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짜증나는 영국인 타입들
이제는 사실 왠만한 영국인들을 만나도 별로 문제없이 어울리거나 피할만한 여유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가끔 '아, 진짜!'하고 속을 좀 긁어대는 영국인들을 만나곤 합니다. 조금은 짜증나는 영국인타입들..
1. Patronising (가르치려는 태도?)
전에도 잠깐 썼듯이 영국에서는 임신을 하면 따로 산부인과를 가거나 의사를 만나는게 아니라 'Midwife'를 만나서 임신과 관련된 전체적인 걸 확인받고 의논합니다. 오늘 담당 미드와이프를 만나러 갔는데, 제 담당자는 휴가를 가고 대신 다른 분이 계시더군요. 지역의 특성상 첫째를 임신하면서 지역을 담당하는 미드와이프들은 대부분 다 만나봤던 터라 이분도 이미 안면이 있는 분이였는데... 이분은.. 뭐랄까.. 차분한 태도와 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posh한 악센트가 포인트인 분이긴 하지만.. 이분을 만날 때마다 자꾸 불편한 마음이 드는건 바로 이분의 'Patronising'한 태도 때문이죠. 마치 뭣모르는 어린 학생을 다루는 것 마냥 자꾸 재확인 하는 질문을 한다든지, "Do you know what I mean?" 혹은 심지어 "Do you know what it means?"하고 묻는 등.. 처음엔 그저 고분하게 "Yes"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꾸 반복되니까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반항하는 (그러나 충실한) 학생마냥 그녀의 말을 다시 풀어서 대답하거나 사전의 풀이된 뜻을 읽는마냥 대답을 해줬죠. 한참을 그러자 그제야 마치 그녀는 테스트를 마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 괜찮다며 나가봐도 괜찮다고 했죠. 물론 그녀 같은 경우는 상당히 양호하다고 할 수 있고, 제가 외국인이라서 얕본다기 보다 그게 그녀의 본래 성격인 것 같아서 피곤하긴 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짜증나는건, 제가 외국인이라서 가르치려고 드는 영국인들이죠.
가끔 외부에서 영국인들과 부딪치는 상황이 생길 때가 있는데 (주로 제 입장에서 컴플레인을 해야할 때), 그럴 때 "I don't know about your country, but in Britian, we..." (네 나라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영국에서는 보통.. ) 하며 훈계/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로 그런 말을 하며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거나 팔짱을 끼거나 하죠. 마치 제가 자기네 나라 사정을 전혀 모르고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꼬맹이라도 되는 냥 말이예요. 그럴 경우는 저도 짜증이 나서 일부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서 영국에서 일어나는 다른 케이스들을 말해주며 반박을 합니다.
그 외에도 툭하면 모든 영어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려는 태도, 마치 한국이라는 나라가 티비도 없고 산풀 뜯어 먹고 사는 산골지방인냥 식탁예절에서부터 심지어 비틀즈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보는 사람, 자신의 강한 로컬 악센트는 신경도 안쓰고 발음 교정해주려는 사람, 멀쩡히 자전거타고 가는데 난데없이 제대로 선을 따라 가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분들, 등등.. 분명히 그 정도야 조금씩 다르고 어떨땐 그냥 지나가는 바람 소리로 취급하고 넘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정도가 심하거나 반복되면 인내심을 시험하긴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이런 것 역시 '주인행세'하는 영국인들의 도도한 자존심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말이죠.
2. We are the best
영국은 좋게 말하면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고, 나쁘게 말하면 좀 낡은(?) 사회죠. 산업혁명도 가장 먼저 일으켰던 나라고, 철도 시스템도 처음 발달시킨 나라고, 대단한 학자들과 공학자들도 배출한 나라이긴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새로운 기술같은 걸 받아들이는데는 좀 느리다고 할까요.. (인터넷 같은 것만 봐도 한국이 훨씬 발달된 수준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는 부분이 있죠 (여전히 그다지 크지 않은 섬나라인 영국을 '대영제국'이라고 부르는 걸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영국인들 중에도 그런 도도함으로 무장된 분들을 만날 수 있죠. 뭐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라면 좋은 거 같기도 한데.. 한 술 더 떠서 다른 문화나 인종을 미개한 수준으로 취급하는 분들도 있으니 그게 짜증나는 거죠.
