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아기는 겨우 잠이 들었다. 피곤했다.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건 친구 P였다. 한 달 후에 결혼하는 친구 N의 Hen party 때문이었다. N의 공식적인 처녀 파티는 이미 그녀의 고향에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였던 대학 도시에서 두 번에 걸쳐 치러졌지만, 첫 번째를 임신 말이라 놓치고 두 번째를 출산 때문에 놓친 나를 위해 계획하던 작은 파티에 대해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P, N, S 그리고 나, 우리 넷은 같은 건물에서 함께 학위 공부를 하며 뭉쳐 놀던 사이였다. 모두 학위를 시작한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벌써 안지 6-7년이 훌쩍 된 오랜 친구들이었다. 그들 중 나는 제일 먼저 학위를 마쳤고, 제일 먼저 그 대학 도시를 떠났으며,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기까지 낳았다.
그들은 늘 함께 파티 하며 놀던 내가 임신과 육아에 발이 묶인 것을 가여워 했고, 그리하여 N의 처녀 파티를 핑계로 나를 잠시 아기로부터 해방시켜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짐작처럼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그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대학 도시에서 차로 4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곳이었고, 이 주위에 파티 할 만한 곳은 전혀 없었으며, 무엇보다 내게는 어디서 뭘하더라도 대략 2-3시간마다 젖을 먹여야 하는 꼬맹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대학 도시와 내가 사는 곳의 중간 지점쯤에 위치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 배경으로 유명한 곳을 지목하며, 혼자 하루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이론적으로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였지만, 그들은 아기의 존재를 잊은 듯 했다. 내가 걸어 다니는 아기의 양식 저장소인데 내가 하루동안 없으면 아기는 어쩌란 말인가? 그런 내 말에 그녀들은 자연스레 젖병을 물리면 안되느냐고 했다. 모유수유인데 어찌 지금 젖병을 물리냐고 하니, 곧 그녀들 어머니, 친척들, 친구, 그리고 젖병수유를 했던 모든 아기 가진 여자들의 케이스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요지는 왜 안되냐는 거였고, 결론은 그래야 내가 편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더불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너무 외진데 왜 예전에 살던 큰 도시 근처로 이사를 가지 않느냐, 그러다 우울증 걸린다. 젖병수유를 하고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그래야 너도 좀 숨 쉴 틈이 생기지 않겠느냐, 등등... 아기도 낳은 적 없는 그녀들이 어느 틈엔가 육아의 전문가가 되어, 엄마인 내게 제안 혹은 충고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나는 어느 틈엔가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알고 있다. 젖병수유를 하면 내 삶이 조금은 편해진다는 거 말이다. 남편에게 맡기고 몇 시간쯤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올 수 있는 여유도 생길 테고, 밤마다 잠에서 덜 깬 멍한 정신으로, 역시 잠에 취했지만 배고픈 아기와 실랑이 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그래. 나도 이왕이면 좀 큰 도시 근처로 가고 싶다. 근처에 유모차 끌고도 편히 차랑 케익을 즐길 수 있는 까페가 있고, 대중교통 10분 이용하면 바로 쇼핑센터로 갈 수 있고, 좀만 걸으면 근사한 산책로와 공원이 있는, 그래. 그런 곳에 나도 살고 싶다. 친정 엄마나 여동생이 부르면 바로 달려 올 수 있는 곳에 살았으면 좋겠고, 전화 한 통에 같이 차나 하자고 올 수 있는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였음 좋겠다. 모든 게 짠, 하고 맞아 떨어진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에 갈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있고 그녀들이 있는 대학 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란 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아는 사람 별로 없고 친한 친구는 더구나 없는 외진 마을에 이사 왔고, 내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 있으며, 내 아기에게는 적어도 이유식 전까진 모유수유를 하고 싶다. 물론 다시 일을 시작할 때가 되면 젖병수유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둬야 하지만, 당장 2주 후에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 위해 젖병을 물리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미 이사 온 집을 두고 당장 다음 달에 이사 갈 준비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게 현재 나의 현실인 거다. 불만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부딪혀야 하는 나의 일상.
그녀들과 함께 일 때는 종종 커피 휴식으로 수다를 떨고, 일주일에 한번 점심을 같이 먹고, 금요일에 맥주를 한 잔하고, 그런 것이 일상이였지만, 지금은 매일 내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작은 사람의 안녕을 위하는 것이 내 일상이다. 그 중간에 집안일이 있고 한정된 내 자유 시간이 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아기 있는 다른 이들의 삶을 보며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 ‘왜 저럴까, 이러면 되지 않나, 그게 그렇게 힘들까'...
그런데 막상 닥치니 알겠다. 삶 자체가 이제 달라져 버렸다는 거 말이다. 그리고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란 거. 아무리 이상적인 육아를 꿈꾼다 해도, 다시 아기를 내 뱃속으로 집어넣어 리셋 시킬 수도 없고, 다른 아기로 주문할 수도 없는, 그렇기에 그저 매일 또 그저 있는 현실대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는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