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한국의 육아 관련 시설/사고에 관한 묘한 감상

민토리_blog 2013. 4. 18. 03:59
한국에 온지 보름이 넘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아기와 관련해 이런저런 걸 미리 걱정했던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는 그와 관련한 뒷이야기.

1. 수유 가리개와 안전벨트

한국에 도착해서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에어부산을 타고 내려올 때였다. 자리에 앉아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보채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는데, 승무원이 그런 나를 보곤 친절하게 "수유가리개를 가져다 드릴까요" 했다. 사실 스카프나 자켓 등으로 가리고 수유를 하던게 일상이라 굳이 수유가리개가 필요한 건 아니였지만, 수유가리개가 뭔지 궁금했길래 감사하다고 말하며 부탁했다. 승무원이 가져온 수유가리개란 건 앞치마 비스무리 한 거 였는데.. 어찌쓰는지 몰라 그냥 앞치마처럼 목에 걸고 아기를 덮었더니 아기가 싫다고 자꾸 벗겨내서 그냥 원래대로 수유.. 그런데 신선했다. 오-  한국에서는 이런 것도 준비해주는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그런데 비행기 탑승이 다 끝나고 안전수칙이 나오는데도 아기용 안전벨트를 가져다 주지 않는거다. (영국항공을 타고 올 때도 그렇고 유럽내의 비행기를 타면 엄마의 안전벨트에 걸 수 있는 아기용 안전벨트를 따로 준다) 그래서 그 친절하신 승무원께 아기 안전벨트를 받지 못했다고 하니, 24개월 미만의 어린 아기는 그냥 엄마가 앞에 안고 타면 된다고 안전벨트는 따로 없다고 했다. 
물론 안전벨트를 채워도 당연히 엄마가 아이를 꽉 안고 있는거야 같겠지만... 수유가리개는 있어도 안전에 기본인 안전벨트는 없다는 것에 좀 묘한 느낌이 들었다.

2. 모서리커버와 카시트

오빠네가 공항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다. 비행기가 지연되어 그 소식을 전해줄겸해서 전활 했다가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아기 카시트를 꼭 챙겨오랬는데.. 막상 오니 차 안에 카시트가 하나밖에 없었다. 오빠네도 이제 막 돌이 되는 아기를 데리고 왔길래, 그렇게 말해두었는데도 나 아기를 태울 카시트를 잊고 온 오빠에게 좀 화가 났다. 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자기네 아이는 카시트를안좋아하기 때문에 새언니가 그냥 안고 타니 조카의 카시트에 내 아기를 태우면 된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카시트 없이 아기를 태우는 건 불법이기도 하지만 안전상 결코 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괜찮다고 말하는 오빠네의 말에 떠밀려 일단 내 아기는 카시트에 태웠지만, 앞자석에서 새언니에게 안겨 있는 조카 모습에 내 맘이 다 불안해졌다. 그러자 한국에서는괜찮다고, 어차피 택시도 이렇게 탄다고 말을 했다. 그렇게 부모님 집에 왔는데 어머니와 오빠네 사이에서 부모님 집 거실에 위험한 물건이 많다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새언니는 아기가 다칠 수 있다고 사다놓은 모서리 커버도 달지 않고 방치된 탁자며 티비 받침대에 장식된 유리잔 같은 것도 치워지지 않은게 불만인 듯했다.
물론 집안에서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럼 달리는 차 안에서의 안전은 어떻단 말인지... 

