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다시 스페인

민토리_blog 2020. 7. 22. 06:01

영국에서는 3월 말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리고 4월 초부터 학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재택근무와 홈스쿨링 병행을 한 지 3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부활절 휴가가 취소되었고, 크게 넘어져 피멍이 들었다가 사라졌고, 화상을 입은 팔이 까맣게 변했다가 원래 색깔로 돌아왔고,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 초에 계획한 스페인 여름 휴가 일정이 돌아왔을 때 항해가 취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스페인으로 오기로 했다. 

 

영국 Portsmouth 에서 스페인 Santander를 운행하는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넘어와서 우리가 머물 Valencia 근처에 있는 별장까지 오는 것. 그게 계획이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마스크를 여덟 개 만들었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유로터널을 지나서 프랑스를 가로질러 스페인까지 내려갔는데 꼬박 2박 3일 걸렸었다. 배를 타고 가는 건 24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스페인에 바로 도착한다는 사실 때문에 해봤는데... 사실 피곤한 건 비슷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배에 타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고, 원래대로라면 배 위에는 수영장, 영화관, 아이들 놀이터, 클럽 등등 유흥거리가 많았어야 했는데 다 문을 닫고, 마스크 착용은 필수가 되었다. 

 

방송으로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캐빈에서 나오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그래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이 공공 공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밖에 랍탑이며 폰을 들고 나와 있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내려졌다. 

 

캐빈은 벙크베드로 4개의 침대가 있고 작은 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는 구조였는데, 아이들은 반쯤 신기해하고, 반쯤 작은 공간에 대한 불평을 했지만, 내게는 덴마크에서 독일을 가로지르던 기차 침대칸을 연상케 했고, 일본에서 머물렀던 캡슐 호텔을 떠올리게 했다. 그랬던 시간들에 비하면 이런 건 정말 럭셔리한 경험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줬지만, 아직 그 이면을 모르는 아이들이 알 리는 없겠지. 

 

영국에서 오후 5시 반이 넘어 출발한 배는 다음 날 오후 5시 반에 도착했고, 배에서 내리기 전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여행 일정과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없다, 증세가 없다, 등등을 명시해야 하는 Declaration form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고, 차가 떠나기 전에 직원들이 다니며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했다. 

 

떠나기 전부터 둘째 아이는 열이 있었다 없었다 했는데, 떠나기 전에 의사에게 ear infection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하필 도착하기 1시간 전부터 열이 38도까지 올라서 아이의 서류에는 열이 있다,라고 체크했는데, 체온을 측정하러 다나는 사람들은 그걸 보자마자 측정도 안 하고 바로 빨간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차 앞 유리에 붙였다. 

 

그럼 이제 어딘가로 보내져서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를 받은 후 격리되어야 하나, 아니면 스페인 보건당국에 불려가는 건가, 뭐 그런 거창한 (!) 고민들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작은 보건소로 안내되었고, 거기서 새로 체온을 측정하더니 괜찮다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가란 소릴 들었다;; 

 

그 길로 빌바오 근처 미리 잡아준 숙소에서 하룻밤 묵은 뒤 다음날 7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운전해서 내려왔다. 

 

.... 

 

원래는 우리가 가기 전에 보통 시부모님께서 미리 오셔서 준비를 해두셨는데,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수술을 받으신지 얼마되지 않아 만나는 것조차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몇 개월 간 방치된 집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가자 마자 곳곳에 굶주려 죽어있는 날파리 같은 것들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집안 정리를 시작했는데... 주방에서 정말 만나고 싶지 않던 불청객을 만났다. 

 

한국을 나온 뒤 마주친 적 없었던... 바퀴벌레. 으아... 

 

주방이 밖에 courtyard라고 부르는 야외공간과 연결되어 있는데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이라 아무래도 그 공간에 떨어진 것들이 탈출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알아서 죽거나 한 놈이 주방으로 탈출한 듯했다. 이유야 뭐가 되었든 보자마자 나는 기겁을 하면서 주방 밖으로 뛰쳐나갔고 남편이 신속하게 투입되었다. 

 

바퀴벌레를 보자마자 어린 시절 단칸방에서의 모든 기억과 소름끼치게 방에 울려 퍼지던 온갖 벌레들의 발소리를 떠올리며 질색하던 나와 달리, 직접 겪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남편은 날더러 유난 떤다면서 나무랐다. 

 

그 날 저녁 아이들, 남편과 함께 집 앞에 있는 언덕으로 산책하러 나왔는데 기분이 좀 묘했다. 아몬드 나무에서 아몬드를 따서 바로 돌로 쪼개 먹는 아이들, 아스파라거스를 찾았다며 내게 전해 주는 남편. 뒤로 펼쳐진 산. 

 

내 어린 시절은 어땠더라.. 내가 어릴 때 살던 집 뒤에도 야산이 있긴 했다. 마당이 있는 옛날 집, 그 중 우리가 살던 단칸방 하나와 좁게 딸린 부엌에는 계절마다 갖가지 벌레들이 득실거렸고, 부모는 늘 집에 없었고, 갈 곳이 없어 어쩌다 가게 된 집 뒤의 야산은 놀기 좋은 장소였다기 보다는 미지의 두려운 곳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짧게 했다. 

 

그 때 둘째 아이가 말했다. 

"Can we stop talking about mummy's sad story?"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내가 너희 때는... 옛날에는 이런 것도 없었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네네, '하고 시큰둥하게 넘긴 것처럼 내 아이에게도 내 과거의 이야기는 뻔한 레퍼토리 중 하나겠구나, 싶어서. 

 

이제는 정말 과거는 과거로 묻어둘 때가 된건가. 

 

....

 

그냥 묘하게 과거가 희미하게 스쳐지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주절주절 쓰는 글입니다. 다들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