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영국에서 오래 살았구나, 하고 느낄 때

민토리_blog 2013. 3. 24. 07:30

영국생활 9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이런 순간에 난 영국에서 오래 살았구나, 하고 느낀다. 


1.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남발하는 나를 볼 때. 


영국에서 Hello나 Bye같은 인사말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는 단어들은 아마, Thank you, Sorry, 그리고 Please일 거다. 음식점에 가서 주문을 하고 테이블을 셋팅해줘도 Thank you, 음식을 날라와도 Thank you, 다 먹은 접시를 치워줘도 Thank you, 버스 옆자리의 사람과 팔이 닿아도 Sorry, 길가다가 어쩌다 앞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쳐도 Sorry, 옆자리 직원과 잡담하고 있는 직원에게 뭘 물어볼때도 일단 Sorry, 물론 please야 모든 단어, 문장 뒤에 다 붙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국 아닌 다른 나라에 가서도 똑같은 습관들을 반복한다. 물론 그 나라 말로 바꿔서... 

한국에 갈 때도 똑같다. 입국심사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단 '안녕하세요'하고 마칠 때 '고맙습니다', 뭘 사고 나서 계산한 후에도 '고맙습니다', 가게문을 나서다 들어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아, 죄송합니다'.... 몇년전에 한국에 갔을 때, 서점에 가서 책을 보느라 한참 정신이 팔려있다가 등에 뭐가 닿길래 나도 모르게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했는데,... 알고보니 그냥 책 진열대에 몸이 닿은 거... -_-;; 이 얘기를 영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지인에게 말해주니, 웃으며 자기는 강의할 때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반복해서 학생들이 이상하게 보더라고 했다.. ㅎㅎ 


2.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늘 '날씨'로 첫 대화를 시작하는 나를 볼 때. 


영국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대화의 주제 중 하나는 단연코 날씨다. 날이 좋으면 'It's a beautiful day, isn't it', 비오고 엉망이면 'It's awful today', 추우면 'It's freezing, isn't it', 더우면 'It's getting hot', etc. etc. 이웃과도 첫 인사는 날씨, 몇년동안 아는 사이라도 일단 첫 말문은 날씨, 줄 서있다가 앞에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어색해지면 날씨 얘기... 그러다 보니 한국의 가족들과 얘길 할 때도 '잘 지내셨죠' 다음에 따라오는 말은 '요즘 날씨는 어때요', '한국도 많이 추워졌다는데 괜찮나요', '여기도 날이 많이 풀렸어요,' 등등.... 


3. 영문으로 된 글을 읽거나 영어를 듣고 작가나 상대방의 출신/국적을 짐작하는 나를 볼 때.  


영문으로 된 책이나 기사 등을 읽다가 가끔 멈추고 작가의 프로필을 볼 때가 있다. 작가의 국적과 출판지를 보고 납득을 하고 다시 읽는다.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의 철자법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flavor (미)-flavour (영), color (미)-colour (영), center (미)-centre (영), organization (미)-organisation (영) 등등. 그러다 보니 별로 가려내려고 하는 건 아닌데 그냥 읽다보면 뭔가 영국영어가 아니란 걸 알게 되는 거다. 누군가 말하는 걸 들어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를 듣고 그 사람의 출신 지방을 짐작하는 것처럼 여기서도 악센트를 듣고 대략 어디에서 왔다는 걸 짐작한다. 미국식 영어뿐 아니라, 영국인이 아닐 경우 영어 악센트를 듣고 그 사람의 국적을 대략 짐작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인도사람이나 중국사람처럼 보여도 말을 듣고 상대방이 British인지 아닌지를 짐작하고, 다 같아 보이는 하얀피부에 금발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도 말을 듣고 상대방이 영국인인지, 그렇다면 어느 지방 출신인지, 아니면 유럽인인지, 북미출신인지 나도 모르게 머리 속을 굴리게 되는거다. 


4. 개인 거리 확보를 중시하는 나를 볼 때. 


