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프롤로그

민토리_blog 2012. 9. 26. 18:49


내가 사는 곳은 영국 웨일즈의 작은 마을이다. 구글맵에서 몇배나 확대를 해야 이름이 나타나는 그런 곳. 마을에 Inn을 겸하는 펍이 하나 있고, 한 거리에 Co-op 수퍼마켓 하나, 미용실 하나, 잡다한 것들을 다 파는 잡화점과 약국 하나, 보건소 그리고 최근 몇년의 경제상황 악화로 문닫는 작은 가게들이 듬성듬성 끼여있는 그런 작은 마을 말이다. 6년을 보낸 대학도시에서 큰도시의 언저리로 이사갔다가 이곳으로 온지는 몇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을 대학도시에 여전히 남겨두고, 큰도시에서 사귄 친구들도 두고 온 이곳에서 좋은 점이라곤 큰 집과 정원, 그리고 아주 시골스럽지만 멋진 풍경밖에 없다. 그리고 영국에 와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날씨는 늘 변덕스럽고 특히 웨일즈의 날씨는 매일 구름과 비의 연속이다. 이 곳에서 나는 임신의 마지막 3개월을 보냈고 출산예정일을 4일 넘긴 새벽에 초생달과 잠든 양들을 보며 언덕을 두번 넘어 근처의 더 큰 마을 병원에 가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낳을 때도 낳고 난 후에도 남편 외에 와 줄 가족이나 친척들은 없었다. 둘다 제 나라를 떠나와 살고 있었고, 우리의 가족들은 해외여행에 서툰 사람들이였으며 영어라면 더구나 질색인 사람들이였기 때문이다. 출산부터 내 기대와는 완전 어긋난 시작을 했고, 지식으로만 무장된 우리 앞에 떡하니 꼬맹이 하나가 맡겨졌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되었다.

남편과 둘이 우왕좌왕했던 2주일. 그 2주일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남편. 그리고 남겨진 나와 아기.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기의 울음 소리 혹은 정적만 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왠지 나만 세상의 시간에서 소외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로든 소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짤막한 문자로도, 메신저로도, 아기 울음소리를 백그라운드로 하는 대화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런걸 달래고 싶어서 글을 쓰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들이, 혹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조금은 바래본다. 영국에서 처음 아기를 낳으려 하거나 낳은 사람이든, 그저 타지에서 혼자 동떨어져 아기와 남아버린 사람이든, 아님 단지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든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