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나도 완벽한 아내, 엄마이고 싶다.

민토리_blog 2012. 10. 2. 05:48

최근들어 아기는 낮잠이 없어져서 종일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다가 칭얼거리면 달래주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 그러다가 잠시 아기가 잠이 들면 정신이 몽롱한데도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림질에 식사 준비를 하고... 아기가 깨면 다시 위의 일들을 반복한다. 그 뿐이랴, 사람들이 아기를 보러 집에 올 때면 뭐든 대접해야 할 것 같아 아기가 잠을 잔 틈을 타서든, 아님 아기띠에 매고서라도 쿠키나 케익, 파이 따위를 굽곤 한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피곤해 보였다. 그런 남편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후에는 같이 거실에 앉아 나는 다시 아기를 안고 있었다. 피곤한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말썽을 부리고 있는 인터넷이 화제로 올랐다. 그는 내게 BT에 전화를 할 수 있겠냐 했고, 그 외에 아직 해결 안된 Bath tap이나 Wood burner 관련해 전화걸어야 할 곳들이 해야할 일 목록에 보태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무척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화가 난 건 아니였지만 짜증이 났다. 반복되는 일상에, 24/7 계속되는 육아의 부담, 끊임없이 생겨나는 집안일들, 그리고 자질구레한 일들의 처리까지... 나와 함께 육아를 부담하고 있는 남편을 배려한답시고,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있었지만, 나 역시 사실은 휴식이 필요했다. 나도 지친다고 투정부리고 싶었고, 아기를 걱정하지 않고 단 한시간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집안일이나 육아따위 나몰라라 하는 사람도 아니였다. 그는 아기때문에 집에 있게 된 내게 미안해 했고, 일찍 들어오려 했으며 집에서는 뭐든 밀려있는 집안일을 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자진해서 일을 떠맡고, 모든 짊을 다 내 어깨위에 올려놓은 양 힘들어 하는 걸까..

아기를 낳고 집에 있게 된 후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매일이 바쁘게 흘러가지만 정작 ‘성취한게 없다'라는 느낌이였다. 육아는 사실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지만, 그걸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누군가 수료증을 주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집'에 있기 때문에 마치 별 힘든 일 없이 놀고 있는 마냥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가끔 싸가지 없는 남편들은 전업주부인 자기 아내에게 ‘집에서 놀면서 애 하나 못봐! 그리고 집 꼴은 이게 뭐야!’라고 말하기도 하지 않는가. 실제로 미디아 등에서 보여주는 전업주부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니, 미디아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당장 우리네 엄마 세대만 봐도 그렇다. 엄마이기 때문에, 가정주부 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집안일을 당연한 듯 해냈고, 몇 명이나 되는 아이들도 문제없이 다 키워냈다. 지금 우리시대에도 그런 모습은 낯선게 아니다.

그런 암묵적인 요구들에 부응하기 위해서인지, 돈을 벌어오는 게 아니니 그렇게 해서라도 ‘밥값'을 하려는 나름의 노력인지, 혹은 나도 모르게 내재된 현모양처, 착한 여자 콤플렉스 따위가 발동한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알고 있는건, 나도 완벽한 아내 혹은 엄마이고 싶지만, 아내 혹은 엄마가 되기 전에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였고, 임신 중의 호르몬 따위가 ‘완벽한 엄마'가 되도록 내 뇌구조를 바꿔 놓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러니 더 못견디고 애꿋은 사람 잡기 전에 좀 쉬는 법부터 배워야 겠다. 집안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정리해 놓는 것보다, 내 안에 여유를 가지고 아이나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게 정작 완벽한 아내 엄마가 되는 첫 걸음이 아닐까..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