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잡다함의 묘미
민토리_blog
2013. 5. 31. 07:06
책이 가득가득 쌓인 책장이 놓인 방을 좋아하고, 그런 곳에서 차 한잔 놔두고 하루종일 짱박혀 있었음 좋겠다 바라기도 하며, 어디로 가든 제일 처음 찾는 곳은 도서관이고, 시간이 남으면 책 파는 곳을 기웃거린다.
학생 때는 책을 좋아하는 작가별로 읽었다.
도서관이나 어딘가에서 책 하나를 골라 읽다가 그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책을 쓴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어나가는 방식이였다.
그렇게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모든 시리즈들을 읽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은 후 공지영 님의 책들을 읽었으며, '외딴방'을 만난 후 신경숙 님의 책을 읽었다. 한국의 왠만한 작가분들의 글을 그렇게 만났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한창 빠져서 나도 책들의 주인공 처럼 클래식 음악 시디를 하나 마련해 시디플레이어에 넣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을 하나 든체 새벽 5시에 포항으로 가는 기차에 홀로 몸을 싣고 그냥 떠난 적도 있었다.
학창시절에 책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도서관이였으니, 그런 방식은 나름 합리적이었고, 도서관에 구비된 관련 작가의 모든 서적을 읽고 나면 왠지 배가 부른 듯 뿌듯해지곤 했다.
그렇게 글을 읽는 걸 좋아했으니, 글을 죽어라 읽고 학문을 탐해야 하는 박사 기간이 오죽 좋았을까 싶지만... 정작 박사기간은 내 인생에서 독서의 암흑기였다. 좋아하는 것이 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을 때는 그것도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매일 논문에, 학회지에, 관련 서적에, 읽고 읽고 또 읽다보니 그 외의 시간에는 글자 자체를 보기가 싫어졌다. 박사를 마치고도, 늘 읽어야 하는 것들은 많았다. 계속 새로운 학회지의 글들이 나오고, 관련된 기사나 서적들도 꾸준히 읽어야 하고.. 그러다보니 정작 내 맘에 드는 독서는 잘 못했다. 막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도 늘 다른 일에 치여서 중간에 읽다가 그만두고 갖다주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도서관을 애매한 시간 때우기로 사용하는 순간이 많아진 듯하다.
그러다가 바뀐 습관이 중고서점에서 하나하나 책을 골라 사모으는 거다. 영국에는 유독 중고책들을 살 수 있는 곳이 많다. 왠만한 charity shop, second hand shop 한켠에는 꼭 중고 책 파는 책장이 있고, street market이나 car boot sale에 가도 있다. 심지어 National Trust 같은 곳에 가도 중고 책 파는 곳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개 50p 정도나 비싸도 기껏 1-3파운드 정도이니 새 책을 사는 것 보다 훨씬 싸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대신 보물찾기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자기가 찾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있겠지만, 대략 느낌과 줄거리를 보고 샀는데 막상 읽어보니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일 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리고 그렇게 책을 고를 때는 느낌에 상당히 의존한다. 거의 주술적 의식을 행하는 수준으로 책을 눈으로 훓어가다보면 왠지 나를 부르는 듯한 책들이 있다 (우우우~~~). 그런 책들을 뽑아서 안면 (책표지)를 보고, 뒤편의 줄거리를 대충 보고, 아무 장이나 일단 넘겨서 좀 읽어본 후 감이 오면 산다 후후후
그렇게 쌓이고 쌓인 책들이 얼마전에 역시 중고가게에서 산 책장 덕에 나름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얼굴들을 내밀었다 (영국에 온 후로 늘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가구를 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쨌건 그렇게 보고 있자니, 좀 공유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같은 사람이 영국 어딘가에서 중고책들을 뒤지다가 내가 발견한 책들과 같은 걸 보면, 아는 얼굴 만난 것마냥 반가운 느낌이라도 들지 않을까.. 혹은 더 나아가 덥썩 사서 읽고 싶어질지 누가 아는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요즘 활동량이 많아진 꼬맹이 덕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니, 이렇게 글을 종종 쓰면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나름의 채찍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ㅎㅎ
참고.
앞으로 소개할 책들은 다들 내가 영국에서 살면서 읽고 모은 영문 책들입니다. 그냥 영국 어딘가에서 중고책들 뒤적이다 발견할 법한 그런 책들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