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영국대학) 학생과 교수의 입장차이

민토리_blog 2013. 2. 15. 07:42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아침 9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늘 바쁘게 준비를 하고 북적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곤 했다. 

학교가 있는 지하철 역이 되면 우르르 학생들이 내리고 그 속을 뚫고 나역시 바쁘게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러다 문득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거나, 혹은 쇼 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곤 발걸음이 멈춰졌다. 

우르르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 아무 표정없이 생각없이 덩달아 움직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답답해져서 그 물결 속에서 발을 빼내서는 길거리 한편에 서있거나, 아니면 일찍 문을 연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창문으로 그 물결을 바라보곤 했다. 

물론 수업에는 늦곤 했지만 말이다. 


50분이였던 고등학교에서의 수업방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2-3시간 이어지는 강의는 처음엔 신선했지만, 곧 지루해지기도 했고, 그 방대한 내용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수업 방식에 지루해 지기도 했다. 쏟아지는 잠을 참기도 했고, 낙서를 하기도 했고, 몰래 다른 책을 읽기도 했다. 

강의실에 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 때는 그런 행동을 한들 교수가 알거란 생각을 못했다. 아니, 안했다. 


후후.. 그랬는데, 이제 내가 그 앞에 서고 나니 보인다. 


학생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저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뭘하는지 알거나 기억하진 못할거라고.. 

뒤에 앉아 있으면 잘 안보일거라고..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입만 살짝 움직여 옆사람과 말하면 못알아차릴 거라고.. 

랍탑을 켜놓고 앉아있어도, 그게 내가 강의 자료를 펴놓거나 노트를 할거라고 생각하지, 내가 딴짓 할거란 생각은 안할거라고.. 

작은 이어폰을 머리카락으로 감추면 모를거라고... 

내 앞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앉아 있으니, 이 사람들이 나를 가려줄거다, 라고... 

하루 정도 강의 빠지는걸 출석을 부르는 것도 아니니 교수가 알진 못할거라고... 

내가 몰래 책상 밑으로 폰을 가지고 노는 걸 교수는 내가 책상위의 핸드아웃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거라고.. 

다른 낙서를 하고 있는걸 교수는 필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거라고. .. 

내가 깜빡 졸거나 잠을 자더라도 100명이 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저 앞의 교수가 알진 못할 거라고... 


..... 

다 안다. 


많게는 강당에서 150명, 작게는 강의실에서 30-40명을 두고 강의를 하는데.. 

앞에 서면 다 보인다. 

사람들 한명 한명의 얼굴을 다 기억하진 못해도, 사진처럼 전체적인 그림을 기억하기 때문에, 

강의가 매주 반복될 수록 어느 정도 빠지고, 누가 새로오고 정도는 알게 되는 거다. 

물론 그 수가 몇백명을 넘어서면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 정도에서는 제일 뒤에 앉아 있어도 다 보인다. 

다른 짓하는 것도 보이고,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는데 눈이 스르르 감기는 것도 보인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대놓고 지적받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강의하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건, 

1) 관심이 없거나, 

2) 귀찮거나 (혹은 진작 포기했거나), 

3) 알지만 더이상 학생이 고등학생처럼 어리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로 이 과목을 선택했을 거란거. 

자신이 하고픈 공부를 위해 온 것이니,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그건 결국 그 학생의 선택이란걸 존중하는 거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출석때문에 억지로 발을 옮기기도 했다. 

대리 출석이 가능해지면 차라리 속편하게 놀기도 했다. 

영국의 대학은 한국의 대학처럼 출석을 부르거나 출석 점수가 들어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런데도 그렇게 억지로 와서 앉아 있는 듯한 학생들이 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그런지.. 그런 학생들을 보면 자꾸 자꾸 고민을 한다. 

강의가 어려운건가... 지루한가... 다른 방법을 시도해볼까.. 

그래서 분위기가 무거워지거나 산만해지면 강의를 멈추고 다른 얘기를 꺼내거나 질문을 한다. 

그럴때 차라리 대놓고 질문을 하거나,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건 낫다. 

제일 힘든건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앉아 있다가 (딴짓을 하거나 자다가) 사라지는 학생들이다. 


내가 이런 고민을 얘기했을 때 다른 동료들이 그랬다. 

'어차피 학생들 하기 나름이고, 잘하고 반응 좋은 몇 명만 끌고 간다고 생각하라'고... 

정말.. 모든 이를 만족시킬 강의를 할 순 없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