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한국이 부끄러울 때

민토리_blog 2014. 5. 14. 05:06

영국인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묻더군요. 세월호 참사 관련된 기사를 봤다고, 규모가 꽤 큰 듯해서 혹시나 해서 묻는다고.. 행여 제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다 괜찮은지 말입니다. 그렇게 안부를 물어줘서 고맙다고, 제 주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은 없다고 대답을 하고 나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 사고에 대한 질문이 들어옵니다. 생각보다 해결이 빨리 안되는 것 같던데 어떻느냐,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구출됬다는 소식을 들었다, 등등... ...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수없이 닥친 인재들과 매번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을 짓밟아버리던 사고 이후 대책 상황에 대해 뭐라 설명해 줄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란 걸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죠. 


박사과정 당시 지도교수와의 미팅에 참석했다가, 대뜸 지도교수가 '너희 나라에 중요한 문화재 하나가 불에 탔다던데?' 하고 물었을 때 말입니다. 그 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무슨 거대한 사고라도 하나 터진줄 알았죠. 뭐 시위나 폭동 같은 거 말입니다. 그런데 그저 술에 취한 평범한 한 시민이 홧김에 저지른 방화라는 사실에.. 그리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 도로 한복판에 어엿이 존재하던 한 나라의 문화재 하나가 그렇게 어이없게 불에 타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뭐랄까.. 더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작년 대통령 선거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박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외국의 언론은 그녀가 한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랑 사실과 동시에 그녀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도 크게 다뤘죠. 그 때도 사실 할 말 없긴 마찬가지였죠. 주위의 지인들과 선거 전에 말을 하다가 그녀를 지지하는 지인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라 물었을 때, '그래도 이번엔 다르지 않겠냐?' 하는 말을 듣고, 전 소고기 비빔밥에 소고기 걷어내고 참치 올려 놓는다고 그게 비빔밥이 아닌건 아니지 않냐고 대답했는데... 


사실 전 처음에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게 나라를 뒤흔들 만큼 장기간에 걸친 재앙이 될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난데없이 건물이나 다리가 무너져 내린 것도 아니고, 비행기처럼 추락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아니고, 천안함처럼 난데없는 폭격으로 배가 갑자기 두동강 난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2012년 1월에 이탈리아 해역에서 발생한 코스타 콘코디아 (Costa Condordia) 크루즈 배가 4천명이 넘는 사람을 태우고 침몰했음에도 30명이 조금 넘는 사망자만 남긴 경우를 봤기 때문에, 설마 500명도 안되는 인원수를 태우고 제주도로 수시로 운항하던 배의 침몰이 3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낼 조난사고로 이어질 거란 짐작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사고 후 2-3일만에 인원의 대부분이 구조되고, 1주일안에 사고의 원인이 밝혀질 줄 알았죠. 한국이란 나라를 너무 믿었던 걸까요... 구조 소식은 절망으로 바뀌고, 살아남은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내팽겨쳤다는게 나오고, 해경의 조사 조작 의혹 등.. 참... 그 뻔한 패턴이 이번에도 반복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부실공사다 부패한 갑을 관계 때문이다, 등등 회사를 욕하고, 해경을 욕하고, 정부를 욕하고.. 그래도 정작 책임을 질 사람은 없고, 유가족들의 울음과 일반 시민들의 분노, 죄책감, 우울함, 불신감만 넘쳐나고 있죠. 


그런데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한국에 닥쳤던 그 수많은 인재들... 도대체 그 끝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겁니다. 백화점이 붕괴되고 다리가 붕괴되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나서, 도대체 뭐가 변했는지, 누가 처벌을 받았는지, 사고 후 관련법규 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실제로 변한건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아마 이번도 그렇겠죠.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가 무슨 연예인 스캔들이라도 터지면서 사람들 관심이 그리로 돌아가고, 세월호 소식은 아마 2014년 송년특집에서나 '올해는 정말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는데요,'하면서 다시 들을 수 있겠죠. 그렇게 저희는 또 무감각해져 가겠죠. 