3. 수유실과 기저귀 교환대

대전에 갈 일이 있어서 가다가 김천휴게소에 들렸었다. 아기 기저귀를 갈려는데 일반 화장실은 물론 장애인 화장실에서도 기저귀 교환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무척 실망한 맘에 혹시나 싶어 도우미 준께 여쭤보니 수유실로 가보라 하셨다. 수유실이라 쓰여진 곳의 문을 염 순간....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소파에, 전자렌지에, 젖병소독기에, 심지어 아기침대와 여분의 담요까지 있고, 히터도 있었다. 벽에는 육아에 관련한 정보들도 아기자기하게 붙어있었고... 진짜 아기 낮잠재우고 한 2- 3시간 있다 가도 될 것 같은 아기 휴게소였다. 그런데 기저귀 교환대는 따로 보이지 않는걸 보니 아기침대에서 기저귀를 갈라는 건가 싶어 휴대용 기저귀 가는 매트를 깔고 일단 갈았다.
대전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남성주휴게소에 들렸는데, 역시 일반 화장실에서는 기저귀를 가는 곳이 없었고, 김천 휴게소보다 좀 작지만 그래도 아기침대와 소파가 놓여진 수유실에서 기저귀를갈 수 있었다. 수유실 그 자체로는 정말 감탄을 자아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싸보이는 아기침대에 정말로 아기를 재우고 가는 부모가 몇이나 될건가... 차라리 기저귀 교환대를 두고 거기에 맞게 손을 씻는 곳과, 담요 대신 손쉽게 닦을 수 있는 매트를 준비해 두는게 낫지 않았을까 ... 물론 그렇다해도 수유실의 시설만큼은 정말 최고였다. 감동을 받은 나머지 고객의 소리에 깊은 감사의 말을 남기고 나올 정도였으니까...

4. 유모차와 아기띠

이전에 글을 썼을 때 유모차를 끌고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는데.. 이번에 와서 제일 먼저 놀라고 또 감탄했던게 지하철역의 대대적인 변화였다.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 부산의 지하철역에는 엘레베이터가 다 설치되어있었다. 대합실, 승강장, 지상까지 엘레베이터로 다닐 수 있어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데 일단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지하철에도 앞뒤 한칸씩 노약자석 앞에 휠체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둬서 이론적으로는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마도... 엘레베이터 이용하는 이가 워낙 많고, 아무리 노약자와 장애인을 배려하라는 글이 있어도 유모차는 거기에서 제외된 듯 했고, 지하철의 휠체어 공간 역시 때로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그렇다고 그들이 그 자리를 유모차에게 양보해주는 일도 드물어, 행여 사람이 많으면 어찌하지 못하고 지하철 중간에 갇히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총을 사게 되기도 하기 때문일거다.
그리고 지하철 역을 벗어나 막상 가려고 하는 곳에 가자면, 일단 한국의 도로 특성상 유모차가 여유롭게 지나다닐 공간도 없고, 있더라도 노점상이나 불법주차된 차들로 지나다니기 힘들며.. 행여 건물에 도착하더라도 휠체어 등을 위한 경사막이 있는 곳은 극히 드물며 많은 건물들이 엘레베이터 없이 그저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유모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 아기띠를 매고 다녀야 하는 엄마들에 대해 배려가 없느냐. 그건 아니다. 휴게소나 대형마트, 백화점, 심지어 광안리역에서도 그런 엄마들을 위해 유모차 대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그런 면에서는 또 감탄했는데... 그러면서도 또 묘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유모차를 안사는 것도 아니고, 샀지만 실제로 어디 가는데 끌고 다니긴 불편해서 아기 재울 때나 집근처에서만 사용한다는 유모차,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또 따로 유모차를 구입해서 배치해놓는 회사나 공공기관... 왜 그런 이중일을 할까.

....
매번 느끼지만, 한국은 한해가 다르게 바뀐다. 바뀌는 속도도 빠르고, 한번 하고자 하는 건 정말 멋지게 이뤄낸다. 늘 들어올 때마다 그 변화에 놀라고, 그 번쩍거리는 새로움에 놀란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은 간격이 큰 나라라고... 모 아니면 도, 처럼... 어떤 곳은 지나치게 완벽하고 어떤 곳은 기본조차 안되어 있다. 어떤 곳에는 며칠 머물어도 될 것 같은 수유실이 있지만,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기저귀 교환대 하나 찾을 수 없다. 또 어떤 점은 지나치게 신경쓰거나 (수유가리개처럼) 깐깐하게 굴면서 (모서리커버), 정작 중요한 문제 (안전벨트)에는 무서울만큼 둔감하거나 무심하다. 사회 역시 발전해 가는 듯 보이지만, 정작 기본적인 것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엘레베이터를 설치하고 휠체어 공간도 지하철에 만들어 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무심하고 여전히 이 땅의 거리나 건물은 휠체어나 유모차 등의 사용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음으로...

그래도.. 일년새에 이만큼 바뀐 곳이니 몇년 안의 변화가 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