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신년 맞이 잡설

민토리_blog 2018. 1. 2. 05:46
글을 안쓴지 꽤나 오래 되었다. 정확히는 생활에 깔려서 머리 속에 더이상 생각들이 떠돌지 않았다. 9월 부터는 매일 아침 6시부터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시간인 8시까지 정신없이 하루가 이어졌고, 그 후에도 남편과 종종 거실에 앉아 각자 일을 하다가 10시 반이 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학기가 마무리되고, 아이들 방학도 가까워 질 때 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시댁이 있는 스페인으로 도망치듯 후다닥 날아와 버렸다.. 그리고 새해. 이제야 머리가 좀 돈다. 생각들도 띄엄띄엄 잊어버린 제 집 찾아 돌아오듯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고...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도대체 무슨 말을 정확히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동안 내버려둔 내 온라인 집에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주섬주섬 꺼내놓는 신년 맞이 잡설(!)들.. 

하나. 크리스마스 산타

어릴 때 집이 꽤나 가난한데다 가족들이 그다지 화목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초등학교 이전에 또래들과 어울릴 만한 유치원이나 학원 같은 교육 시설에도 다니지 못했던 까닭에 (그리고 그 때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산타에 대한 걸 처음 알게 된 게 초등학교 입학 후 였는데.. 학교에서 워낙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걸 많이 하다보니 (예를 들면,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다든지, 음악실한테 캐럴을 배운다 든지... )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건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브 날에 산타가 사실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거였는데...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실 꿈도 꿀 수 없었고.. 그래도 혹시나 양말을 놔두면 내게도 선물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 해 이브날에 집에서 나름 큰 양말을 찾아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었다. 그렇게 설레며 다음날 깨었을 때 진짜 선물이 있어 ‘와!’ 했는데 열어보니 장난감도 아니고, 도자기로 된 작은 장식품이 였다... 그걸 보고, 산타가 원하는 선물까지 맞추는 능력은 없는 건가, 아니면 양말이 너무 후져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없어서, 화가 나서 아이들 선물 대신 이걸 놓고 갔나, 그래도 준 게 어디야, 다음에는 좀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둬야지, 뭐 그런 나름의 복잡한 생각을 하며 밖으로 세수를 하러 나갔는데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것처럼 단칸방에 시멘트 바닥의 주방 겸 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그런 곳이였다), 아침을 준비하시던 엄마가 나를 보고는 나무라시는 표정으로, 집에 돈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초등학생이나 되어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고 하다니 철이 없다, 하시며, 그런 너 때문에 어제 밤에 네 아빠와 뭐라도 사려고 거리를 헤매였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뭘 받으니 좋냐고 하셨다.... 
그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하면서 화가 나고, 서럽고, 실망스럽고, 울고 싶다가도 그래선 안될 것 같은 그런 복잡한 기분이 들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한 뒤 세수를 했다. 목에 뭔가 콱콱 막혀 올라오는 걸 누르면서. 그게 내 첫 크리스마스의 기억이고, 산타를 처음으로 믿었다가 바로 깨져버린 기억이다. 그 후 나는 크리스마스에도 양말을 놓아두지 않고, 선물을 기대하지도 않고, 딱히 설레여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첫째가 두 돌이 되기 전에는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지도 않았고, 당연히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물론 장식도 하지 않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영국에서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통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트리를 샀고, 아이들 둘다 이제 제법 커서 유치원/학교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걸 잔뜩 배워 오는 바람에 재작년 부터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를 위한 우유, 비스켓, 루돌프를 위한 당근 따위를 준비해두고, 우린 지금 영국 집이 아닌데 (재작년에는 한국, 올해는 스페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산타가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선물을 안주면 어쩌냐고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산타는 너희가 어디에 있든 찾아 올 수 있다는 소릴 해가며 재우고 있긴 하지만... 영국에 있었던 작년을 제외하고 역시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따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자는 않았다. 올해도 시부모님이 사다놓으신 선물을 그냥 포장해서 산타의 선물로 위장해 놔두었고;;; 
사실 이 산타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산타에 대한 믿음(동심)을 지켜줘야 겠다는 사명감(!)도 딱히 없고, 그렇다고 산타는 없다고 미리 초를 치고 싶지도 않고.. 크리스마스라고 꼭 원하는 선물을 사줘야 한다는 생각도 사실 별로 없고... (솔직히 올해 뭘 갖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들 대화를 통해 알게 된건데, 올해 아이들은 산타에게 장난감 아이패드를 달라고 했단다;;; 물론 그걸 올해 선물로 받진 않았고, 사줄 맘도 계획도 없고;;)
주위에 산타로 부터의 선물, 부모님으로부터의 선물, 조부모, 삼촌, 이모, 고모 등등으로 부터 받은 선물만 한 보따리라는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들을 부족하게 키우는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아주 잠시 들고 또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아이들도 장난감 가게는 구경하러 가는 곳이지 뭘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는 거 같고.. 뭘 사달라고 말을 하긴 하는데, 어차피 안 사줄 걸 알아서 그런지 몇번 투정을 부리다가 만다. 대신 생일에는 딱 하나 사고 싶어 하는 걸 사주는 편이고.. 
만약 내가 동심 가득차고 크리스마스의 환상으로 가득찬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어른이 된 나는 내 아이들에게 다른 걸 주고 싶어했을까. 그게 어떤 건지 겪어보지 못했으니 상상도 사실 잘 못하겠다. 그래도 아이들이 생겨서 좋은 건, 이젠 나도 왠지 들뜬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는 거? 내 마음대로 뭘 할 수 있을 만큼 커버린 후에는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어도 왠지 무턱대고 설레기 주저스러웠는데 지금은 대놓고 같이 캐럴도 부르고 아이들 손을 잡고 춤추고 놀 수 있어 좋다 ㅎㅎ 도리어 내게 이런 기회를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ㅎㅎ 

