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영국에는 사교육이 없다?

민토리_blog 2018. 10. 9. 22:44

영국에서는 새학기가 시작된지 거의 한달이 넘어간다. 한국에서 새학기가 3월에 시작한다면, 영국에서는 9월 (대학들은 9월말, 10월 초)에 새학기가 시작되는데.. 덩달아 아이들도 한 학년씩 올라갔고, 대학도 새내기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들이 언제 시간이 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날 수 있는 기회나 시간들이 정해졌는데, 요즘에는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잡을 때, 제한 조건에 한가지가 더 늘어난 걸 발견했다. 그건, '아이들의 스케쥴'. 


영국의 학교 시간이 보통 9시 전후에 시작해서 3시-3시 반 사이에 마치는데, 그 이후에 아이들이 뭘 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주말에 아이들이 뭘 하느냐에 따라서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 달라지는 거다. 내 아이들만 하더라도, 월요일 방과 후에 둘째 아이의 댄스교실이 있고, 화요일 오후에는 두 아이 모두 태권도, 목요일 오후에는 방과후 클럽 후에 첫째 아이의 럭비부 활동, 토요일 오전에는 두 아이 모두 태권도 교실, 이렇게 다니는데... 다른 엄마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다들 수영 하나, 운동 하나, 거기에 드라마 교실, 음악 교실, 스카우트 활동 등등 하나씩 추가되어서 일주일의 일과가 짜여졌다. 평소에는 다 그렇게 하니 하나씩 남편과 나의 공동 달력에 적혀져 있던 거라서 별 생각없이 보냈는데, 최근에 한국에 있는 동생과 얘기하다가, 아, 한국에서 아이들 학원 다니는 거나 여기서 이런 저런 'class'에 보내는 거나 별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다만 다른 거라면 한국에서는 아이들 혼자 학원을 다니거나, 학원 차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갔다 한다면, 여기서는 그걸 부모가 한다는 게 다른 점이랄까... 물론 학교에서도 방과 후 활동이 있긴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일 경우에는 종류도 제한적이고 (물론 사립 학교는 종류가 많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지만), 시간도 고작해야 30분 정도라서 그냥 부모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는 정도랄까.. 그 외에는 철저히 부모가 얼마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냐에 따라 사교육이 결정된다. 


여기서는 정해진 공간에서 그것만 행하는 곳이 잘 없기 대문에 '학원'이라고 불리지 않고, 대신 강사들이 공공기관 등의 장소를 임대해서 정해진 시간, 공간에 수업을 하는 방식이라서 한국만큼 체계적으로 픽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되는 곳이 별로 없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그 정해진 공간, 시간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여력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교육'이 행해진다. 그리고 전체적인 지출을 생각해봐도, 수업 하나당 대부분 싸게는 4파운드, 많게는 10파운드 이상 내는 곳도 있기 때문에, 한달에 그런 수업들을 위해 아이들 앞으로 들어가는 돈도 100파운드 이상이다. 거기에 이번에 둘재 무용 수업을 위해 옷이나 신발을 산다고 한꺼번에 들어가는 돈이 40파운드 이상, 첫째 럭비부 활동 때문에 들어간 돈도 60파운드 이상, 거기에 아이들 태권도 승급 심사에 들어가는 돈도 60파운드 이상... 거기에 다른 친구들처럼 일대일 수영 강습을 시키거나, 첼로, 바이올린 같은 걸 시키는 경우에는 그 수업들에만 한달에 100파운드 넘게 들어가는 것도 봤다. 그나마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물가가 싼 지역이라 이 정도지, 런던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 주변만 넘어가도 한 수업당 기본 6-7파운드를 넘어서니... 여기도 사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부모들 사이에서도 인기인 수업들은 아는 사람만 알게 입소문을 타고 퍼지고, 특정 수업에 같이 가는 아이들끼리 학교에서도 친한 패가 형성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첫째 아이의 럭비부 활동 같은 경우, 아이의 같은 반 친구 생일파티에 데리고 갔다가 대여섯명의 부모들이 한 곳에 모여 서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걸 우연찮게 들어서 알게 된건데... 알고보니 아이반 학생들의 부모 몇명이 코치를 담당하고 있는 럭비부였고, 첫째 아이 학년에서 자주 들어보던 남자 아이들 대부분이 거기에 속해져 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학교에서의 일도 있고 해서 첫째를 거기에 데리고 가기 시작한 거다;; 사실 둘째의 무용교실도 첫째의 럭비처럼 비슷한 이유로 시작했다. 이번에는 둘째 아이 학년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온 글을 보고 시험삼아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알고 보니 얼굴만 자주 보던 둘째 아이 학년 엄마들과 아이들이 다 그 무용교실에 다니고 있길래, 없는 시간 쪼개가며 열심히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그런데 진짜 아이들 등하교를 시키지 않으니 확실히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잘 없긴 하다.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과 친해지기도 어렵고...)


어쨌건, 말한 것처럼 영국에도 엄연히 사교육이란 게 성행하고,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가는 건 맞지만, 그래도 확실히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영국에서 사교육은 확실히 여건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유행한다는 거. 영국의 중산층들은 대부분 도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 같은 주거지역에서 모여 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들 한 가구당 최소 차 한대 정도는 가지고 있다. 아이들도 걸어서 부모와 등하교 하는 학생들만큼 (혹은 지역에 따라서 그보다 많이) 차를 타고 등하교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문화시설이 한 곳에 집약된 게 아니라서, 차가 없으면 시간에 맞춰서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 많은 사교육의 공간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잘 없고, 무엇보다 빚을 내거나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아이들의 사교육에 올인하는 문화자체가 영국에는 거의 없다. (아무리 주위 학부모들 중에 어떤 특정 과외가 유행한다하더라도, 아이들을 보낼 여건이 안되면, 그냥 그 학부모들과 안 친해진다 -_- 결국 부모들 사이에서도 그룹이 갈라지고, 그게 아이들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런 걸 보다보니, 왠지 영국 사회를 좀더 이해할 것도 같다. 한국과 달리 왜 영국에서는 그토록 사회계급의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지.. 왜 세대에 걸쳐서 빈곤이 세습되기도 하는지, 왜 어떤 이들은 변화조차 생각하지 않는지...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여기도 아이들을 둘러싼 '소리없는 경쟁'은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기도 한다. 아무도 대놓고, '어머, 아직도 그거 안해요?'하고 말하지 않지만, 내 아이의 활동에 대해 은근슬쩍 자랑하는 건 똑같고, (예, 우리 애가 요즘 첼로를 배우는데, 배운지 몇주 안되었는데도 애가 곧잘 따라하더라, 이번에 수영 개인 교습을 했더니 애가 접영도 배운다더라, 등등..) 누가 뭘 하나 비교하는 것도 똑같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