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말하지 않는다고 괜찮은건 아니다

민토리_blog 2013. 3. 10. 18:39

난 시부모님과 대략 사이가 좋은 편이다. 

멀리 사시고 말도 잘 안통하기 때문에 많이 봐야 고작 일년에 한 두번 찾아 뵙지만, 

그래도 늘 내게 다정하시고 잘 챙겨주시면서도, 우리의 결정에 참견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런 시부모님을 만난 것이 참 행운이다, 라고 늘 생각한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많이 힘들어 할 때, 우리한텐 네가 우리 딸이다, 하시며 더 챙겨주셔서 내 마음도 친부모마냥 그분들을 대하고 있었더랬다. 


어제 간만에 시부모님과 스카입으로 통화를 했다. 

최근에 남편 몸이 좀 안좋아져서 그 일에 대한 상의로 남편과 시부모님 간의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에 난 먼저 아기를 데리고 올라가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웠다. 

아기를 재우고 내려와, 남편과 대화가 어땠느냐 하며 얘길 하는데..

남편의 허리쪽이 간간히 아픈 것에 대해, 시부모님이 내게 마사지를 부탁하는게 어떻느냐고 제안하셨다 했다.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 간단히 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얘기였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아기를 돌보느라 당신도 힘들텐데, 아무래도 하루 두번 마사지는 좀 무리이지 않겠냐고 말을 흐렸다. 


물론 남편 몸이 괜찮아 진다면야, 그래, 독하게 맘 먹고 아침에 아기가 깨기 전에 더 일찍 일어나서 마사지 해주고, 저녁에 아기를 재운 후에도 해줄 수 있겠지만... 

분명 안봐도 일주일도 채 안되서 내가 녹초가 될 건 분명한 일이라, 그럼 저녁때 아기를 재우고 간단히 해주겠다, 하고 타협을 봤는데... 


문제는.... 

그 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자꾸 마음이 불편한 거였다. 

불편함을 까뒤집어 그 내부 속을 뒤적뒤적거리자니, '서운함'이 튀어 나왔다. 

남편도 아니고... 시부모님에게 서운한 마음. 


나도 피곤한데, 아기를 돌보고 최근에는 일까지 하느라 완전 녹초가 되곤 하는데.. 

나 역시 어깨, 허리, 다리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남편의 아프다는 말에 날 더러 마사지 해주라는 말에.. 

역시 내 친부모가 아니구나, 하는 걸 깨우쳐 준 마냥 서운함이 몰려왔다.   


물론 어떠냐, 하고 물으실때마다 늘 '괜찮아요' 하고 웃었던 내 탓이 크다. 


왠만해서는 힘들다 내색을 안하는 난, 늘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참고, 할수 있을 때까지 몰아부치고. 

그러다 정말 정말 지치면 그제야 오일이 바닥나서 멈춰버리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도,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얘기 다하고 힘든 티 몇배로 내고 애교 떠는 오빠와 동생보다 늘 뒤로 밀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심 속으로 나도 힘든데, 하고 알아주길 바랬지만... 정작 표현은 잘 못하고, 별거 아닌 것에서 폭발해서는 때로 성질 더럽다는 소리만 듣곤 했다. 


그런게... 내 아기를 낳고도... 변하지 않았더라. 

그건 시부모님께 서운할 문제도 아니고... 

내가 조금만 더 표현을 했더라면, 그분들이 도리어 남편더러 나를 챙겨라 하셨겠지만... 

내가 그저 웃고 다 괜찮다고 철인마냥 버티고 있으니.. 다 괜찮은거라 생각하셨던 거다.. 


내 인생을 통틀어 해오던 버릇이 그리 금새 바뀌겠냐만은.. 

이제 아기도 있고... 내게 기대는 이들도 많아질 테니.. 

이제라도 표현하는 걸 좀 더 연습해야 겠다. 

오일 바닥날 때 까지 달리기 보다, 레드존 들어가기 전에 멈춰서 재충전하는 그런 지혜가 필요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