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대학) 대학원 탐구생활
최근에 한국의 대학원 상황을 재밌게 그려놓은 글을 읽었는데... 학생들은 어김없이 과제와 시험에 치이고, 대학원생들, 혹은 조교들은 거의 대학교의 끝판왕 같은 교수들 밑에서 카페인과 밤샘에 쩔어가며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특히 대학원생들은 거의 교수의 노예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보며 웃다가 문득 영국에서 대학원 생활은 어땠더라 하는 생각에 한번 적어보는 글.
나같은 경우 지금 일하는 대학까지 합치면, 한국 대학 하나, 영국 대학 셋, 총 4개의 대학에서 공부/일해봤다. 특히 전공도 바꾸고, 연구분야도 주제가 달라지면서, 공대, 사회대, 경영대도 경험해봤다. 아주 주관적이게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껏 봐오고, 경험한 대학원 생활을 보자면...
공대(한국): 한국에서 학부를 다닐 때는 안그래도 공대라 남자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나이차이가 꽤 두드러지게 보이는 편이였다. 바로 한 학년 위 2학년 선배들인데 나보다 나이는 4-5살 많다고 해야 하나;; 물론 그나마 1학년 초에는 2학년 선배들도 군대 가기 전이라 나이 차 별로 안나는 선배들도 많아서 괜찮았지만, 2학기 되면서 부터 대부분의 젊은(!) 선배들이 군대를 가고, 복학하는 선배들이 느는데다가, 동기들도 서서히 군대가기 시작하면서 큰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특히 학부 통틀어 얼마 없던 여자 선배들도 2학년 지나면서부터는 잘 안보이기 시작해서,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는 새내기들한테 큰(!)언니/누나/선배 대접을 받는가 하면 군대간 동기들의 빈자리를 채우며 돌아온 복학생 선배들과 갑자기 동급생(!)이 되어 적응해야 했고, 하여간 변화가 많으면서 묘하게 고립되기도 쉬웠던 시기였다. 흔히들 제 3의 성으로 공대여자, 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보면 공감가는 말이기도 하다. 1학년 때는 우르르 뭉쳐 놀다가 남학생들이 군대를 가면서 여자애들끼리 패가 많이 갈라졌는데... 그 중 여성스러워서 공주대접 받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남자들과 동급 취급 받는 여학생들도 있고 (공대여자;;), 아예 과활동을 때려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과에서는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어쨌건 1학년 때야 워낙 놀 친구들도 많고, 교양수업도 많고 해서 모르고 넘어가다가 2학년이 되면서 부터 새로 마주치게 되는 존재들이 생겼는데, 그게 대학원생이였다. 전공수업이 많아지면서 실험도 많아졌고, 자연스레 실험조교로 대학원생들이 나타났고, 전공수업 시험 감독으로 담당교수님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들어오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주위에 급격하게 늘어난 복학생 선배들의 남자 선배들, 여자 동기/선배들, 혹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남자 동기들이 대학원에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과 있다가 소개 받기도 하고, 그분들을 술자리에서 보게 될 일도 종종 생기게 되었다. 내 기억에 그분들은 거의 늘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삼색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끔 여럿 모여서 건물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드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선배들과 친해지자 그제야 어느 교수님 연구실이 빡세다더라, 그래도 연구자금이 많아서 괜찮다더라, 이런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워진 대학원에 다니는 여자 선배가 연구실에서 나이 때문에 성별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는 거 보고 그걸 계기로 한국에서 대학원 다니는 건 포기하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한국의 대학원 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건 내 동기/친구들이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다른 지역에 있는 K, P공대를 다녔던 친구들을 보러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인상깊었던 건 기숙사방. 한 방인데 어찌나 영역 구분을 착실하게 해서 쓰고 있는지... 들어가면 안보이는 벽이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생길 정도였다;; 물론 그 친구들의 생활은 내가 얼마 전에 읽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숙사와 연구실 구분없이 거의 24시간 상주하는 상황이였고, 실험값을 측정하느라 연구실 바닥에서 침낭 깔고 자는 친구들도 있었고;;.
