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동거의 경험: 처음부터 끝까지
요즘 뒤늦게 추천받아 찾아보고 있는 한국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바로 '비정상회담'입니다 ㅎㅎ 저같은 경우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작위적인 모습들이 싫어서 예능에 외국인이 나오는 것 자체를 잘 안보는데요, 그래서 이것도 추천받았으니 한번 예의상 보자, 하는 맘으로 봤는데 재밌더군요 @@ 주제나 토론 내용을 보다가 이렇게 글 쓸 소재도 생각나고 말이죠 ㅎㅎ
독립, 동거 등이 주제였던 첫화 보다가 덩달아 생각나서 써보는 동거 경험담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하길 아무래도 제가 결혼을 안했더라면 이렇게 동거 경험에 대해 오픈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싶더라구요. 저같은 경우 한국에서도 생각이 개방적인 편에 속했지만, 늘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좀 꺼려지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뭐랄까.. 바로 잣대가 들여대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특히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여자들끼리는 부끄러워서 그런지 다들 말을 안하는 분위기고, 남자들과는 그들이 먼저 성적인 농담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여자인 내가 같이 끼어들어 웃으면 이상하게 보거나 핀잔까지 받는 경우도 생기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있기엔 분위기가 또 이상하고.. (그래서 갑자기 생각나는 건데, 여자들이 있을 때 일부러 그런 성적인 주제를 농담인 듯 꺼내는 남자들이 있어요. 아무래도 여자들 반응을 살피는 것 같기도 하고, 여자가 아는체 하면 정색을 하고 또 뭘 받아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부끄러워 하면 그걸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좀 변태!스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죠;;) 어쨌건, 그 땐 내가 서른이 되면 얼굴이 두꺼워져서 말할 수 있게 될까,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여자들에게 성적인 발언이 허용되는 건 ‘결혼'이란 타이틀을 따고 난 후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 한국에 아무리 성적으로 좀 오픈된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남자들이 주가 되거나 여자라도 아줌마들이 대부분인 것 처럼 말이죠.
어쨌건 이제 저도 애 둘 딸린 아줌마란 타이틀을 달았으니, 혼전동거로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경험담을 풀어보죠 ㅎㅎ
1. 동거의 시작
저 같은 경우 유학과 동시에 제대로된 독립을 시작했는데요. 캠브리지에서 유학할 때 전 북쪽에 살았고 그 당시 남자친구는 남쪽에 살았어요. 그래서 무슨 행사나 술자리 같은게 있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술취한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가느니 그냥 가까운 사람의 방에서 자고 가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제 숙소와 그 친구 숙소 계약 기간 만료가 겹쳐지면서 동거 얘기가 나왔어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같이 집을 구해서 살래? 그런 말이 오간거죠. 만약 한국에서처럼 누구 한 사람이라도 부모님과 살고 있거나 하는 상황이였다면 집을 나와서 이성과 동거한다는 사실이 아주 큰 결심으로 여겨졌을텐데.. 제 경우에는 둘다 독립해 나와 있는 상황이라서, 내가 있던 집을 나와 다른 사람과 산다, 같은 큰 의미로 고민하진 않았어요. 다만, 저 역시 가족 아닌 다른 사람과 한 집에 살았던 경험이 없었던 까닭에 다른 사람과 내 공간을 나눠쓸 수 있을까, 정도의 고민이 있었죠. 그리고 이제껏 방세만 내면 되었던 학교 기숙사 생활을 벗어나는 거라서, 집을 구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세금을 어떻게 내는 건지 등에 관한 지식 부족으로 좀 긴장했었어요 (이런 부분은 사실 처음 집나와 자취같은 걸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 했을 고민이죠). 어쨌건 다행히 남자친구는 이미 집을 구해서 살아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좀 쉬웠고, 따로 가구등 투자할 필요가 없이 다 갖춰진 (Fully furnished) 방 2개짜리 Flat을 얻어 첫번째 동거를 시작했죠.
두번째 동거는 지금 남편이 된 사람과였는데, 당시 3명이 같이 집을 빌려 살고있던 남편네 집에 하우스메이트 한명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새로운 입주자를 구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제게 제안을 해서 들어가게 되었죠.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내다가 집 재계약을 할 시기가 왔을 때 남편과 둘만 살 수 있는 집을 구해 둘만의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런 시작은 아무래도 영국이고 학생들이 많은 도시라 가능했던거 같고, 보통은 이미 나와 살고 있는 사람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식으로 많이들 시작하죠. 좀 나이가 있어서 자기 집이 있는 경우에는, 둘 중 한명의 집은 월세로 내주거나 하고 한집에 합치더라구요.
