 무안해하거나 미안해할까봐 바로 달려와 머리카락을 치우지 않고, 당신이 시야에서 벗어나고 나면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당신이 남긴 흔적들을 지워버린다;; 그러다 행여라도 그들과 나의 간격이 50센치 정도로 가까워지면 아주 미안하다는 말투로 "sorry, sorry" 하면서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심지어 며칠 전에는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져서 탈의실에 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청소부가 핸드폰이 울리자 화장실로 들어가 조용하게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이런 철두한 습성(?!) 탓에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별로 눈치채지도 못하는 듯했다. 친구 T에게 여성 전용 탈의실에서 언제나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젊은 여자 청소부에 대해 말을 했을 때, 친구는 몰랐다는 듯, "uh, yeah?" (어, 그래?) 하는 정도로 반응했으니까. 자기는 잘 몰랐다며.. 언젠가 샤워를 끝내고 나왔을 때, 밖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던 한 여자는 내가 오자 타월로 살짝 몸을 가렸다. 거기에는 내가 오기 전부터 청소부가 보관함 하나하나를 다 닦으며 청소하고 있었는데;;;
물론 청소부들을 인식하지 못하는게 무슨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그 곳에 운동하러 가는 거지, 청소 상태를 점검하러 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공간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시켜 주는 그들의 노력이 감탄스럽긴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그들은 그들이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 어쩌면 딱히 특별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위선'이라는 말까지 끄집어내서 청소부들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런 그들을 인식하고 있는 내가 그들을 보면서 '불편하다'라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2002년에 처음 영국에 발을 내딛고, 몇달을 굶주림과 돈없음으로 고생하다가, 주위에 호텔에 청소부로라도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다른 어학원 학생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무나 다 될 수 있다는 대형 수퍼마켓 캐셔도 안되고, 웬만한 청소일도 다 인맥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에 좌절했던 시절들. 그래 어쩌면 내가 그 입장에 있어봤기 때문에 그들을 인식할 수 있는 걸 수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 그들이 그런 입장이지 않을까, 하고 짐작하는 거지, 실제 그들에게는 그게 그저 '직업' 이상 이하의 의미는 없을 수도 있다) 거기에 요즘에는 연구 분야가 그 쪽이라 매일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읽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다'라는 감정이 든거다. 왜? 그들이 내게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에? 아니면 내 개인적인 삶에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로 계급화되는 일면을 보기 싫어서? 그럼 도대체 뭘 원하는 건가? 지금도 충분히 그림자처럼 일하고 있는 사람들더러 이제는 아예 투명인간이 되어 일하라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우습게도 National Trust로 지정되어 있던 거대한 저택에 갔을 때, 거기 안내인이 그 저택의 예전 소유자였던 귀족은 집사 정도를 제외한 하인들을 자기 집에서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보이지 않는 많은 뒷문과 계단들로 하인들이 돌아다니고, 그들의 숙소도 대부분 지하이거나 다락에 있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딱히 그 귀족뿐 아니라 그 당시에는 그게 대부분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허허. 그 생각까지 떠올리게 되자, 그제서야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그 '불편하다'는 감정을 느끼는게, 아예 그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고약하고 위선적이구나... 싶으면서...
또 하나.