공대/경영대/사회대(영국): 영국와서 느낀 건데.... 공대는 어딜가나 비슷하다;;;; 건물 안을 들어가면 그 특유의 금속 냄새가 난다. 컴공 건물 쪽은 아주 시원하고... 한국의 대학원이 교수를 중심으로한 단위라면, 영국의 대학원은 좀더 느슨하게 나눠진다. 특히 한국의 대학원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 주종관계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는거? 한국에서는 교수들이 가지고 온 연구자금으로 연구실을 꾸리면서 밑에 둘 수 있는 대학원생들을 받아들이는 작은 기업같은 시스템인데, 영국에서는 특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Studentship을 받아서 오는게 아닌 이상, 개인이 알아서 돈을 마련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수의 입김이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다. (장학금을 받더라도, 그건 교수가 주는게 아니라 자기 실력으로 어딘가에서 받아오는 거기 때문에 정해진 조건 내에 박사학위를 받기만 하면 됨) 한국에서는 대학원생이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뒤, 그 연구실에 해당된 연구와 관련해 Research associate/assistant의 일을 하면서 자기 연구 분야를 개발해 논문을 쓰는 거라면, 영국에서는 자기 연구분야를 가지고 그에 맞는 교수를 찾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나 이런이런 걸 연구하고 싶은데, 날 좀 도와 줄 수 있겠느냐, 그렇게 Proposal을 제출한 뒤, 교수가 그래, 도와줄게, 그러면 그 교수가 지도교수가 되는 식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뒤에도 교수는 거의 학생을 내버려두다 시피 하는데... 왜냐면, '결국 네 연구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생각하기 때문;; 때로 교수가 지원받은 연구자금으로 대학원생을 연구생으로 고용하거나, 연구생을 따로 고용할 때가 있는데.... 그들은 말그대로 연구를 위해 지원된 인력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그들을 계속 먹여살리기 위해 계속 죽어라 논문과 project proposal을 써야한다;;; 그래서 사실 교수들이 대학원생을 신경쓸 시간이 별로 없기도 하다;; 물론 사람 나름이고, 그 중에는 한국에서처럼 대학원생을 좀더 부리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예. 이 자료 좀 찾아놔라, 이것 좀 읽고 정리 좀 해봐라, 요약 좀 해봐라, 등등), 그 학생이 돈을 받고 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학생이 제때에 졸업하는게 도리어 지도교수에게는 더 득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학생의 연구까지 방해해가며 일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서는 학위수여를 제때 못한 대학원생을 맡고 있는게 도리어 지도교수에게 흠이 된다. 학생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을 보자면, 대체로 세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상주족. 학교에서 거의 살고 있는 것처럼 거의 늘 연구실에 있다. 그들 책상 주변을 보면 쿠션이나 작은 담요같은 건 기본이고, 편한 슬리퍼도 있고, 각종 티 세트에, 포크, 나이프 같은 것도 있다. 한국에서 보이는 대학원생 모습과 가장 유사한 모습. 둘째는 야행족. 낮에는 절대 안보이다가 밤이 되면 나타난다. 저녁도 다 먹고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8시쯤 부터 나타나서 보통 새벽 4-5시, 아니면 늦어도 7시쯤되면 사라지곤 한다. 외국인 학생들, 특히 동양인들 중에 이쪽 분류 사람들이 꽤 된다. 세번째는 투명족, 아예 안나타난다. 무슨 발표가 있거나, 학교 전체 참석해야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면 거의 얼굴보기 힘들다. 캠브리지에 있을 때는 보통 자기 방이나 컬리지 도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학과 건물에 안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외 영국 다른 두 대학에서 본 경우로는 대학이 집과 멀어서 왠만한 일이 아니면 아예 학교에 오질 않았다. 아, 그리고 영국에서는 기숙사라 하더라도 두 명이 한 방을 나눠쓰는 경우는 거의 (아예?) 없다. 아마 그래서 자기 방에 짱박히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하긴 나도 시험기간에는 기숙사방에 짱박혀 며칠이고 보낸 적도 많으니까;;;
영국에서도 대학원생들이 가끔 수업을 담당하거나 학부생들 과제를 채점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시험감독도!) 도리어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위해서" 일을 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이때 강의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임시강사직을 맡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은근히 박사과정 중에 물밑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눈치싸움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도 인맥이 작용하기 때문에;;;). 대학원을 마치고 나면, 캠브리지 같은 경우, 대체적으로 '빨리 나가라'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하산해라, 그리고 널리 퍼져라! 그런 느낌;;), 그 후 두 대학에서는 졸업생들을 가능한 많이 보듬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예전 대학에서 일할 때는 해당학과 전체 교수들 중 그 대학과 아무런 인연없는 건 나 혼자일 정도로 졸업생을 우대하는 문화가 강했고, 사실 지금 있는 대학도 그렇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최근에는 그런 문화를 바꾸려고 일부러 외부인들을 대량 유입하려고 했고, 알고보니 나도 그런 붐을 타고 유입된 외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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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실제로 대학원 생활을 해본게 아니라서 자세한 건 뭐라 말 못하겠네요. 혹시 대학원 생활 하시고 있는 분이 이 글 보시면 의견 나눠주세요~
여기는 개강하기 까지 3주 정도 남았는데요.... 아... 학교 가기 싫네요 -_-;;; 학과장인데.... 요즘 대략 두 종류의 메일을 학생들로부터 받고 있죠. 하나는 신입생들로부터 걱정반 기대반 섞인 이메일, 또 하나는 졸업반 학생들로 부터 '저 이번에 졸업할 수 있을까요, 해야 되는데요' 하는 이메일.... 개강과 비슷한 시기에 연구중간 점검 미팅이 겹쳐서 진짜 더 싫네요 ㅎㅎㅎ ;;;;
내일은 아이들 학교 개학하는 날이에요. 여기는 새학기가 9월부터 시작이거든요. 내일 아침에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네요. 그동안 출퇴근 정체길에 시달리지 않아 좋았는데요... 내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또 매일 아침 출근길에, 출근/등교 준비에, 퇴근길에 시달리겠죠. ㅎㅎㅎㅎ 어우 신나네요. 한국도 가을 학기 시작하겠어요. 모두들 힘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