둘. Life of Full-time working parents  

이미 몇개의 글을 썼었지만, 작년 한해, 특히 후반기는 꽤나 힘든 시간들이였다. 남편이 7월부터 직장을 옮겨서 거기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책임져야 할 무게가 커져서, 출장도 잦아지고, 회의가 워낙 많아 평소에도 제대로 대화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갑자기 늘어난 강의 분량에 치여서 허우적 거렸고... 아이들은 유치원이 문을 여는 8시부터 문을 닫는 6시까지 온종일 학교/유치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계산해보니, 하루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2-3시간인거다! 그러니 이이들도 피곤할 법 하지... 아이들은 화요일 쯤 부터 학교에 가기 싫다고 징징 거렸고, 목요일에는 아주 정점을 찍었다. 둘째는 어리광이 늘었고.. 첫째는 고집이 늘었다.... 워킹맘 생활 초기에는 주말에 막 3-4일치 요리도 해놓고 아이들 도시락도 매일 싸주려고 하고 그랬는데... 그것도 한 3-4개월 지나서 다 때려쳤다;;; 첫째 아이는 일주일에 두 번만 도시락을 싸가고, 주중에는 거의 요리하지 않는다. 그나마 주말에 해둔 요리로 길면 수요일 정도까지 견디고, 그 후에는 밥에 김, 아니면 빵에 치즈, 햄, 그 정도로 저녁을 때운다. 토요일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빨래 돌리기. 밀린 게 많아서 주말 동안 빨래를 3-5번 정도 한다... 그리고 장렬히 전사한 공짜로 얻어온 텀블 드라이어 대신 새로 온 드라이어가 아주 짝을 맞춰 열일을 하고 있고.. 그 후 아침을 먹고 나면 남편과 나눠서 욕실이나 주방 청소를 하고.. 주말에 한번은 수퍼마켓에 같이 가서 장을 봐오고... 이러는 건 아무 일정이 없을 때 그렇고.. 주말에 생일파티나 사람들 만날 일정이라도 잡혀 있으며 장보기만 겨우 하고 집안일은 또 다음 주로 미뤄진다.... 올해에는 청소해주시는 도우미를 부를 까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여전히 난장판인 집안과, 개어야 하는 마른 깨끗한 빨래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왜 몸은 이토록 피곤한데 집안 상태는 뭔가 나아진 게 없는 건지...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고 힘이 빠진다.;; 그럴 때면 마치 이심전심인듯 둘다, ‘Leave it, we will do it later’하고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 버린다. 우리 둘다 그 ‘later’ 가 다음 주말 (혹은 그 다음 주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면서;;; 
맞벌이는 확실히 힘들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다. 직장인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부부 파트너로서의 나, 그리고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한 나. 우리의 경우, 가족들이 다들 멀리 살고 있어서, 거기에 관련된 역할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뭐든 둘이서 해결해야만 한다. 아이가 아프든 무슨 행사가 있든. 우리가 그걸 못하면 아이들도 감당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미 여러번 자유복 입는 날을 까먹고 교복을 입혀 학교에 보낸 경험이 많아서, 이젠 아이들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내일은 교복을 안입어도 된다고, 아니면 다음주에는 무슨 준비물을 가지고 가야 된다며;; 물론 어떤 건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젠 다들 좀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어떤 건 적당히 타협하기로 했고, 어떤 건 알아서 조절한다. 그래도.. 올해 바램이라면, 아이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 