몇 주 후면 다같이 친하게 지내는 그룹의 친구 H의 40살 생일이다. 그래서 H와 가장 친한 친구 L이 H 몰래 따로 채팅방을 만들어서 H의 40세 생일이니 특별한 선물을 해주는게 어떻느냐고 제안했다. 그래봐야 5-10파운드 정도 각자 내는 정도겠지만, 거기에 나를 헬스클럽으로 인도한 T가 자기는 지금 출산휴가 중이라 사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고 먼저 발을 뺐다. 그러자 두달에 한번은 꼭 스파에 가서 마사지를 받는 M이 자기는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를 준비하느라 예산이 빠듯하다며 발을 뺐고, 거의 매일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사먹는 C는 새로 태어난 둘째 여권과 비자 준비를 하느라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안되겠다고 거절했고, 아이의 옷과 장난감에 전혀 돈을 아끼지 않는 D는 좀 있다 미국에 휴가갈 계획이라 따로 여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먼저 말을 꺼낸 L과 남편의 정신분열증세로 국가보조금을 받고 있는 K와 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 우리는 그녀들이 5-10파운드를 쓸 수 없을만큼 쪼달리는 상황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돈을 H에게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는 걸. 그렇지만, 누구도 그걸 인정하며 말하지 않았고, L과 K도 실망스럽다는 말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선물에 대한 의견이 나왔을 때, 해봐야 30파운드 이내의 선물을 준비하거나, 그게 아니면 작은 선물과 괜찮은 초콜렛 박스와 와인, 꽃다발 정도를 준비하겠지, 하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달리, L이 50파운드가 훨씬 넘는 고가 브랜드의 스카프를 제시한거다. 그리고 거기서 우습게도 난 또 살짝 기분이 상해버렸다. 왜?
H는 이혼 후 늘 돈이 없다고 얘기를 하고, 같이 뭘 먹으러 가더라도 돈을 잘 내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자기 아이를 위해서는 온갖 비싸고 교육에 좋다고 소문난 모든 장난감을 사다주고 (대부분 그녀의 부모가 돈을 낸다), 유기농 친환경 등등의 고가 브랜드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 '친환경' 이미지로 유명한 고가의 브랜드 스카프는 그녀가 정말 딱 좋아할 만한 선물이다. 그러니 그건 그녀의 생일 선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건데, L이 그걸 얘기했을 때, "정말 좋은 선택이야" 라고 말하는 대신 난 기분이 상한거다. 왜?
그 기분 언저리를 쑤시고 쑤셔서 들어가보니, 난 그녀에게 그정도의 선물을 해줄 마음이 없었던 거다.. -_- 그녀의 아이 생일마다 내가 공들이고 돈을 들여서 해준 선물들 대신, 내 아이가 그녀에게 받은 5파운드도 안되는 작은 책 선물 하나에 기분이 상했었고, 내 생일이라고 만난 자리에서 내가 그녀의 음료수도 샀던 것이나, 생일 선물이라고 L, K, 그리고 그녀가 내게 준 내가 먹지도 않는 아이들 젤리 한 봉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생일인데, 그렇다고 5-10파운드를 못낼 만큼 쪼달리는 형편도 아니면서 '미안, 나도 못낼 것 같은데' 하기에는 너무 속보일거 같아서, 선뜻 'Sure, count me in'이라고 하긴 했지만. 미리 발뺀 그녀들이나 나나 속마음은 다를게 없었던 거다. 차라리 그녀들처럼 대놓고 발을 빼는게 낫지, 나처럼 아닌 척, 신경쓰는 척 하면서 막상 그녀가 좋아할 선물을 사주려니 속이 꼬여버린거지... -_- 나란 인간... 하아....
이 모든 감정들을 다 끄집어내서 날것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그녀나 그녀의 아이나 생일이 고작 일주일 차이이기 때문에, 그녀의 아이 선물을 역시나 그녀가 좋아할 만한 원목 친환경 재료로 만든 걸 사주고, L에게는 어차피 그녀 아이 생일 선물로 돈을 꽤 썼기 때문에 그녀 생일 선물에 돈을 보탤 수는 있지만, 원래 내가 생각한 이상의 돈은 못낼 것 같다고 얘기했다. 우리 중 돈씀씀이가 가장 큰 L는 아주 쿨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
남편은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안되느냐고 말한다. 그냥 싫으면 싫다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에 대해서도 굳이 그렇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그게 안되는 걸 어쩌겠니;;; 그래서 매일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 위선적인 생각에 대해 몇번이고 속을 쑤셔대곤 한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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