예를 들면, 전에 꼬맹이가 자꾸 귀를 만지고 열도 오르고 해서 혹시 감염인가 싶어 의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제가 "아기 귀를 따로 관리해줘야 할 필요가 있느냐"하고 물으니 그런 것 없이 절대 건드리지 말아라, 하면서 저를 잠시 보더니, "I heard that people put fire on children's ear in some Asian countries. But you shouldn't do that" 하더군요 (도대체 어디서 누가 아이 귀에 불을 놓는단 겁니까?!!);;
그 외에도 김밥을 보고 어떻게 바닷가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있는 미역을 먹을 수 있느냐, 고 한 사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노골적으로 "So you eat dog curry?"하고 냉소했던 사람 (개고기도 아니고 개 커리라니, 도대체 뭘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 - 심지어 이 사람은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던 사람..), 한국에서 왔다는데도 자꾸 중국이야기를 꺼내면서 묻길래 '한국은 중국이 아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라고 했더니 "But for us you all look the same"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던 사람이나.. (내가 잉글리쉬나 아이리쉬나 똑같지 않냐, 그럼 짜증낼거면서!!). 제가 아는 한 중국인 친구는 처음에 영국와서 어학연수를 할 때 영어 이름이 'Kitty'였는데, 헬로우 키티 브랜드를 좋아해서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다른 게 아니라, 처음와서 호스트맘한테 자기 중국이름을 말해주니 발음하기 힘들다며 "Can I call you Kitty?"하고 묻더랍니다. 그분이 아는 '동양적인 캐릭터' 이름이 그것밖에 없었던 거죠;; 그 친구는 외국에 처음 나온 착한 동양인 답게 그 분이 좋다면 그러마, 라고 했고 그 때부터 그 친구 이름이 키티가 된거죠 (실제로 그 친구는 헬로우 키티를 몰랐고, 일본도 싫어하는 친구였으니.. 만약 알았다면 그리 쉽게 수락하진 않았겠지만요;;)
어쨌건 일일이 사건들을 나열할 순 없어도.. 자신들의 음식문화나 날씨 등에 대해 외국인이 비판하는 건 듣기 싫어하면서 다른 문화 등에 대해서는 참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는 영국인들은 (사실 굳이 영국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할 때마다 참을 인자를 몇 개씩 쓰게 하더라구요.
3. Empty promises
영국인들의 특징상 빈말과 돌려말하기를 많이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태도가 짜증날 때는 공적인 일이 얽혔을 때더라구요. 당장 일이 급한데 "Yes, we understand. We will do our best to solve the problem"하는 뻔한 말만 늘어놓고 아무런 해결이 안될 때.. 프로젝트 같은 공동 작업에서 데드라인을 안지키고 자꾸 미루면서 "I am sorry, but there were many things happening here. I will get back to you soon"하는 말만 나올 때 (진짜 미안하면 빨리 해서 넘기라구!)
최근에 알게 된 2년 반된 아기가 있는 영국인 친구 H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영국적인 사람인데.. 그녀의 사교성과 친근함을 좋아하지만, 가끔 이해못할 때는 그런 태도가 나왔을 때죠. 함께 꼬맹이들을 데리고 놀러갔다가 그 친구의 아기가 토하는 바람에 바지랑 옷을 다 버렸는데, 마침 제게 여벌의 아기 옷이 있어서 빌려줬죠. 그런데 몇주가 지나도 아기 옷을 돌려주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그저 잊어버린 줄 알고 그걸 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집에 없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척 미안해 했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I am so sorry about the trousers. I haven't forgotten about it. I will get you new pairs" 라고 하는데.. 솔직히 저 같으면 그렇게 걱정할 시간에 그냥 한 벌 사주고 일단 해결한 뒤에 더 찾을 거 같은데.. 그게 벌써 한달이 넘었는데 전 아직도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저 말을 듣고 있죠;;;
최근 프로젝트에 대해 새로 조정할 일이 있어서 연락했던 사람은 "I will let you know by tomorrow"에서 그 '내일'이 '다음주'가 되더니 이젠 "I will get back to you as soon as possible"이 되더군요.
물론 영국인들이 자주 쓰는 "You should come to our house some time"과 "We should meet up some time"는 한국표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런 식으로 미루고 빈말이 남무하면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부르죠;; 그런 사람들이야 영국 뿐 아니라 어느 사회/조직에서든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진짜 이럴 겁니까!"하고 따지는게 잘 통하지 않는 영국에서는 (따지면 그 쪽도 감정적으로 나와서 장기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가 한국처럼 '권력'의 힘이 크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왕이다, 라는 태도를 기대하기도 쉽진 않죠), 진짜 참을 인자를 몇번 쓴다음 최대한 사무적이고 원칙적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시간도 훌쩍훌쩍 지나가죠 (정말 어떨 땐 'You are wasting my precious time!!'하고 소리치고 시간에 따른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고 싶다고 할까요;;).
4. 그 외
짜증나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인종차별주의자'겠죠. 대놓고 내 다른 피부색에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 한적한 곳에 몰려있는 십대들, 어두운 밤에 좁은 골목 한편에서 걸어오는 후드 쓴 사람 (그냥 비가 와서 썼다 하더라도..)
하긴 요즘 영국 분위기를 보면 UKIP이 한창 인기던데.. 내부가 어지러울 때 눈을 외부로 돌리는 거야 어느 국가든, 정치권이든 잘 사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내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으로서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더군요;;;
오늘은 좀 욱, 했지만, 그래도 오래 산 정(?)이란게 있는데 다음엔 사랑스런(!) 영국인 유형 같은 것도 생각해 봐야 겠네요 ㅎㅎ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