2. 동거전에 미리 생각하고 의논할 것들
일단 동거할 때는 둘다 비슷한 마음일 때 실패가 적어요. 그 실패라는게 관계의 쫑남만 말하는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랄까요... 관계가 한쪽으로 기운 상태에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 관계에서 감정적이든 물질적이든 을인 사람이 갑인 사람 눈치를 보고, 가정부처럼 일을 도맡아 하고.. 나중에는 집에 가는 것 자체가 고문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친구나 그냥 남이면 한판 대놓고 붙거나 그냥 딴 집 알아서 나가면 되는데, 이게 연인관계라서 스스로도 행복하진 않은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차라리 동거를 하기 전에 모든걸 하나하나 따져서 생각해보고 의논한 후, 결정하는게 좋아요. 집세 등 금전문제는 어떻게 할건지, 상대방은 어떤 하루의 패턴으로 사는지 (기상/취침시간 등), 특별히 따지는건 없는지 (예, 옷이 아무데나 널려있는 건 못본다. 설거지는 밥먹자마자 해야한다, 잘 때는 완전히 어두워야한다, 등등) 그런 거에 대해 둘이 얘길 많이 해보는거죠. 특히 내가 상대방의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 그런 건 좀더 확실히 따져야해요. 내가 들어가는 대신 집세나 생활비 얼마를 내겠다, 그런데 난 꼭 저녁마다 목욕을 해야한다, 등 이런 식으로 내가 얹혀살러 가는게 아니라 같이 살러 간다는 걸 둘 모두에게 상기시키는거죠.
그리고 가능하면 동거할 때는 신혼부부 흉내 내려고 하지 말고, 하우스 쉐어 하는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신혼부부 놀이는 정말 결혼했을 때 하고, 이건 저 사람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한 연애다, 라는 맘가짐으로 말이죠~
3. 같이 산다는 것
친구든 타인이든 같이 자취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니예요. 그리고 차라리 별 감정없는 남이면 내 공간, 네 공간 나눠쓸 수라도 있지만, 연인이다보니 공간 구분이 잘 없어지거든요. 비정상회담에 나온 사람들이 동거가 불편할 때는 싸웠을 때라고 말한 것처럼 내 공간이 필요할 때 그걸 누릴 수 없을 때 힘들어요.
특히 영국처럼 저녁이면 모든 가게 등이 문을 닫아서 펍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경우, 괜히 밖에 나가서 거리를 서성이는게 더 무서운 경우, 근처에 막 찾아가도 되는 친구가 살지 않는 경우 싸우고 나면 정말 힘들죠. 그나마 저같은 경우는 최소 방이 2개이거나 하나라도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곳에 살았기 때문에 싸우고나면 서로 공간 하나를 차지하고 가라앉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는데요.. 영국에서 스튜디오라고 부르는 한국의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한다면 .. 글쎄요, 이런 얘기하기 좀 웃기지만, 싸웠을 때를 대비해 비상 탈출 공간을 미리 만들어 두시든지 (차라든지, 근처 조용하고 오래 문여는 까페나 바라든지..), 아니면 미리 싸웠을 때 우린 이렇게 풀자, 뭐 이런 타협을 같이 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네요 ㅎㅎ
4. 동거가 결혼은 아니다
이게 보편적인 한국 여자들의 심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여자들은 남자의 집에 가면 현모양처에 빙의해야할 것 같은 기분을 느껴요. 그래서 그런지 혼자 사는 남자친구 집에 찾아가서 청소나 요리해주는 우렁각시들도 생겨나고, 남자친구 집에 가서 그 어머니랑 고부갈등 현장체험 하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게 동거 상황이 되면 아침에 달콤한 목소리로 남자친구를 깨우고 저녁에는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둬야 할 것 같은 신혼부부놀이의 덫(!)에 빠질 수 있게되죠;;
저도 첫 동거때 왠지 저녁은 내가 차려야 할 것 같고, 성격에 안맞게 늘 청소도 하려고 하고.. 그랬는데 얼마못가서 성질이 폭발했죠;; 나도 쉬고 싶은데 왜 내 집에서 쉬지도 못하나 싶고, 왜 나 혼자 집안일에 얽매여야하는지 짜증도 나고, 남자친구에게 너 내가 하는 일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거 아니냐고 싸움도 걸고;; 그런데 그 당시 남자친구 말로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줄 알았다는거예요. 원래 요리를 좋아하나 보다, 매일 청소하는 타입인가 보다, 그럼 난 어지르지나 말아야겠다, 뭐 그런 식으로 자기 나름의 배려(!)와 적응(!)을 하고 있었다는거죠 ㅡㅡ
