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요즘에는 웬일인진 일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도대체 그냥 쉴 짬을 못내고 있다. 꼬맹이를 잠재우고 나서도 무슨 할 일이 그리 많은지 이것 저것 하다보면 벌써 잘 시간이 다가오니.. 매일 뭔가 바쁘지만 여유가 없는 기분이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족들과 통화한 것도 도대체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분명 설날에는 전화를 했으니... 그럼 그 때가 마지막인가??
가족들과의 통화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사이트를 들어가 본 지도 꽤 되었으니, 요즘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뭐가 화제인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매일 마주 보는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그들과 영국의 날씨, 사건 사고, 영국의 뉴스에서 많이 다뤄지는 세상의 일들을 얘기하고, 영국의 정치판에 대해 토론하고... 그렇게 살고 있노라면 도대체 나를 동쪽의 끝에 있는 내 나라와 연결시켜 주는 것이 도대체 뭐가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이 때론 들기도 한다.
남편과 나의 공통점이라면, 둘다 내 나라, 내 가족, 친구들을 떠나 살고 있는 이방인이라는 점이다. 보통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 같은 경우, 외국 생활을 해본 친구들도 많고, 가족들 역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외국으로 여행와서 방문할 만큼 외국 생활에 밝은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 나와 내 남편의 가족들 모두 외국여행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고, 심지어 영어를 할 줄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각자의 나라로 가서 가족들을 보지 않는 한, 그들을 볼 기회는 거의 없어진다. 또 우리 둘의 고향 친구들도 자라온 지역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이라, 역시 같은 타지생활의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의 친구들은 대부분 고국에 살고 있는 같은 나라 친구들과 타지 생활을 하며 만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로 나눠진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내가 영국에서 대부분의 해외 생활을 한 반면, 남편에게는 영국이 세번째 국가라는 것?
신기한 점은 내가 영국으로 유학생활을 하기 위해 2004년에 한국을 떠났을 때, 남편 역시 2004년에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3년 후인 2007년에 남편이 캠브리지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우린 처음 만났고, 남편이 유학생활을 마치고 포닥을 하러 돌아왔을 때 우린 다시 만났고, 2009년부터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어쨌건, 둘다 그렇게 타지 생활에 익숙해진 까닭에 영국에서 살지만, 특별히 따로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둘다 뭐랄까... 원래의 국민성이 상당히 옅어진 모습을 하고 있달까...
각자의 나라에는 일년에 한번씩 가는 편인데... 이번에 둘째까지 임신하는 바람에 우린 각자의 나라로의 여행을 올해 모두 보유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 말은 안했지만, 아마도 일년에 한번씩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것이며, 설사 간다하더라도 그 기간이 그리 길 수는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물론 후에 둘 중 한명의 고국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우린 2-3년내에 영국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둘다 각자의 나라로 '아직' 돌아가고 싶진 않아한다. '아직'은 정착하고 싶지 않아하고,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경험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다음에 갈 나라를 결정하기 위해 우린 세계지도를 보며 머리를 맞댄다. 물론 아이 교육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안정되고 공립교육이 좋은 나라를 고르다 보니 지금은 대략 3-4개국으로 좁혀져 있는 단계다.
이 말은.. 우리의 타지 생활이 좀더 길어질 것이며, 그만큼 서로의 나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될 거라는 거다.
이렇게 한국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아마도 해외생활을 좀 오래 해본 분들은 다 한번씩 느끼는게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게 되고, 가족들과 통화할 때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이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그저 현실이 아닌 이야기로만 들리게 되는 것.. 남들과의 대화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주제를 잘 파악하지 못하기도 하고, 티비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생소하며, 다들 익숙한 어떤 공통된 '룰'을 모르게 되거나, 알더라도 의문을 갖게 되거나, 어느 순간 한국에서 '여행자'의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때... 그리고 한국을 떠나오며 아쉬우면서도 왠지 안도하는 스스로를 느낄 때... 외국에서 그토록 한국을 생각하며 그리워 하던 것들이, 사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한국을 살면서 내가 느끼고 경험하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 하는 거란 걸 알게 될 때.. 그래서 막상 돌아가면 내가 생각하던 그 시간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도리어 허전해 질 때 (특히 사람에 관한 건 더 그렇다. 친구들, 심지어 옛 애인도 내가 남겨둔 그 시간에 여전히 존재하리라고 믿고 있다가, 막상 마주 대했을 때 '일시정지' 버튼이 눌려져 있던 건 나뿐이였고, 다들 모두 '재생'버튼을 통해 이미 그 당시를 저 뒤편 어딘가로 보내버렸음을 알았을 때의 그 당혹/배신/허무함이란.....)...
물론 아무리 내가 타지생활에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하게 쓰여진다 하더라도, 김치를 그리 그리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왠지 이름 모를 섬에 혼자 두둥실 떠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한국인도 아닌, 그렇다고 지금 살고 있는 영국인도 아닌... 어딘가 그 중간 어딘가에 발을 딧고 둥실 떠 있는 기분...
그래도 내게, 한국이란 나라와 나를 여전히 연결시켜 주는 고리라면 '한국어'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한글로 여전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국인들과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
한국은 요즘 어떤가요. 그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