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외국인 시부모님과의 2주일

민토리_blog 2014. 8. 13. 05:17

이제야 밝히자면, 제 남편은 스페인 사람입니다. 둘다 가족들과 떨어져 영국에 공부/일하러 왔다가 만난 케이스죠. 제 가족들이 외국여행과 거리가 멀고, 영어도 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게 제 시부모님들도 젊었던 한 때야 여행을 즐기셨을지 몰라도 지금은 스페인 밖으로 거의 안나오시고 영어도 하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일년에 한 두번 찾아뵐까 하는 정도인데요. 남편의 10년이 넘는 타지생활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밖으로는 거의 안나오시던 분들이 이번에 둘째의 출산을 맞아 2주간 영국으로 오시기로 했죠.


제가 시부모님댁에 가서 머무는 건, 뭐랄까, 그분들의 생활 영역으로 제가 들어가는 거라서, 그저 얌전히 그분들의 생활패턴에만 익숙해지면 함께 지내는 건 별 문제가 없었는데요. 그 분들이 제 생활영역에 들어오는 건 또 좀 다른 문제더군요;; 그래서 그 다른 경험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1. 집안정리가 힘들면 마음이라도 비워야 한다


첫째 출산 했을 때에도 시부모님이 일주일간 다녀가시긴 하셨는데, 그 때는 첫째를 출산하고 한달이 지난 후였죠. 그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움직일만 했고, 아기도 대충 생활패턴이 잡혀가고 있었던 때라, 오시기 전에 미리미리 청소해두고, 정리해두고, 장도 봐두고, 식사준비도 해놓고, 심지어 케잌까지 구워놨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라서 첫째를 봐주신다는 이유로 출산예정일 일주일 후에 오시기로 하셨는데, 예정일이 5일 늦어진데다가 그 전부터 매일 진통에 시달렸던 터라 (그리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청소를 하는 즉시 다음날 꼬맹이가 한시간만 집에서 놀면 다시 난장판이 된다고 할까요;;;), 집안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죠. 그리고 출산 후 병원에서도 이틀을 머물러서 시부모님이 도착하시는 바로 전날에야 집에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디 마음이 그런가요;;; 시부모님이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하시는 터라, 남편이 마중간 사이 제 정신이 아닌 몸으로 일단 보이는 것들만 치우고 정리하려 했는데, 으아... 무리더군요 ㅜ_ㅜ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시어머니는 천으로 된 모든 것들을 매일 다림질 하시고, 매일 청소하시는 것도 모잘라 일주일에 한 번 청소도우미까지 부르셔서 모든 크리스탈로 된 것 등을 닦아내시고 유리창 청소에 커텐까지 새로 가는 분이시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처음 며칠은 그저 조용히 넘어가셨는데, 그 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집안의 정리상태가 바뀌기 시작하더라구요. 식사가 끝나면 바로 설거지하시고, 주방 바닥까지 다 청소하시고, 그럴 때마다 전 안절부절 (모유수유의 경우, 처음 며칠은 아직 젖이 돌지 않아 아기가 젖을 오래 자주 빨아요), 매번 '놔두세요, 제가 나중에 할게요'하면, 이런 건 빨리 제때 치워놔야 한다고 하시니… 그렇게 정리를 해주시니 고맙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내 공간'이였던 주방 및 집안의 정리 구조가 시어머니 방식대로 바뀌어 가는 걸 보는게 또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더라구요;;


이런 불편한 마음도 며칠 잠을 못자서 비몽사몽한 날들이 계속되니 슬슬 없어지긴 하더군요 ㅎㅎ 그런 고민할 시간에 잠이나 조금 더 자두자, 하는 마음까지 스물스물 들고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마음을 비우기로 했답니다. 이런 엉망인 집안 상태가 단지 출산을 앞두고 경황이 없어서 벌어진 거라고 믿으시길 바라면서 말이죠 ㅎㅎ;;


