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엄마로서 아기가 차별받지 않게 키우기
내 나라에서 내 말 사용하며,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둘러싸여 아기를 키워도 힘든 순간이 수없이 찾아오는 법인데... 외국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며, 주위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환경에 적응하며 아기를 키운다는 것, 게다가 나와 내 아기가 어딜 가도 외국인이라는 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외모를 가졌다면, 사는게 가끔은 힘듦을 떠나 참 치열해지기까지 한다. 외국인 엄마로서 부딪혀야 하는 이슈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아기가 차별받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교육환경
한국 학교에서 '왕따'가 최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영국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bully' 당하는 일들은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은 가지가지이지만, 좀 약해보이거나 특별히 수줍거나, 때론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인종이 다르다는 것도 괴롭힘의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일부러 여러 인종들이 있는 학교를 골라서 보내기도 한다는데.. 내 생각에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그들이 차별당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아무리 영국에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대다수의 인종은 백인이다. 그러니 아무리 이 나라에서 몇 십년을 살았고, 몇 세대를 거쳐 살았다 하더라도, 그 인종의 다름은 어찌할 수 없이 드러나고 차별을 유발한다. 이번에 재판 결과가 나오고 나서 다시 불거진 Duggan 케이스만 보더라도, 런던에 몰려살고 있는 흑인들의 반발이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던가.. 그리고 This is England라는 영화에서도 봤겠지만, 환경이 떨어지는 곳으로 갈수록 인종차별은 더 심해진다. 그런 곳에서 어딜가도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게 뚜렷한 내 아이를 지키는 방법은, 차별받을 수 있는 확률을 작게 만들어 주는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환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진다.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대놓고 다름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세계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Chinese'라며 무시할 가능성도 적다 (교육수준이 떨어질 수록, 그들은 동양인은 모두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다들 Chinese take away에서 일하고, 심지어 영어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이 많으니까..) 그리고 설사 세상에 동양인은 중국인만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예의에 대한 기본 교육이 되어있기 때문에 영국인의 특성상 대놓고 조롱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이유들이 바로 내가 저번 글에서 말했듯, 이 동네에서 꼬맹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 이유다.
2. 부모의 태도
아이가 차별 받지 않으려면, 인간에 대한 대체적인 존중이 바탕으로 깔린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부모의 영향도 크게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알지 않는가. 부모의 재력이나 수준에 따라 아이가 받는 대접도 달라진다는 거.
아이들은 어찌보면 지나치게 순수하게 잔인해서, 무의식 중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답습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건 부모다. 부모가 주위사람들로 부터 지탄을 받거나 무시당하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거나, 자격지심에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다른 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굽실거리는 걸 보고 자란 아이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도 대접받으려 하거나 우쭐거리는 경향이 강하다. 내 부모가 다른 아이의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 아이도 그 부모의 아이를 업신여기려 하고, 내 부모가 다른 아이의 부모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 그 아이도 그 부모의 아이에게 왠지 주눅이 들게 된다.
그러니 아이가 차별받지 않게 하려면 내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내가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남에게 주눅들거나 움추려 들지 않으며, 내가 먼저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아기도 남을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아이 교육을 위해 큰맘먹고 이민오시거나 잠깐이라도 머물러 오신 분들을 보면, 스스로는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영어공부도 잘 하지 않고, 이웃과 인사도 나누지 않으면서, 아이만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그러길 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좀 방향이 잘못됬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설사 아이가 그런 기대를 받아 학교에서 잘한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자기 부모,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아이의 자존감을 생각하자면, 그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아이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나부터 열심히 영어공부해야 하고, 다른 이들과 폭넓게 사겨야 하며 (내 인맥은, 돈보다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다른 이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으로 대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기 데리고 열심히 이곳 저곳 다니고, 동시에 자기계발도 해야 된다는 거다 (영국에서는 전업 주부가 별로 없다. 설사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자식자랑이 내 자랑이 되는 일은 별로 없으니, 영국 엄마들과 두루 잘 어울리면서 인정받으려면, 아이를 떠나 나란 사람을 인식시켜야 한다)
3.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다가, 아기를 낳은 후 새삼 인식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한국 티비 프로그램을 가끔 보다보면 한국인 엄마/아빠를 가진 혼혈이나 이민 2세대 (주로 미국)들이 나오곤 하는데, 대부분의 그들이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오~ 그래도 한국어를 하는구나'하고 신기하게 보기도 했던 거 같은데, 이젠 솔직히 그들을 보면 '도대체 왜 한국어를 못하지? 부모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교육을 시킨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나본 혼혈들도, 부모의 한쪽이 같은 유럽이면 그 쪽 말도 할 수 있는데.. 이상하게 동양인 혼혈들은 동양쪽 부모의 언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 인도네이아인 등등). 어떤 이민 2세들은 한국어를 설사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어로 대화하길 고집해서 그냥 미국인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도대체 왜??
대충 이유를 짐작해 보자면... 혼혈같은 경우, 어찌보면 그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으니 도리어 한곳에 완전히 소속하게 하기 위해 부모가 일부러 살고 있는 곳의 언어가 아닌 걸 안가르쳤을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 선택해서 한 쪽의 언어를 쓰지 않기로 결정해서 그냥 잊어버린 걸 수도 있다. 이민 2세같은 경우, 보통 1세대의 적응기가 혹독하기 때문에 2세만큼은 온전한 그 나라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어서 역시 부모가 안가르쳤을 수도 있고, 아이가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길게 보자면 이게 도리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도, 언어습득능력은 아기가 어릴 때 가장 뛰어나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에서는 영어를 어떻게든 어릴 때 가르칠려고 그 난리를 친다는데.. 왜 내 아이가 공짜로 2개국어, 3개국어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느냔 말이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지만, 한국어를 하면 나중에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기도 쉬워지는데.. 왜 그 무한의 가능성을 미리 버리는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스스로 영국인처럼,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그들같은 영어를 구사한다 하더라도, 본인에게 흐르는 '한국인'의 피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리어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위해서도 낫다.
내 아이가 다른 이들에게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본인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게 중요하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무턱대고 자랑스러워 할 필요도 없고, 그 사실이 부끄러울 필요도 없다는 거다. '내게는 한국인이라는 피가 흐르고 있다'라는 것. 한국인이라는 걸 부정하기 위해 일부러 한국사람들을 피해다니거나, 일부러 영어로만 말하거나 하지도 않고, 한국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누가 김밥을 '스시'라고 부른다고 화낼 필요도 없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 생각으로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언어나 역사 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뿌리에 대한 확실한 태도가 잡혀 있으면 나중에 흔들릴 일이 적을테니까...
......
고작해야 아기는 아직 17개월인데.. 아기의 활동성이 커지고, 더불어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사회/친목 활동이 많아지면서 내 생각도 더불어 많아지고 있다. 내 행동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어깨가 쳐져 있거나 움추려있진 않은지 내 자세를 확인하며, 목소리의 톤을 분명하게 하고, 눈에 늘 힘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확실히 깨달은건, 아무리 상대방이 나를 첫인상으로 낮게 보며 대한다 해도, 내 말투와 태도가 자신감있고 분명하면, 그들 역시 태도를 바로 바꾼다는 거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태도는 내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바꾸게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그들은 내 아이를 기억하고, 내 아이에게 늘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다. 결국은... 아기를 차별받지 않게 하려면, 나부터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