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엄마로 만난 사람들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민토리_blog 2014. 5. 26. 00:51

오늘은 정말 아줌마 같은 수다.. 


임신 35주째. 요즘엔 정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첫째때에는 없던 배 당김과 골반통증까지.. 그것때문에 벌써 몇번째 병원을 들락거린지 모르겠다. 뒤늦게 아기에게 옮은 감기까지.. 완전 온갖 통증의 집합체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자꾸 옛날이 생각난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러 가고, 주말이면 산을 오르고, 친구들과 주말에 클럽에 춤을 추러 가거나 할 수 있었던 내 가벼웠던 몸이 그립고,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서 기네스 파인트 한 잔 하며 웃고 떠들고, 다양한 힐에 드레스를 갖춰입고 나갈 수 있었던 Formal한 이벤트들이나 친한 여자 친구들과 색깔을 정해서 Girls' night out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그렇게 잠시 우울해 있자면 남편은 "Why don't you go out with your friends here?"하고 묻는데, 그 말에 지금 가까운 친구들을 생각하자니.. 뭐랄까..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만날 그녀들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거다. '아기엄마'라는 입장으로 가까워진 그녀들은 페이스북에서 따로 밀폐된 그룹까지 만들어 매일 채팅을 할 만큼 가까운 친구들임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는 늘 '아기들'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물론 그 외에 가끔 남편들의 이야기나, 최근의 홀리데이 플랜 같은 게 등장하긴 하지만, 우린 '아기'와 '가족' 단위를 벗어나서는 서로가 어떤 '여자'들인지 잘 알지 못한다. 


결혼하거나 아기를 낳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였는지, 맥주를 좋아하는지 와인을 좋아하는지, 펍 타입인지 바 타입인지, 클럽에 갈때는 주로 cheesy한 노래가 나오는 곳을 가는지, 아니면 electronic music을 좋아하는지, 쇼핑은 어딜가서 하는지, night out할 때 짧은 치마에 화장을 진하게 하는 타입인지, 정장풍의 바지에 얌전한 스타일을 입는 타입인지, 어떤 남자타입과 주로 데이트 했는지, 그런 부분은 전혀 모르는 거다. 


물론 아기를 낳고 다시 회사에 복귀한 친구들 같은 경우는 대략 어떤 모습인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육아에 올인하고 있는 입장에서 우린 아기 없이 서로 만나는 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누구도 그러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내가 그녀들과 친해진 것에는 내가 살아온 방향이라든지, 백그라운드를 떠나서 서로가 서로를 '괜찮은 엄마'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도 그렇게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건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는데.. 임신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들 중에 어떤 친구들은 임신과 육아의 기간을 거치면서 거리가 멀어진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친구 K는 참 통하는 것도 많고 비슷한 점도 많다고 생각해서 빨리 친해졌고, 서로 멀리 떨어져 삶에도 편지를 써서 주고받거나 가끔씩 아기의 선물들도 주고받으며 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녀의 집에 놀러가거나 그녀가 우리집에 놀러와서 이주 정도 머무는 동안 관계가 꽤 달라졌다. '엄마'로서 우린 너무 달랐던 거다. 우리의 육아법은 너무 달랐고, 내가 결코 내 아기에게 허용시키지 않을 일들 (밥 대신 간식을 주거나, 밥 먹는 동안 아기가 뛰어다니는데도 방치하는 태도 등)을 허용하고, 그러면서 내 양육법에 대한 조언을 하려드는 태도 등.. 조금 더 짜증났던 건, 그녀는 그녀 남편의 파란 색 눈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 파란 눈을 그대로 닮은 그녀의 딸이 커서도 미인일 것이며 모든 세상의 남자들이 그녀의 딸을 따라 다닐 것이라는 얘길 종종하곤 했는데.. 그래, 그건 자기 자식이 세상에게 가장 잘났고 천재임에 분명하다는 세상 모든 부모들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니 그냥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내 꼬맹이와 그녀의 딸이 놀다가 다툼이 생기면 내 꼬맹이더러 '지금 내 딸에게 잘해줘야지, 나중에는 경쟁이 심해서 너에겐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 따위의 말을 하는 걸 자꾸 듣자면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나는 거다;; (내 눈에는 내 자식도 귀하단 말이다!!) 이러다 보니 '엄마'가 된 우린 도리어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비슷한 케이스로 내게는 꼬맹이보다 4개월 빠르게 태어난 조카가 있는데, 솔직히 새언니와 난 임신 시기가 비슷했기에 임신과 육아를 겪으며 더 친해질 줄 알았지만, 막상 둘다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고 나니 관계가 완전 틀어져 버렸다. 임신때는 그나마 고통을 나누며 (!) 친해졌었는데.. 전에 꼬맹이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갔을 때, 툭하면 '우리 아기 때는 그렇게 안해주시더니..'하며 다른 가족들이 꼬맹이를 예뻐하는 걸 못마땅해 하는 거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난 일년에 한번 오잖아, 좀 내버려둬!'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꾹 참았는데.. 자꾸, 한국에서는 아기들 안그런다, 그런 간식은 요즘 한국 엄마들 사이에서도 인기없다, 아기 피부 거칠어지게 왜 매일 목욕을 시키느냐 등등, 잔소리가 심해지는데다가, 나중에는, 우리 아기는 4개월 때 뒤집고 했는데 (꼬맹이)는 너무 느린거 아니냐, 등등하는 말까지 나와서 지금은 정말 예의상의 말 정도만 하는 관계로 변했다. 그전에 오빠의 여자친구로 새언니로 만난 그녀는 그렇게까지 싫은 타입이 아니였지만, '엄마'로 만난 그녀는 정말 별로 친해지고 싶은 않은 사람이였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 보면 차라리 '엄마'로 만나서 친해진 그녀들과의 관계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사람으로 태어나 갖게 되는 수많은 타이틀 ('여자친구', '부인', '직장동료', '친구' 등)은 변할 수도 있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은 한번 갖게 된 이상 버릴 수도 없고, '엄마'로서의 내 인격은 의외로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찌보면, 차라리 엄마로 만나 친해진 사람들이, 그저 친구로 만나 친해진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포함하는게 아닐까... 물론 아기들이 자라고 우리가 육아에서 좀 벗어나 예전의 모습을 찾게 되면, 엄마로 만나 친구가 된 어떤 이들과는 거리가 좀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들과 연락이 줄어들게 된 것처럼.. 그래도 가끔 우린 서로의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소식을 주고받겠지.. 


그래도 가장 좋은 건, 이렇게 엄마로 만나 생긴 인연들이 아기들을 벗어나서도 오래 유지되는 걸꺼다. 설사 아기들이 같은 학교를 가게 되지 않더라도, 서로의 아기들이 자라면서 친구가 되고, 우리도 친구가 유지되는 그런 사이. 


그러고 보니, 섣불리 선을 긋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닐까.. 그녀들을 모른다고, 나와 다를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내게는 또다시 새로운 꼬맹이와 시작할 엄마의 삶이 일년정도 주어졌으니, 그동안 좀 더 노력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달 정도 남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등산 할 때 마지막 100미터가 가장 힘들다는 것처럼, 몸도 괴롭고, 마음도 복잡하다 (거기에 이 비오고 흐릿한 영국날씨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 - 런던만 해도! 잉글랜드 동쪽이나 남쪽만 가도 일기예보가 달라지고 기온이 올라가는데.. 이 서쪽의 웨일즈는 왜 이런가!!!!). 그래도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