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국제커플/결혼의 이런저런 점들 - 하나

민토리_blog 2014. 2. 26. 07:17

언젠가 남편과 함께 한국에 들어갔을 때다. 둘이 쇼핑가를 다니며 그저 데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윈도우에 걸려있는 옷이 하나 예쁘길래 들어가 대충 몸에 대보고 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옷을 살려고 남편에게 (내) 지갑을 달라고 부탁하고 남편이 뒤적거리는 순간, 우리가 들어가면서부터 둘 셋 모여 심상치 않은 눈빛을 교환하던 여자 점원들이 그 모습에, "어머, 진짜 외국남자들이 자상하다니까. 한국남자들은 사달라고 눈치를 줘야 사주는데.." 하며 감탄 등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갑자기 수선해진 여자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난 난감한 기분에 남편에게 "Sorry, please pay for this" 하고 속삭였다;; 남편이 얼결에 돈을 내자, 그분들은 남편을 훓어보시며(?!) "좋겠다~", "어디서 만나셨어요?" 등등 질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셨다;; 


"외국남자 - 보통은 유럽/미국계 계통의 백인남자 - 는 로맨틱하다, 자상하다" 같은 어디서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말 외에, 자주 듣게 되는 말들은, 

- 시집살이 같은 걸로 고민할 필요 없다더라

- 외국 나가서 사니 좋겠다

-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삶도 여유있고 풍요롭겠다, 등등... 


그리고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은, 

- 외국남자랑 사니 어떠냐, 언어/문화 차이로 많이 싸우지 않느냐,

- 외국남자는 가정적이고 집안일도 잘 도와준다던데 정말이냐, 등등...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타지생활이 길어서 그런지, 한국에도 매번 남편과 같이 들어가는게 아니라서 그런지, 내가 한국인이 아닌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었다. 거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건 아기를 낳고 나서부터랄까.. 아기에게 자꾸만 꼬리표처럼 달려서 사람들이 묻게 되는 질문, "아기 아빠가 외국인이예요?" 


그래서 생각해봤다. 도대체 뭐가 다르고 비슷한지... 


1. 외국남자가 한국남자보다 자상하고 로맨틱하다?


외국남자와 한국남자를 비교하는 건... 뭐랄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국민성'같은 걸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언젠가 여성매거진에서 영국남자와 미국남자의 데이트 방식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소개팅 같은 첫 데이트 후에 미국남자는 맘에 들면 바로 연락처를 묻고 차후 연락도 빨리 오는 편이지만, 영국남자는 설사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다음 연락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뭐 이런 거였다. 그건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바로 손을 내밀며 "Hi, I'm John"하고 말하는 미국인과, 한동안 날씨와 다른 화제들에 대해 얘기한 후에야 마지막에 "By the way, my name is John"하고 소개하는 영국인의 근본적인 성향차이 같은거다. 


한국남자들은 대부분 여전히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유교 사상과 인생의 2-3년간을 담보잡히는 군대생활에 깊게 영향을 받아서 대체적으로 조직 생활에 익숙하고 책임감이 강한 반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거나, 가정일을 돕는 것에는 어색해한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가능하다면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결혼을 해서도 '내 부모를 포함한 가족'과 '아내를 포함한 내 가족'에 대한 뚜렷한 선을 잘 긋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유럽에서는 대부분 빨리 독립하는 편인데다가,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많은 까닭에 '일하는 여자', '집안일 하는 남자'에 대한 뚜렷한 구분도 별로 없고,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내 삶은 내 삶'라고 대체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저녁 6시면 다들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사람들이 자연스레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 시간동안 티비만 보면서 맥주나 축내느냐, 아니면 정말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며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건 개인의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도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내 생각에 연애 기간동안 더 로맨틱하고 다정한건 한국남자인거 같다. 요즘 한국에서의 연애담을 보자면, 결혼하자고 프로포즈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기념일이라고 선물하고 서프라이즈 파티해주고, 맛집 찾아다니고, 여행지 알아보고, 심지어 늘 여자백을 들어주고 그걸 들고 여자 화장실 앞에서도 기다려주고, 등등... 물론 그런 태도가 얼마나 유지되는지는 개인마다, 연애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올인하는 태도는 한국남자 외에는 잘 찾아보기 힘들지 않나 싶다. 

