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내가 너를 키우는 건지, 네가 나를 길들이는건지...

민토리_blog 2013. 7. 18. 06:26

아기는 이제 11개월. 

여전히 혼자 노는 건 싫어하고, 내가 옆에 있으면 내 몸이든 옷이든 무엇이든 잡고 서서는 내 손을 끌어당긴다. 산책을 가자, 이 말이다. 내가 때로 귀찮아져서 공같은 걸 던지면 그걸 쫒아 뽈뽈뽈 기어간다. 그리고 뭔가 날렵하고 납작한 걸 보면 입에 물고 기어다닌다. 가끔 보자면 인간의 형태를 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제 일년도 안산 녀석이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오늘은 아침을 먹이는데 손을 음식물에 넣길래 하지 말랬더니 성질을 부리며 수저와 사과를 다 던져버리길래 아침밥을 중단시키고 야단을 쳤다. 손을 잡고 걷다가 어떤 곳에 가지 못하게 하면 내 손을 뿌리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유모차도 지가 끌고 가고 싶어하고.. 내가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내 손을 치우고, 그래도 내가 손잡이를 잡으면 마구 성질을 부린다.;;; 


이제 나름으로 다른 소리들을 내거나 표정을 짓거나 행동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꼬맹이를 보자면 대견하다가도, 가끔 정말 짜증이 솟구쳐 온다. 예전에는 울어도 어떤 기본적인 이유 (배고픔이나 잠오는 등..)가 있기에 그 울음에 인내력이 바닥을 쳐도 '그래, 아기가 뭘 알겠어. 자기도 힘드니까 그렇지'하며 다시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아기를 달래곤 했는데... 요즘은 울거나 짜증을 내는게 기본적인 어떤 이유가 있다기 보다 '지맘에 안들어서, 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해서'라는 이유가 강한 걸 알기 때문에 매번 기싸움이 벌어진다. 울고 소리를 지르는 꼬맹이를 가만히 잡고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하거나, 단호한 목소리로 '안돼'라고 해도 대부분은 들은 척도 안하고 울고 있는 걸 보자면... 정말 인내가 바닥을 치다 못해 성질이 벽을 타고 올라온다. 


그러다가도 그 우는 모습을 보자면... 화남은 다시 사그라 들고 안타까움과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다. 아기를 자꾸 울리는 건 아닌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사실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는 건 아닌지... 1년 전만 해도 내 몸의 일부분이였던 꼬맹이가 내 몸에서 독립한지 일년도 안되서 벌써 내가 이해 못할 행동들을 하고, 가끔 내가 놀랄 모습들을 보여준다.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꼬맹이의 자아도 형성되고, 벌써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앞으로는 더 심해지겠지... 휴... 


솔직히 요즘 꼬맹이보다 어린 아기들을 보자면, 그래, 저때가 편했구나, 하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난 요즘의 꼬맹이를 더 사랑한다. 예전에는 내가 보호해야 할 '아기'로서 꼬맹이를 사랑했다면, 요즘은 '꼬맹이'라는 사람 자체를 알아가면서 사랑해 가는 느낌이다. 어, 이런 것도 좋아하네? 이건 싫어하는 구나, 이렇게 하면 좋아하는 구나, 하고 매번 깨달으면서 말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조건없는 사랑을 주는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에게 먼저 조건없는 사랑을 줬기 때문에 거기에 보답하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내가 무엇을 주든 아무 의심없이 입을 벌리고, 나에게 그 작은 몸 전체를 의지한다.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아기는 내게 늘 손을 내밀고, 내 품에 안겨 있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토록 나를 사랑해 주고 필요로 해준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곤 한다. 나같은 사람을 이렇게나 믿고 이렇게나 원한다니... 그러고 보면, 부모가 받는게 더 많다는 말이 사실인듯도 하다. 솔직히 부모가 아니여도 아기를 키울 순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아기의 그 절대적 사랑과 신뢰를 받는건 정말 선택받은 소수밖에 없으니까.. 


간만에 찾아온 정말 여름같은 날들에 매일 밖에서 내 살이 다 타도록 아기와 열심히 놀아주고 에너지가 방전된 이 늙어가는 엄마가, 삶에 대한 에너지로 똘똘 뭉쳐서 잠도 안자려고 버티는 꼬맹이와 몇번의 실랑이를 한 후 스스로를 도닥거리며 하는 소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