그렇게 일단 일상생활에서의 조정을 마치고 나니 매일 스트레스 받는 건 줄어들더군요. 두번째 동거 때에는 단둘이서 바로 시작했던게 아니라 3명이서 집안일을 나눠하는 시스템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둘이서만 살게 되었을 때도 그 시스템을 대략 유지했어요. 대신 나름의 조율방법이 생겼죠. 예를 들면 남편은 설거지하거나 다림질 하는걸 싫어하지만, 전 욕실청소나 청소기 돌리는걸 안좋아해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일들을 나눠하는거죠. 그리고 그건 결혼한 지금도 비슷하게 유지된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동거할 때는 연애와 하우스쉐어의 중간 정도를 유지하는게 가장 좋지않나 싶어요. 연인이라는 달달함으로 같이 요리해서 밥먹고, 주말에는 아침 커피 향기와 함께 오래 침대에서 늦장 부릴 수 있고, 잠옷 상태로 하루종일 같이 영화라도 보면서 노는, 그런 연인사이에서만 가능한건 누리되, 다른 현실적인 부분들은 하우스쉐어하듯 적당한 선으로 나눠하는거죠. 특히 금전관계를 철저히 하면서 말예요 (개인적으로 부부는 공동체라 니돈이 내돈 할 수 있지만, 동거인 연애관계에서 금전문제는 좀 나눠서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5. 1번 동거의 경험이 있는 사람보다 10번의 연애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겠다?
흔하게들 동거는 무조건 여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혼전동거는 좋지 않다, 결혼으로 연결될게 아닌 이상 동거는 안된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요… 그런 말이 나오는게 어떻게 보면 여전히 한국에 은연중에 남아있는 성에 대한 차별이랄까, 성적인 부분을 터부시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딱 까놓고 말해서 동거했던 여자는 문란(?)하다, 볼장 다봤다, 뭐 그런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피할려고 하는거잖아요. 솔직히 요즘 20대 이후의 연애에서 섹스까지 이어지지 않는 연애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위의 질문을 바꿔서 예전에 1명과 섹스했던 사람과 10명의 사람과 섹스했던 사람 중 누굴 선택할거냐, 했을 때도 ‘난 10명의 사람과 섹스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겠다'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솔직히 저 같은 경우는 사귀는 사람이 현재에 나만을 바라본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 별로 연연해 하지도 않고, 도리어 그 사람의 현재 연애법에 좀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왜 그런 습관이 생겼는지 과거연애를 물어보고 원인을 찾으려는 (?!) 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동거를 같이 했던 남자친구 같은 경우, 저 이전에도 동거의 경험이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별로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았어요. 지금 남편이 된 사람 역시 제 과거 동거 경험을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게 누군지도 잘 아는 사이였지만 거기에 대해 별로 문제제기를 하지도 않았구요. 도리어 제가 신경썼던 남자친구들의 과거의 상대는 현재에도 영향감이 남아있는 여자들이였죠. 헤어진지가 언젠데 새벽이면 가끔 문자나 전화를 하던 여자, 남자친구가 생겼기에 이제 자긴 미련없다 그대신 친구로 지내자 같은 헛소릴 해대며 아침이나 주말마다 안부(?) 연락 따윌 해오는 여자, 새로운 여자친구 (저죠;;)가 생겼다는 소릴 어디서 전해듣고 눈에 띄기만 하면 가만 안두겠다라는 협박(!) 메일/전화를 해대던 여자 등등… 하여간 뭐가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도리어 신경쓰였지, 완전 헤어지고 정리되어서 박스 하나 정도로 마무리 되어버린 남자친구의 예전 동거녀는 별로;;
그렇지만, 아무래도 같이 사는 거다보니, 예전 과거의 흔적을 다 불태우라거나(!) 버리라고 할 순 없는거지만, 그렇다고 버젓히 전시해놓고 살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동거를 시작하기 전에 각자 과거의 흔적은 박스 같은 거에 싸서 덮어두고 서로 열어보지 않기로 했답니다. (사실 지금도 저희집 다락방에는 ‘Do not open’ 상자가 몇개 있어요 ㅎㅎ)
6. 동거를 하면 사람이 보이고 관계의 미래가 보인다.
