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영국엄마들의 교육열

민토리_blog 2014. 1. 16. 06:55

같이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은 대략 9명 정도가 되는데, 요즘 우리끼리 모이면 늘 대화의 주제는 '어느 학교가 좋은가'로 귀결된다. 그도 그럴것이 최근에 둘째를 낳은 L과 둘째를 임신한 나를 제외하곤 다들 아이를 하나씩 둔 엄마들인데, 9월-9월 생으로 학년을 나누는 영국 시스템에 따르자면 2012년 10월 이후에 태어난 C와 M의 아기를 제외하면 7명의 아이들 모두 같은 시기에 학교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타운에 사는 L, C와 K를 빼고 6명 모두 같은 구역에 살기 때문에 다들 근처 학교들을 비교하고 다른 엄마들은 어느 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벌써부터 그 탐색 열기가 뜨겁다. 


나야 이 동네에 이사온지도 얼마 안됬고, 그보다 이 동네에서 꼬맹이를 학교에 보낼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대부분 귀동냥으로 다른 엄마들의 의견을 듣는 편인데... 최근에 모인 모임에서 좀 놀라운 얘길 들었다. 


대부분 영국의 타운을 보면 초등학교가 몇개씩 있다. 영국에서도 State school 같은 경우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입학 여부가 대부분 결정된다. 그래서 좀 괜찮은 공립 학교일 경우, 어떤 엄마들은 6개월 전 부터 그 근처에 위치한 집을 임시 대여했다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다시 본래 집으로 돌아가 장거리 통학을 시킨다던지, 아니면 그 구역에 사는 친척이나 부모에게 부탁해서 주소를 빌리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학군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사도 불사한다는 엄마들과 비슷한 모양새다. 


지역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는 학교들이 있는데, Public school이야 물론 예외고 (누구든 그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야...), Public school만큼 학비가 비싸지 않으면서 수준이 높고 환경이 좋기로 유명한 학교들은 대부분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다. 그 외에 웨일즈에서는 Welsh Medium School (웨일즈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함)도 일반 공립학교들보다 수준이 높은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웨일즈에서 계속 살면서 정부관련된 일을 할게 아니라면 웨일즈어 자체의 유용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내 주변의 엄마들은 대부분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괜찮은 준사립을 알아보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런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들은 대부분 입학 기본 조건을 해당 종교의 신도를 우선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긴 종교재단에서 달리 학교를 운영하랴... 어쨌건, 친한 엄마들의 얘기에 따르면 지금 살고 있는 구역에 있는 3-4개쯤 되는 초등학교들 중 가장 수준이 괜찮기로 소문난 곳은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P학교라고 하는데... 이 구역에서 또 괜찮다고 소문난 고등학교인 S학교 역시 카톨릭 재단이기 때문에 장기간 계획을 세우자면, P학교-S학교의 라인이 제일 낫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학교가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거란 거고, 내가 알고 있는 이 엄마들 중 기독교 신자는 있을지언정 카톨릭 신자는 아무도 없다는 거다. 


그럼 입학 방법이 없지 않느냐.. 다른 엄마들이 인맥을 동원해 수소문해 본 결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교장 부인의 친구를 안다는 D가 슬쩍 떠본 결과, 굳이 천주교 신자라 아니라도 들어갈 순 있지만 그건 순전히 Father (신부님) 마음이라고 했다. 즉 신부님이 맘에 들어하면 입학이 가능하고, 아니면 허용이 안된다는 거다. 그러자 M이 말하길, 동네 엄마들의 말을 듣고 물밑작업을 하기 위해 그 신부님이 계시는 카톨릭 성당에 몇 번 나갔다가 안면을 튼 후, 신부님께 학교에 대한 입학 기준 등을 슬쩍 물었는데, 신부님의 첫 질문이 "Are you married?" 그래서 결혼을 했다고 하자, 어디서 했느냐고 물었고, 그냥 Civil service로 했다고 하자 그건 결혼으로 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10개월 된 아기가 좀더 좋은 학교를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시 그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에서 부모님들만 불러 조촐한 결혼식을 따로 올리고, 3주후 그녀의 아들을 거기서 세례받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천주교 신자가 된거냐? 그건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기가 그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꾸준히 신도생활을 할 거라고 했다. Pre-school이 3살 때 부터 시작되고 정식 교육이 4살 때부터 시작되니 정말 장기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런 M의 말에, 기독교 신자인 T는 이미 자기 딸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다시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해야 하나, 하며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 성당에서는 세례를 받고 나면 Baptism Certificate (세례 증명서)를 주는데, 듣자하니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아이를 보낼려면 이 증명서를 같이 제출해야 한다고 들었다. 심지어 그 부모의 세례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곳도 있단다;;; 


어쨌건 그 신부님이 보통 독실하며 철두철미하고 깐깐한게 아니란 말을 전해들은 다른 무교인 엄마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결론은 매주가 아니라도 성당에 나가서 얼굴을 익혀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방향으로 나고 있었다. 


....

이 모든 대화를 좀 뜨악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내가 반농담삼아 "It sounds like blackmailing (-내 맘대로 안하면 학교에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협박같아)"라고 말하자, 다들 날 보며 협박인 건 맞지만 이게 현실이다, 라고 말했다. 어딜 가나 Public school에 보낼 게 아니라면 그 경쟁은 치열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듣자하니 괜찮은 공립학교에는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벌써 Waiting list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학교내의 조력자를 포섭하려 하기도 하며, 사돈에 팔촌이라도 행여 그 학교 졸업자가 있으면 추천서를 받으려고 열을 올리기도 한다고 한다. 종교까지 바꿀 (혹은 바꾼 척할) 각오를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새삼스레 영국맘들의 교육열에 놀란 날이였다 (물론 이런 것도 중산층 이상의 엄마들에 해당되는 얘기다;;). 


나나 남편이나 영국에 연고가 없는데다가, 아직은 한곳에 정착할 계획이 없기 때문에 꼬맹이의 교육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그 기준을 넓게 잡고 있는 편이긴 한데... 예전에는 마냥 괜찮은 village school에 보내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런 학교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학교의 환경이나 교육 수준만 염려에 두는 게 아니라, 영국에서는 그 학교 학생들의 가정환경도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학교가 있는 마을의 환경, 소득수준, 사람들의 분위기 등등도 다 고려해야 하는 거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나라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하는 중... ㅎㅎ 이러고 나니 종교도 구역 이사도 아니고 아예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내가 다른 영국맘들을 보고 놀랄 게 아니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