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Eleanor Oliphant is completely fine] 현재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민토리_blog 2019. 7. 10. 23:07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여자가 생각났다. 늘 화가 나있거나 소릴 지르거나 울던 여자. 화가 나 주체를 못할 때면 자기 자식을 때리고, 밖으로 도망치는 자식을 쫒아 나와서 까지 때리던 여자. 
같이 죽자며 살충제를 자기 자식 입에 밀어 넣던 여자. 그리고 나서 자기 입에 살충제를 쑤셔넣던 여자. 작별인사 하나 없이 집안 가구까지 털어서 어느 날 사라져 버린 여자. 
그리고 어느 날 죽었다는 통보와 함께 붕대에 칭칭 감긴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긴 여자.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도 않다가, 죽고 나서야 사진 두 장과 함께 남겨진 이름 하나. 

흔히 사람들은 자기도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입장을 이해하고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해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부모가 아니었을 때는, 그래, 삶이 얼마나 고단하면, 그럴 수 있지, 우울증일 수도 있지,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막상 부모가 되고보니, 이렇게 작고 여린 어린 아이를 그렇게 까지 때리고 학대해야만 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잠시만 혼자 두어도 걱정이 되는데, 하루종일 보호자도 없이 네다섯살 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혼자 방치해두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은거다. 그래서 더 생각할 수록 아주 또렷하게 그 사람이 얼마나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는지, 귀찮아하고, 자신의 모든 불행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랑 따위를 운운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깨닫게 되는거다. 물론 그 사람은 이미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죽었고, 그 사람을 대신해서 변명을 해줄 사람도 이젠 없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죽은 후에도 꽤 오랫동안 내 주위에 머물렀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괴로워 했고, 혹시 내 탓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스스로를 괴롭혔으며, 언젠가는 그녀가 나타나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내게 용서를 구하는 상상같은 헛된 희망을 품으며 버텼다. 그 사람이 죽고 나서는, 마지막까지 단 한마디 없이 사라진 그녀에게 화가 났고, 이렇게 마지막까지도 버려진 스스로가 불쌍해 울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냥 그렇다. 이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 묻는다면... ‘Well, I’m fine’ 하고 대답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 제목의 fine은 내가 의미하는 바와는 좀 다른 의미로 쓰여진 거겠지만... 

..... 
이 책을 처음 알게 된건 social worker 인 친구의 추천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책 얘기가 나온 건지 모르겠는데, 이야기 끝에 친구에게 ‘그래서 그 책 제목이 뭔데?’ 하고 물었고, 그 친구가 일주일 정도 지나서 이 책을 내게 빌려줬다. 고맙다고 받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 끝에 이 책 이야기가 나온 건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 백지의 상태로 책을 펼쳤다. 


솔직히 초반에 나오는 엘레노어 그녀는 그렇게 까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씩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담은 책 치고는 상당히 가벼운 느낌을 주는 책이라서 어쩌면 내 기억의 한편도 적당히 자극했는지 모를 일이다. 만약 그 주제만큼 무겁게 진행된 책이였다면 나도 덩달아 구덩이에 빠졌을 것 같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말하자면 관계에 관한 이야기고,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과거가 무엇이였든 간에 살아남은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


......

그저 마지막을 덧붙이자면... 어린 시절의 상처는 아주 오래 간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는 연관된 사람들이 다 죽고나서야 말할 수 있는 덤덤함이 생겼지만.. 치료되고 무뎌진 상처라기 보다는 이젠 파헤칠 곳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체념에 가까운 덤덤함이다. 아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의 죽음을 통해 이제야 좀 해방된 기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좀 끔찍할 수도 있겠지만... ;; 

행여라도 현재 지치고 힘들고 과거의 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여전히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들이라면... 작은 위로라면 위로겠지만.. 당신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그 어둠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