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영국 공무원] 처음 한달을 보내고

민토리_blog 2019. 9. 28. 19:09

여름 동안 글을 쓴게 몇개나 되는데 완성하지 못하고 미뤄놨더니 여름이 지나버렸다. 

아이들 여름방학겸 내 이직 전 휴가기간 동안 런던을 시작으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다녀왔고, Southampton과 Brighton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갔다 왔고, 그렇게 영국의 서쪽 웨일즈부터 잉글랜드의 동남쪽까지 둘러보면서 영국의 왠만한 바닷가는 다 봤다고 생각했을 때쯤 본격적인 가족 휴가로 영국을 가로질러 유로터널을 통해 프랑스로 넘어간 뒤 다시 프랑스를 가로질러 스페인 별장까지 가는 긴 도로여행을 했다. 


그렇게 휴가 마지막 날 일요일에 도착한 뒤 바로 9월 첫주 월요일 부터 새로운 직장으로 첫출근. 그리고 그 때부터 정신없이 한달이 지나갔고 마침내 첫월급을 받고서야 한숨 돌리며 쓰는 이야기. 


전에도 말했듯이 대학에서의 몇년을 보내고 영국 정부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가 대학으로 옮기고, 그 뒤 다시 옮긴 셈이니 직장으로만 따지면 4번째 이직이고 산업 분야로 따지자면 3번째 분야다 (민간부분, 교육기관, 정부/공공부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처음 해본 영국 공무원/정부기관 일에 대해 몇가지 깨달은 걸 말하자면.... 


1. 규모가 크다. 

규모 자체만 따지자면 사실 대학도 만만치 않고, 대기업도 만만치 않을텐데, 대학에서는 학부 단위로 나눠져서 일을 하고 학생들 수가 많긴 하지만 일 하는 부분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자면 그렇게 규모가 크다는 생각은 안했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정부기관은 일단 규모가 아주 크다. 거기다가 분야가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다들 open office라서 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Smart working이라고 해서 사람들 마다 정해진 자리가 없이 그때 그때 마다 바뀌곤 하는데 (그래도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라 정해진 곳에 늘 앉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더라도 그렇게 멀리 혼자 따로 앉는 경우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동이 잦다), 그래서 나같이 처음 시작한 사람한테는 도대체 어느 만큼 익숙해져야 하는지 적응하기 좀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면, 만약 내 부서 사람들이 다 한곳에 모여있고 이동이 적으면 그 사람들을 내 '인사목록'에 적어두고 얼굴과 이름을 익히려고 하면 되는데, 여긴 사람들이 바뀌니 어느날 나타나 때때로 내 자리 근처에 앉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할지 말지 좀 애매하게 되는거다. 특히 나 같은 경우 이직과 동시에 맡은 직책이 다른 부서와 연계가 많은 곳 매니저 위치라서 당장 내 부서 사람들 외에 다른 부서 사람들까지 만나고 하다보니 이 곳의 복잡한 연결고리 때문에 더 크게 느껴졌다. 


2. 시간 관리 

대학에서는 시간관리라는 게 따로 없었다. 강의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알아서 써야하는 건데, 그렇다보니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고, 일이 밀리는 날에는 (특히 학기 기간) 저녁이고 주말이고 틈틈이 일하는게 일상이였다. 그전에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는 대체로 사람들이 8-9시 사이에 출근해서 5-6 사이에 퇴근했는데, 시간을 체크하긴 했지만, 이건 보통 시간수를 채우지 못할 때를 방지하기 위해서고, 역시 일이 몰리면 야근이나 외국 고객 회사 같은 경우 새벽에 일하는 때도 있었지만, 그 자체는 그냥 해야만 하는 일로 인식되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시간을 아주 철저히 잰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알아서 시간을 써서 풀타임 같은 경우 점심시간 최소 20분을 제외하고 하루에 7시간 24분을 일하는게 목표인데 (주 37시간 근무), 4주 단위를 따졌을 때 주당 근무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그것보다 많이 일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특히 4주 근무기간 동안 최대 일한 시간이 정해진 시간보다 2일이 넘어가면 위에서 뭐라고 한다! 그리고 출장 같은 경우 여행 시간도 다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다른 지역에 있는 오피스에도 내 부서 사람이 있어서 이미 2번 다녀왔는데 여행기간만 최소 5-6시간 걸려서 이미 일한 시간이 정해진 시간보다 13시간을 넘겼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쌓이면 그걸 Flexi leave라고 휴가기간으로 바꿔서 쓸 수 있다). 