영국에 살면서 뉴스를 보다보면 '저게 도대체 몇년도에 일어났던 사건이야?' 할만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다시 나오곤 합니다. 미해결되거나 아직도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들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보도를 하는 거죠. 아직도 간간히 볼 수 있는 Phone-hacking scandal 같은 경우는 그 사건의 처음이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죠. 그리고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BBC나 Channel 4 등에서 직접 국회의원 등 책임을 질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라이브로 연결해 인터뷰 합니다. 난감한 질문들도 대놓고 하죠. 때론 피해자 등과 함께 3자 대면 등도 이뤄집니다. 또 영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사퇴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요, 심지어 아내에게 부주의 운전으로 인한 벌점을 대신 받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퇴한 국회의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도리어 '사회 불안을 야기하지 말라, 불순분자의 선동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은 소릴 합니다. 불순분자, 라니... ㅎㅎ 무슨 봉건사회에서 왕에 대한 불순한 음모가 보인다고 척결하는 것도 아니고... 21세기 명색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나라에서, 그것도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되었다는 지도자에게서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다니... 거기에 언론은 정부에서 나오는 정보에만 의지하느라 도대체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가장 먼저 BBC 뉴스를 확인하고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확인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 지 모르는 거죠. 기자란 존재는 한때 펜 하나만으로도 탐정에 무색한 수사를 해서 정확한 사실을 밝히는 존재였는데, 이젠 주는 것만 받아먹는건지, 아니면 입에 재갈이라도 물리고 누가 글 쓸 때마다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건지... 다들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추측성이 난무하죠. 

그리고 그토록 막말이 난무하고 폭력도 난무하던 국회는 조용해요. 이럴 때 영국의 야당이라면 때를 잡았다는 태도로 여당에 대한 강력한 비난이 나올텐데 말예요. 국회에서 보여주던 그 열기(!)를 이 때 유가족을 위한 진상규명을 위해 쓰고 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다들 조~~용해요. 


아마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제발 잊혀져라, 잊혀져라 하면서 애궂은 연예인들 뒤를 캐서 뭐라도 하나 터지기만 바라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죠. 지금 이 시간에도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든 우울함을 떨치고 유가족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기부를 하고 있을테고, 언론은 또 유명인들 중 누가 얼마나 기부했나 하면서 눈에 불을 켜고 있을테고 말예요. 정작 그들이 불을 켜고 노려보고 있어야 할 건 그런 게 아니라 좀더 윗쪽에 위치한 숨겨진 분들일텐데 말예요. 


어떻게 보면 그만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일어서서 G20의 경제까지 이루어낸 한국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건 일반 서민이라 불리는 한국인의 힘이 아니였던가요. IMF 구제금융 위기에서 나라 구해보겠다고 얼마 있지도 않은 금을 자발적으로 가져온 건 누구였나요. 이번에도 민간 선박들의 도움이 컸다죠? 별일 없을 때는 온갖 비리를 저질러도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이 크다'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하사받던 그 위대한 대기업 재벌들이 조용할 때 말예요. 


매번 선거철이 될 때마다 사람들은 환멸감에 시달리면서도 기대를 하죠. 제발 이번만은 다르길, 하고 바라며.. 그러다가 또 배신당하고... 이건 뭐.. 왠만한 신파극 여주인공이라도 울고 갈 상황이예요. 그러니 이만하면 그저 포기할 법도 한데.. 그러지 못하겠다는 거죠.

나라에 대해 많은 걸 바라는게 아니잖아요. 자꾸 높은 분들이 '경제, 경제'하는데 당신들이 뭐라 안해도 우린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어요. 그러니 경제 운운 하지 말고, 제발 사람답게 다들 인권이 보호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나 좀 만들어 달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