2. Comida, Comida! (음식)


이 부분이 시부모님이 와계시는 동안 제일 힘든 부분이였어요 ㅜ_ㅜ 솔직히 말해서, 영국이 음식 문화로 그렇게 유명한 건 아니잖아요? 외국인들이 영국와서 가장 많이 불평한다는게 음식과 날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 특히 스페인에 비하면 정말 영국음식은 비교할 게 아니죠;; 거기에 더해서, 제 시부모님은 미식가로 유명하신데, 스페인에서도 괜찮고 맛좋기로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시는 건 물론, 음식에 관해서는 돈도 아끼지 않으시죠. 그리고 몇해전부터 친자연적, 유기농, 대체 음식 등에 관심을 가지시면서 시중에 파는 평범한 빵이나, 우유, 치즈, 그런 거 말고 Deli 같은 곳에서 쇼핑을 하시고, gluten-free, dairy-free 제품들도 많이 드시구요.. 그런 점들이 제가 스페인에 가서 머물 땐 정말 좋았는데, 막상 여기서 음식 대접할 걸 생각하니 막막해지더라구요. 전에 오셨을 때는 제가 나름 집에서 이것저것 요리해 드렸기 때문에 왠만큼 넘어갔고, 밖에서 먹을 때는 영국행이 처음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영국의 전형적인 요리'라는 점을 강조해, Sunday Roast, Fish’n chips, Pie, Jacket potato, English breakfast 같은 것도 드셔보시라 권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두번째라 이미 드셔보신 음식들에는 호불호가 갈려져서.. ‘새로움' 만으로는 어필하기 부족했죠;; 그런데 저희가 사는 곳은 외딴 마을이라 근처에 괜찮은 음식점 찾기도 어렵고, 그래서 오시기 전부터 여기 친구들에게 수소문해서 괜찮다는 음식점을 추천받고, 그것도 모잘라 인터넷으로 리뷰까지 꼼꼼히 확인해 봤답니다. 그렇게 했어도, 5군데 중 1군데 정도 만족하셨다고 할까요 ㅎㅎ;;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보통 Comida (점심 식사)가 하루 중 가장 중요한데, 대부분 3코스 정식메뉴로 1-2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먹죠. 샌드위치라 하더라도, 뜨거운 재료들로 준비된 Bocadillo에 익숙하신 분들이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진 차가운 샌드위치에 고작해야 감자칩이나 풀때기 몇개가 샐러드랍시고 곁들어진,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이면 끝날 영국의 흔한 점심식사에 만족하실리는 없었구요. 날이 좋아도 잔디밭에 앉아먹는 것보다는, 편하게 앉아서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어딜 가든 음식점을 찾는게 가장 힘든 일이였답니다. 사실 남편도 스페인 사람이라 이런 문화에 익숙하고, 저 역시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먹는게 좋긴 한데, 문제는 첫째 꼬맹이죠. 이제 한창 걷고, 뛰고, 타고 오르고, 폴짝거리는 꼬맹이를 식탁 앞에 앉혀둘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한시간. 그런데 그 한시간으로 충분한 적은 거의 없더란 말이죠. 그래서 음식점을 찾을 때 대부분 아기가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곳 (또 그런 곳은 아이들이 많아서 산만하기 때문에 대부분 제외)이나 큰 정원이 딸려있거나 근처에 공원이 딸린 곳으로 선택해서, 남편과 제가 나중에 번갈아 아기를 데리고 나가 놀면서 시부모님이 식사를 다 마치실 때까지 기다렸더랬죠.