이건 굳이 영국이라기 보다 서양권 대부분이 그런 것 같은데..  어쨌건 영국에서는 개인 거리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줄을 설 때, 서로의 팔이 스치거나 하지 않을 만큼 떨어져 서있기, 길을 걸을 때도 서로 몸을 부딪치지 않도록 거리 확보, 등등. 어쩌다 줄을 서있는데 누군가 너무 가깝게 서거나 하면 좀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거리를 벌리려고 조금씩 움직이게 되는데, 내 앞에 또 다른 사람이 있어 내가 움직일 거리가 없게되면, 그렇게 가깝게 서있는 사람에게 불쾌해진다. 보통은 실수로 그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조금만 사인을 보내면 대부분 알아채고 'sorry'하고 물러서지만, 그렇지 않고 서있는 경우,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의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리를 벌리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사실 한국에 갔을 때 가장 부딪히기 쉬운 부분인데... 우리나라는 끼어들기를 걱정해서 인지,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줄도 따닥따닥 붙어서고,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지하철이나 버스탈 때도 서로 밀치고, 심지어 길에서 부딪히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민감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 차를 대접할 때 우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나를 볼 때. 


처음 영국에 와서 홈스테이를 잠깐 할 때, 첫날 호스트 맘이 차를 마실래, 하고 묻더니 'Milk?'라고 물었다. 뭔 소린지 몰라 멍해 있자 우유를 보여주며 넣을거냐 아니냐 하고 물었다. 차에 왜 우유를 넣어야 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물으니 넣는거겠지 싶어 그냥 'yes'하고 대답하니 이젠 'Sugar?'하고 물었다. 그것도 'Yes'하니, 한술 더 떠 'one or Two?'했다. 그렇게 맛본 첫 English (breakfast) tea....  한국에서도 홍차나 밀크티를 마셔보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충격이랄까.. 그랬다. 그런데 이젠 누굴 초대하면 먼저 냉장고에 우유가 있는지 부터 확인한다. 물론 설탕도 꺼내놓고.. ^^ 그러고 묻는다 'Black or White?'

 

6. 자전거 룰에 민감한 나를 볼 때. 


솔직히 인정하자면 원래부터 자전거와 연관된 도로규칙 등에 민감한 편은 아니였다. 10년이였나 (벌써!!) 혼자 영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4일에 걸려 자전거를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프랑스 땅을 밟자 마자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경찰에 걸린 적이 있을 만큼, 자전거를 타는 것에는 아주 무모했다. 그랬던 내가 캠브리지에서 6년간 주구장창 자전거를 타고 매일 살다 보니 자전거 도로 규칙 역시 중요함을 절절히 알게 된 거다. 특히 날이 어두워 진 후에 무조건 라이트를 켤 것 (개인의 안전을 위해 필수다), 일방향 통행을 자전거라고 해서 역행하지 말 것 (사고난다), 보행 지역에서는 자전거를 타지 말 것, 도로에서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는 손을 들어 확실히 표시할 것, 등등... 그러다 보니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제야 왜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캠브리지에서의 첫 해에 가끔씩 내게 인상을 찌푸리며 나무라는 영국분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재작년인가..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나갔었는데... 깜짝 놀랬다. 먼저 자전거를 타고 도로변에서 왼쪽 주행하는 분들 (차와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분들) - 정말 위험하다. 정주행하는 다른 자전거와 부딪히면 어쩔건가, 도로변이라 피할 수도 없고, 피하려 해도 다른 주행하는 차들 생각하면 정말 위험하다. - 자전거 전용도로가 별로 없는 것도 그렇지만, 보도를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피해 달리는 분들, 심지어 오토바이를 타고 보행자도로를 달리는 분들도 있으니 양호하다 해야 할건가! 하긴 자전거가 도로변에서 달리고 있는 걸 못보고 빵빵거려대는 차들도 많으니.. 어우.. 


물론 그 외에도... 낯선 이라도 줄을 한참 서있거나 할 때 웃으며 인사 주고 받기, 모르는 사람과 버스안에서 소소한 잡담하기, 등등.. (한국에서 동생은 '왜 아줌마처럼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해?' 하고 물었지만... ㅎㅎ 하긴 이젠 아줌마 맞다 ^^).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