유럽남자들도 데이트 할 때 좋은 레스토랑 예약해서 데리고 가고, 크리스마스나 생일 때 선물해 주고 그러지만, '몇일 만난 기념일'같은 개념도 없거니와, 특히 '커플'룩/링/가방/신발 등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한국처럼 '우리 커플이예요!!'하고 만천하에 공개하는 연애는 별로 할 일이 없다. 그리고 선물. 한국에서 놀랬던 게 남자가 여자에게 명품을 선물하는 걸 거의 당연시하는 분위기. 물론 유럽에서도 남자가 여자에게 명품을 선물해 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보통 여자가 그 명품을 좋아해서 그 명품의 옷/가방/구두 등을 대체로 사용하는 경우일 때, 즉, 그게 그 여자의 스타일일 때, 혹은 그게 그 여자의 스타일과 맞는 경우일 때가 많지, 굳이 여자에게 '비싼걸' 사주겠다고 사주거나, 여자가 '나도 명품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주는 경우는 잘 없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남자와 여자의 재력이 비슷하다. 즉, 유럽남자들은 자신의 상황이나 능력에서 벗어난 일은 아무리 사랑해도 대체적으로 잘 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야 어딘들 있겠지만.. 


그러나 행동을 벗어나서 유럽남자들이 굳이 '자상하고 로맨틱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그들의 표현방식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남자들이 자기 감정 표현에 좀 서툰 반면, 유럽인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을 하는 사람이 많기에 (물론 유럽인들 중에도 나라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예를 들면 프랑스 남자가 영국 남자보다 사랑에 관련한 표현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그리고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들 (자연스레 머리를 쓰다듬는다던지, 굿바이 키스 같은 걸 해준다던지??)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겠다 싶다. 


2. 외국남자는 가정적이다?


이건 '가정적'이라는 것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다르지 않나 싶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가정에 대한 책임/의무감'은 한국남자가 훨씬 뛰어나다.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한국남자들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아기까지 낳은 후에는 '어떻게든 내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라는 책임감이 강하다. 한국에 나이들어 외로운 아버지들이 많은 건, 그렇게 젊은 날을 어떻게든 내 가족 먹여살리겠다고 밤낮으로 일했기 때문이 아닌가. 심지어 속이 쓰려 죽을 것 같아도 내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고, 거래를 한 건이라도 더 올릴려고, 밤늦게까지 구멍뚫린 속에 술을 더 들이붓는게 한국의 남자들이니까.. 그런 까닭에 한국의 남자들은 집에 잘 없다. 쉬는 주말에도 피곤한 몸 끌고 놀이공원에 가는 아버지들도 있겠지만, 집안일까지 매일 거들거나 나눠할만한 힘도, 생각도 별로 없는거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집에서 남자가 일하는걸 본적이 별로 없기에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 몫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꽤 있다. 

반면, 어릴 때부터 부모가 다 같이 일을 하는 모습을 봐왔고, 다 저녁에 퇴근해서 같이 저녁먹고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란 유럽의 대다수 남자들은, 집안일이 그렇게 어색하진 않다. 물론 그들 중에도 설거지는 일주일에 한번 해도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요리는 개뿔, 모든 건 레디밀(ready meal)로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집에 일찍 오고, 집안일을 하는걸 어색해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굳이 '가정에 대한 책임감'까지 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 실제로 이번에 이혼한 영국인 친구의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티비를 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부인이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로 힘들어 하는데도 '난 요리를 못한다, 아기 울음소리 듣기 싫다' 등등의 말을 하며 모든 걸 부인에게 맡겼다. 이혼 후 둘이 일주일에 시간을 조절해서 아기를 돌보곤 하는데, 그는 여전히 아기의 식사로 책임지지 않고, 목욕도 시키지 않으며, 재우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외로 영국인 남자들 중 아이를 낳는 것이라거나, 심지어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부담을 가지거나 회피하려는 사람들, 많이 봤다. 그래서 그런지 이혼율도, 결혼없이 유지되는 동거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3. 외국남자라서 언어나 문화차이로 많이 싸운다?