보통 연애를 할 때, 가능하면 이런 저런 모습을 다 보라고 하잖아요. 특히 만취했을 때의 모습이라든지 말이죠. 그런데 정말 같이 살아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제대로 되요;; 연애때야 얼마든지 꾸미고 포장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집에서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안되니까요. 매일 생활을 같이 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나눠하다보면, 그 사람의 여러가지 면을 다 발견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도 모르고 있던 면들도 발견이 가능하죠. 그런 면들이 정말 잘 맞아떨어질 수도 있고, 갈수록 정이 떨어질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점이 안맞는 건 정말 싫다' 같은 한계점을 찾기도 해요.
저 같은 경우, 첫번째 동거를 통해 알게된 한계점이라면, ‘말뿐인 사람은 정말 싫다'였거든요. 예를 들면, 언제까지 세금같은 걸 납부해야 하는데, 그걸 남자친구가 ‘내가 하겠다'라고 했는데, 자꾸 그게 미뤄지는거예요. 처음에는 ‘미안, 오늘 바빠서' 그러다가, 나중에는 ‘왜 꼭 내가 해야하느냐' 같은 소리가 나오면 정말 사람 미치겠더라구요. 차라리 ‘미안, 아무래도 일이 많이 밀려서 못할 것 같은데 네가 대신해줄 수 있겠냐'라고 했으면 다시 조절이 가능했을텐데.. 이런 식으로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불신이 쌓이더군요;;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말 나랑 딱 맞다, 라는 관계가 얼마나 될지, 아니 있기는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같이 살다보면 이 관계가 어디로 갈지, 대략 감이 와요. 동거에서 보여지는 현실의 모습이 결혼했을 때 볼 수 있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특히 앞에서 말한 그 한계점을 발견했을 때 조율이 불가능하다면 뭐 대략 결론은 난거죠;;
특히 동거하다가 정말 얘랑 뭐가 안맞는 거 같아, 자꾸 싸우네, 우리 왜이러지, 권태기인가, 등등의 생각이 들면 그건 ‘사랑이 식어서' 그런거라기 보다, 그 사람과 정말 사는 방식이 안맞아서 그런 경우가 많은거니, 어떻게든 다시 사랑을 불태워보겠다고 와인에 촛불같은 거 준비하는 것 보다 차라리 냉정하게 관계를 돌아보는게 나을지도요;;;;
7. 동거의 끝은 때로 복잡하고 후유증은 크다
동거에서 가장 안좋은 점이라면 바로 헤어질 때죠. 물론 이혼할 때도 그렇겠지만, 이혼할 때는 뭐랄까.. 법적 절차같은게 있잖아요? 그리고 이혼소리 나올 정도면 가족들까지 아는 상황일 때가 많고, 그래서 임시로 예전에 살던 집으로 대피도 가능하고, 대놓고 욕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신세한탄도 해볼 수 있고 말이죠. 그런데 동거는 철저하게 두 사람이 알아서 끝을 지어야 해요. 특히 한국처럼 동거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으면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도 어디가서 뭐라 속도 못풀죠..
가장 큰 문제는 누가 나가느냐, 나가면 어딜 가느냐, 일텐데요. 비정상회담에서 나온 것처럼 보증금과 월세를 내면 월세가 나간다, 한 사람이 원래 살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경우 들어온 사람이 다시 나간다, 뭐 그런 규칙 아닌 규칙이 있긴한데요, 저처럼 둘이 같이 동거를 하자, 하고 집에 대한 부담을 반반해서 들어온 경우 보통 ‘헤어지자'라고 먼저 말한 사람, 그 관계를 더 못견디는 사람이 집을 나갑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사람이 집세를 다 감당해야 하느냐, 그게 아니고 여전히 집세를 반씩 낸다면 나간 사람은 새로 방을 구해야 하니 돈이 두배로 나가는거 아니냐, 등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는데… 그건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죠;;
저같은 경우, 첫번째 동거의 끝을 제가 냈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ㅜ_ㅜ) 거실에서 따로 자는 걸 얼마동안 하다가 주별로 돈을 낼 수 있는 방을 급히 구해 일단 간단한 짐만 꾸려 나갔죠. 월세는 이미 낸 상태라서 두달 정도 방세만 두 배가 나가다가, 짐을 다 뺀 후 남자친구와의 합의하에 동거할 당시의 집세는 내지 않기로 했어요.