사실 처음에 적응이 안될 때는 이제껏 했던 것처럼 읽어야 할 것들을 챙겨서 '나중에 저녁에 읽어야 겠다'하고 집으로 가져가려고 했는데, 주위로부터 '왜 그런 짓을 하냐'라는 제재(!)를 받고 슬슬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관리 쪽으로 또 하나 다른 점을 발견한 거라면... 대학에서는 사실 점심시간에 이뤄지는 회의가 많았다. 아무래도 다들 강의 때문에 바쁘다 보니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회의나 모임, 미팅, 그런게 많았는데, 그래서 여기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여기서는 의무적으로 점심시간 최소 20분을 근무시간에서 제외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점심시간은 일에서 벗어나는 시간으로 여겼다. 그래서 점심시간 때는 일과 연관없이 정말 친한 사람들과 먹는다던지, 산책을 간다던지, 그렇게 정말 자기만을 위해, 혹은 사적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난 여기저기 미팅에 쫒겨 대부분 컴퓨터 앞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때우는 시간이 많았지만 ㅜ_ㅜ) 어쨌건 시간 부분에서 따지면 확실히 work-life balance 부분에서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게 좋다!


3. 아주 다양하다 

정부기관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워낙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일단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복장도 아주 자유롭고, 다양한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딱 봐도 컴퓨터 게임 팬인게 분명한 사람, 바이킹 저리가라 할 정도의 풍성하고 긴 헤어스타일과 수염을 자랑하는 사람, 저래도 되나 싶게 늘 짧은 치마를 입고 등장하는 사람, 늘 신발없이 양말만 신고 다니는 사람, 여자옷을 즐겨입는 남자분, 다양한 머리색, 등등 하여간 이젠 뭐 놀랍지도 않을 만큼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건물 곳곳에 남자/여자 화장실 뿐 아니라 유니섹스 화장실도 있다. 


4. 아주 영국(!)스럽다 

3번의 포인트와 연결해서,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영국 스럽다. 하긴 영국 정부기관이니 당연히 영국인이 많은게 당연하지만, 사람들 수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랄까, 문화랄까, 하여간 아주 영국스럽다;; 그동안 브라이튼, 런던, 캠브리지에 살 때는 외국인 수가 워낙 많다보니 그런 생각을 잘 못했고, 웨일즈로 이사와서는 주위환경이 외국인이 없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대학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매일 출근하다보니 적응이 될만하면 매일 뭔가 아주 영국스러운 것들이 나타나서 나로 하여금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일단 영국 정부기관이라고 해서 외국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나만 해도 영국인 국적자가 아니지만 일하고 있으니까;;). 유럽인들이 몇몇 있긴 하고, 아주 드물게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수가 위로 올라갈 수록 절대적으로 줄어든다. 특히 내 직급부터는 영국인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아주 드물어 진다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거기다 인종까지 더해지면 아주 아주 극소에 불과하다 (일정 직급 이상이 모이는 전체 management meeting에 아직 참가해보진 않아서 단정할 순 없지만 - 미팅이 다음 달에 있으니 가보면 더 잘 알게 되겠지만... - 현재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영국인이 아니고 백인도 아닌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대화를 하다보면 문득 웃음이 나오거나 새로 배우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정말 영국인다운 발상이구나, 싶어서;;; 이 부분은 요즘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이라 나중에 더 자세히 쓰고 싶으니 일단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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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렇게 매일 바쁘게 적응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전체 부서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고 있는 중간이라서 아주 애매한 분위기를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보통 이럴 때는 '저는 이제 막 들어와서 모름'이라는 팻말을 들고 서있긴 하지만, 얼마 전에 제 부서 사람 몇이 구조조정으로 인해 자리를 잃었는데.... 그 상실을 보면서 담당 매니저로서 뭔가 할 수 없다는 것도 괴로웠고, 그 자리를 어떻게 메꿔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고민도 같이 들면서 여전히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 불가하지만, 해결책이 쉽게 제시되지도 않고, 변화도 대체적으로 느린 아주 전형적인 공무원 사회의 위계질서를 대하면서 답답해하기도 하고... 어쨌건 한달을 아주 빨리 달렸으니 이제 슬슬 적정선을 찾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달이긴 한데 한달이라는게 안 믿겨질 정도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고, 저번주에 구조조정으로 인한 큰 폭풍이 불어서 다음주부터는 또 바빠질 것 같구요. 그래도 뭔가 영국 생활 15년만에 또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될 것 같네요 ㅎㅎㅎ 


여전히 이토록 게으른 글쟁이라서 죄송합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하고 또 소식 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