내 생각에.. 연애를 해서 결혼에까지 이른 국제커플 같은 경우는, 왠만한 한국/한국인 커플보다 사이가 더 돈독하지 않을까 싶다. 연애 때는 물론 다르다.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의견이 달라 다투거나 싸우는 건 다 비슷하지만... 상대방이 외국인이 되면, 그리고 그 관계가 진지하게 지속되면, 정작 당사자들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통의 연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주위 친구/가족들에게 상담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국제커플 같은 경우는 그런 의논을 할 상대가 거의 없다. '외국인'이라는 변수때문에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힘들고, 한국사회의 분위기상 외국인 남자친구의 정체를 대놓고 드러내면서 뭐라 고민을 말하기도 좀 껄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부분 국제커플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 둘이 조절을 해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려면 당연히 언어에 대한 장벽이 없어야 한다. 영어라고 생각했을 때,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얼마큼 자세히 확실하게 설명하고 그 뜻을 전달시킬 수 있느냐 하는 거다.  

그래서 국제커플인 경우, 서로에게 가장 잘 통하는 '공용어'가 대부분 있다. 독일/튀니지아인인 친구 커플과 영국/프랑스인 친구 커플들은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독일/스페인 친구커플은 독일어로 대화하고, 벨기에/스페인 커플은 영어로 대화하고, 영국/중국인 커플 중에는 중국어로 대화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화차이는 좀 더 민감한 문제인데... 가장 문제가 적은 커플은 아무래도, 둘다 서로의 문화에 익숙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어에 익숙하며, 한국에서 계속 살아도 문제가 없는 미국인 남자와 결혼한 미국에서 유학하고 왔거나 잦은 미국여행의 경험이 있는 한국인 여자의 경우. 그럴 경우, 서로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둘다 서로의 나라/문화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문화차이로 충돌할 일은 별로 없지 않나 싶다. 

다음으로 그나마 다툼이 적은 커플은 둘 중 한 명이 상대방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즉, 영국인 남자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라고 했을 때, 결혼 전 부터 이미 여자가 영국에 와봤거나 영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결혼 후에도 영국에 와서 살 준비가 된 상태인 경우, 설사 남자가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여자쪽에서 두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다툼이 생겨도 조절이 가능할 수 있다. 세번째 경우는, 둘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공통적인 어떤 이해분야를 가지고 있는 경우. 즉, 나 같은 경우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그 나라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고, 남편 역시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었지만, 둘다 오랜 타지 생활로 서로의 나라/문화에서 파생되는 성향이 거의 희석되었기에 그걸로 부딪힐 일이 그다지 많진 않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가 한번 부딪히면 끝장을 보고야 만다는거? ㅎㅎ 이건 좀 다른 이야긴데, 한국에서는 역사시간에 구석기/신석기부터 시작해서 고대로마/그리스, 유럽 산업혁명까지 다 훓으며 배우는 반면, 많은 유럽의 나라에서는 선택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까닭에 유럽인들은 유럽을 벗어난 세계의 역사/문화에 상당히 무지하다. 그래서 우리같은 경우 그런 쪽으로 부딪히면 정말 살벌한 토론이 펼쳐진다 (특히 세계대전!! 어우 진짜..);; 

마지막으로 가장 싸울 일이 많은 커플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떠나서 한 쪽이 상대방의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럼 어떻게 결혼했나, 싶은데.. 사람관계야 모르는 거니까.. 어쨌건 결혼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고, 대화도 잘 되지 않는 경우, 거기에 둘 중 한 명이라도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고, 필요성도 못느낀다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긴 힘들지 않나 싶다. 


.......


국제커플의 외국생활도 그렇고, 경제생활도 그렇고, 시집살이도 그렇고, 여가생활도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데, 시간이 없다. 그리고 글이 대책없이 길어질 거 같아 이만 줄이고 두번째를 나중에 쓰든지 해야겠다. 


어쨌건, 짧은 결론은, 자상하다/로맨틱하다/가정적이다 등등의 설명은 상당히 주관적이고, 그건 개인마다 다른거지, 굳이 외국인이라서 밤에 당신의 창문을 두드리며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매번 만날 때마다 꽃을 사다주고 하진 않는다는 거다 (한국 남자가 그럴 가능성이 훨씬 많다). 그리고 어느 연애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또 평생 같이 살자고 약속하기 까진 힘든일이 많겠지만, 국제연애에서 결혼으로 가는 경우, 둘 사이에 왠만큼 단단한 반석이 있지 않은 한은 그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도리어 그 관계가 더 돈독할 수도 있다는 것 정도? 


다른 분들의 경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행여 제가 너무 스테레오타입 한게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