나중에는 첫째가 유치원에 가있는 오전시간 동안 브런치를 먹으러 가거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딜 가더라도 식사를 하는데 2-3시간을 소요해서 정작 모시고 간 곳을 둘러보거나 쇼핑을 하신 기억은 거의없네요;;


3. 새로운 언어의 장벽


그래요, 제발 영어라도 좀 하셨으면 좋겠어요 ㅜ_ㅜ 저같은 경우는, 생각이 좀 노인스러워 그런지 여기서도 연세가 많으신 친구(!)분들이 많은 편인데요. 제 2의 부모님으로 모시는 네덜란드 부모님들도 그렇고, 여기서 종종 찾아뵙는 70세가 넘으신 M 자매분들도 그렇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의 부모님들 등, 나이 차이는 괜찮은데… 언어는 정말… 예전에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고, 영어도 할 줄 알기때문에 스페인어 단어를 짐작하는 데는 별로 무리가 없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 스페인어는 서당에서 3년 산 개가 풍월 읊는 수준이랄까요… 그리고 언어의 오묘함이랄까 그런게, 자꾸 듣다보면 정말 귀가 트이게 되있어요. 그리고 말하는 사람을 더 잘 알수록 그 사람의 말을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되죠. 그런 이유로, 제 시부모님과는 오래 뵙다보니 왠만한 건 문맥상으로 다 짐작해서 알아듣고,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는 편인데요. 이것도 사실 제 뇌가 제대로 작동할 때 말이지, 하루에 4시간 정도의 잠도 계속 선잠처럼 깼다 잤다 하는 걸 반복해서 뇌가 제 정신이 아니게 되면, 스페인어는 개뿔 영어, 한국어도 기억이 안나게 된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와계신 동안에는 아기 둘, 어른 넷이 움직이는 거라 보통 차 두대가 움직여야 했는데요. 제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냥 아기들만 태우고 가고 싶었는데, 이 사람들이 나름으로 저를 배려해준다고 첫째와 시아버지는 남편차에, 둘째와 시어머니는 제 차에 타는 걸로 결정이 났는데.. 시어머니께서 제 말동무 해주시려고 타신다는데 그걸 싫다 할 수는 없었지만, 안그래도 잠을 못자서 피곤한 상태에 처음 가는 길을 운전하느라 곤두선 신경에다가, 시어머니의 빠른 스페인어까지 더해질 때면 정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울고 싶더군요 ㅠ_ㅠ


사실 이렇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 어떻게든 제대로된 스페인어 공부를 하자고 매번 맘을 다잡기는 하는데.. 영국에서는 굳이 스페인어를 쓸 일이 없으니 게을러지게 되고, 스페인에서는 일단 간단한 언어소통이 가능하니 그저 매일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공부는 따로 안하게 되고 ㅜ_ㅜ;;


이번에도 다시 맘을 다잡고 스페인어 어플리케이션을 깔아다가 매일 저녁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동안 공부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얼마나 갈란지요 에휴…


4.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


결혼이라는 주제 뒤에는 늘 시월드니, 고부갈등이니 하는 말이 따라붙는 것처럼, 시댁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냐는 나라, 문화, 언어를 떠나 개인의 사정일 때가 많은데요 (흔하게 외국인 - 서양 - 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시댁에서 간섭도 별로 안한다더라, 시월드 걱정 안해도 된다더라, 하고 믿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이건 정말 개인따라 다르답니다. 여기서도 간섭하는 시어머니들 많고, 밉살스런 시누이들도 많아요. 여전히 자기 부모 품 못벗어나는 남자들도 많고 말이죠;;). 그래도 서로가 자라온 환경, 문화 등에 대한 이해가 적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한정될수록, 좋은 관계를 맺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지죠.


국제결혼 하신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부모님 되시는 분들의 세대에 여행을 많이 하셔서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대해 개방된 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지금 저희 세대보다 확실히 적죠. 그래서 아무리 남편이 10년 넘은 외국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부모님 같은 경우는 유럽을 벗어난 곳을 여행해 본 적도 없으시고, 그 분들에게 특히 ‘동양인'이란 어느 거리에 있는 모든 잡화를 싼 값으로 팔고 있는 가게의 ‘중국인'이 다죠 (영국에서 중국인들은 다들 ‘Chinese takeaway’에서 일하는 줄 알지만, 스페인에서 중국인들은 다들 잡화점 아니면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그 동양인들은 스페인에서 전통으로 지켜지는 시에스타 동안의 휴점도 무시하고 낮이고 밤이고 늘 문을 열어서 관광객들을 끌어가는데다가, 어처구니 없이 싼값으로 물건을 팔아서, 다른 스페인 가게들을 망하게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고, 특히 한국 같은 경우는 스페인의 조선 사업을 망하게 한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할까요.