이런 물질적인 것들 외에 동거의 진정한 단점은 바로 정신적인 후유증이 크다는 거죠. 특히 같이 살던 집에 남게 되는 사람일 경우 이별의 타격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할까요… 떠난 사람이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 시작하니 어찌어찌 마음 정리라도 한다지만,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한 사람이 나가버린 빈 공간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건 지옥같은 경험이니까요;; 그냥 연애하다 헤어져도 같이 자주 갔던 카페나 공원 앞만 지나쳐도 가슴이 아파 운다는데, 같이 살다 헤어지면 이건 뭐… ;;; 혼자 이별을 곱씹을 공간조차 박탈당한거라고 할까요… 집에서 밥을 먹어도, 심지어 이를 닦을 때에도 그 사람의 빈자리가 확 느껴지죠. 만약 내 집에 상대방이 들어와 살다가 그 사람을 보는 것조차 끔찍해져서 내가 헤어지자고 한 후 쫒아내 버린 거라면 뭐 그나마 후유증이 적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특히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보통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이 나가기 때문에, 남겨진 사람은 이별을 당함과 동시에 이별의 잔재들도 다 끌어안아야 하니까 상처가 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도 빨리 다른 집을 찾아 이사가는 거지만… 이사가 그리 쉬운가요.. 그래서 동거하다 헤어지는게 그냥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 보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타격이 크답니다;;
……
결론적으로, 전 꼭 결혼 전에 동거를 해봐야 한다 하는 편도 아니고, 결혼이 전제가 아니라면 동거는 절대 안된다, 하는 편도 아니지만, 만약 동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런 점들은 꼭 생각해봤음 좋겠어요.
- 동거를 시작하기 전에 동거에 대해 둘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는게 좋아요. 단순히 ‘같이 살아보는게 어때?’가 아니라, 본인의 생활패턴이라든지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금전분담, 가사분담 등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눠보고 둘다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시작하는게 좋다는 거죠.
- 동거를 시작하기 전 미리 ‘비상시 대비책'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게 좋아요. 이 관계가 틀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한 대비를 해두는 거죠. 당장 나가야 할 상황이 왔을 때 갈 수 있는 친한 친구집이라든가, 그게 아니면 모텔에서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돈이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준비는 해두는게 나중에 도움이 된답니다.
- 동거를 정말 주위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시작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믿을 만한 친구 한사람이라도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다, 정도는 알아두는게 안전(!)하달까요. 그런 경우가 절대 없길 바라지만… 어떤 이유로든 동거를 시작했는데 막상 그게 악몽같은 상황으로 변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원하지 않는데도 같이 산다는 이유로 성적관계를 강요당하거나,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 폭력이든 그런 경우가 한번이라도 발생하면 주위에 도움을 바로 청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 동거 하는 동안에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대화가 적어지는 기이현상을 경험할 수도 있어요 - 가족들이 늘 일상의 일들을 다 얘기하고 나누지 않는 것처럼 그냥 익숙해져버린달까요.. 그럴 수록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작은 거라도 신경쓰이는게 있으면 얘기하고 어떻게든 풀고 넘어가는게 좋아요. 안그러면 서로 알아서 해석하고, 오해하고, 내가 봐준다, 라는 생각으로 살고, 말해봐야 변하는 것도 없다,하면서 체념하고.. 그럼 나중에는 내가 어제 쓰레기를 버렸다, 난 오늘 설거지를 했다, 뭐 이런 자질구레한걸로 시작된 싸움이 관계를 끝내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마지막으로… 동거한 후 1년이 되어도 더이상 관계의 진전이 없으면 그렇게 3년, 5년을 살아도 진전은 없어요 -_- 그 진전이라는게 결혼약속을 말하는게 아니라, 뭐랄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 같은 거랄까요… 마지막 예를 들자면, 저같은 경우, 첫번째 동거를 했을 때는 참 재미있고 뭐가 잘 맞았어요. 둘다 취미가 비슷했고, 한번 몰두하면 거기에 빠지는 타입이라 죽이 잘 맞았죠. 그런데 그런 여가생활을 제외하고 실제 생활에서는 한자리에서 머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막말로 둘다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게임만 할 순 없는거잖아요;; 실제로 그 때 남자친구는 미래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어물쩍 넘기고, ‘왜 굳이 그런것까지 생각해야 하느냐' 뭐 그런 식의 반응까지 나와서 이별을 결심하는데 큰 도움(!)을 줬죠…
지금의 남편과는 늘 뭔가 관계라든지 미래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고갔고, 서로 꿈꾸는 미래에 대한 조율도 원만히 이루워지는 편이였어요. 그대신 취미같은 건 좀 달라서 아쉽긴 했지만..
그러니 만약 둘 다 동거로만 관계가 이어져도 상관없다, 라는 입장이 아니라면, 특히 동거를 시작한 한 쪽이 ‘결론은 결혼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몇년 같이 살았는데 내년에는 결혼하자고 하겠지' 하는 기대따윈 버리시라고 하고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한창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연애를 해볼 어린 나이에는 동거는 가급적 피하라고 권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