그리고 실제로 거리에서 관광객이 아닌 동양인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제가 남편의 집에 처음 방문했던 2009년만 해도, 제가 낮에 거리를 걸어다니면 지역 사람들이 저를 빤히 보는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스페인은 영국보다 외국인에 대한 개방 정도가 적은 것 같아요. 어쨌건 그러다 보니, 스페인에서 자라오신 시부모님께서 그냥 동양도 아니고 한국에 대해서 잘 아실리가 만무했죠. 그래서 어떨 때는 제가 뭘하면 뭐라 말씀은 안하시는데 뭐랄까.. 낯선 눈빛으로 절 보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번에 시부모님이 와계실 때, 저 같은 경우 하루에 최소 한끼는 미역국을 먹자, 라고 다짐하고 먹곤 했는데. 그럴 때면 뭐라 말씀은 안하시는데.. 좀 부자연스런 침묵이 흐른다고 할까요.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미리 ‘한국에서는 출산 후에 다들 미역국을 먹는다’ 하고 말씀드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냉장고에 있는 김치를 치워야 하는가 싶어서 걱정했었는데, 그것도 남편이 미리 ‘(저)는 김치를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자연스레 먹는 음식이다. 그러니 냄새가 난다고 해서 뭐라 하지 마라'하고 말씀드렸다더군요. 그런 남편의 배려 덕에 따로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는 없어서 좋았는데, 그렇다고 그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였죠.


그래도 지금은 시부모님 나름으로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셔서, 어디서 ‘한국' 소리만 들으면 메모해 두셨다가 제가 갈 때마다 말씀해주신답니다. (예를 들면 자주 보시는 티비 드라마에 나오는 동양인이 한국계 스페인인이라더라, 전에 어디에서 합창제가 있었는데 거기에 한국인 합창단이 왔었다더라, 등등..)


그러고 보면, 국제 결혼에서는 정말 부부의 역할이 중요한거 같아요. 특히 시댁/친정댁과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저희 같은 경우, 서로가 서로의 부모에게 어떻게 말을 전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확 달라지니까요.


…………………


대체적으로 자기 아들이 국제 결혼을 했을 때, 외국인 시부모님들의 가장 큰 걱정은 대략 두가지 인 것 같은데요. 첫째는 이 여자가 내 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데려가려고 하는가, 그리고 둘째는 내 손자 손녀가 우릴 모르고 자라면 어쩌나,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남편이야 절 만나기 전부터 외국에 나와 살고 있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지만, 예전에 만나던 영국인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부모님을 소개받았을 때, 그 어머니가 가장 궁금해 하시던 건 제가 얼마나 영국에 머물 것이며, 나중에 영국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꺼냐, 하는 거였거든요.

두번째 경우는 지금 시부모님이 가장 걱정하시는 거죠. 첫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편에게 아기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라고 몇번을 당부시키고, 꼭 적어도 2주간격으로는 스카입 통화를 하려고 남편에게 늘 연락하신답니다. 이번에 둘째를 낳고 나니, 첫째 유치원도 알아보고 둘째 육아도 도와주신다고 미리 스페인에 몇달 와있을 수 있냐고 조심스레 물으시더군요.


어쨌건 이런 저런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와주셔서 감사했고, 첫째와 아주 잘 놀아주신 덕분에 첫째가 둘째를 좀더 쉽게 받아들였고, 저도 좀더 쉴 수 있었어요. 나중에는 가시는게 아쉬울 정도로 말이죠 ㅎㅎ 다른 분들은 외국인 시부모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