셋. 삶에 대해서. 

작년에 갑자기 죽여버린 동료 이야기를 했었다. 나중에 밝혀지길, 그 동료는 편지 세 통을 써 놓고 목을 매달아 자살했단다. 그 후 나는 때때로 출퇴근 하거나, 강의를 하러 가기 전 후에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와 만나 커피를 마셨던 학교 안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그의 예전 연구실 앞을 지나가다가. 복도를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그럴 때마다 딱 하나의 단어만 떠오른다. ‘왜?’ 
당신은 왜 그렇게 죽어야 했을까. 뭐가 그렇게 당신을 못견디게 했을까. 여전히 어린 당신의 두 아이들도 당신을 잡아 두지 못했을 만큼, 뭐가 그렇게 당신을 그 줄 안으로 밀어넣어 버린 걸까. 당신으로 인해 알게된 공간에서 일을 하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전처럼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는, 당신도 이걸 겪었을까. 아니, 혹시 이보다 더한 걸 겪었나, 그래서 그랬나... 그런 생각들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면서 또 생각을 한다. 대외적으로는 완벽히 성공한 듯한 삶을 살고 있던 당신. 아무도 알지 못했던 당신의 속사정. 작년, 아니 이제는 재작년이 되어버린 그 겨울, 우리는 회식 장소를 옮기며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해댔는데, 그리고 이미 얼굴이 벌개진 당신을 보고 다른 동료들과 놀리며 맥주를 마셨는데. 
예전에 아주 어두웠던 시기의 나는.. 삶에 대한 열정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었다. 안되면 죽지 뭐. 그런 태도였다. 내가 갑자기 사라진 들 세상에 바뀌는 것도 없을 거고,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어떤 의미로는 복수를 할 수 있는 것도 같아서 도리어 조커 카드쓸 기회를 기다리듯 벼루고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 죽음을 생각하기도 이전에 도리어 내 주위에서 다른 이들의 죽음을 먼저 겪었다. 겪어보니..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든, 증오했든, 호의를 가졌든, 그저 알기만 했든... 참 허무하고...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죽음이 내게도 둔탁하게 새겨지더라. 죽음이 새겨지는게 아니라, 그 사람과 연결되었던 그 모든 고리들이 내게 바뀔 기회도 없이, 빛바랠 시간도 없이 그냥 굳어져 버린 느낌. 
그래서, 아직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지 않았던 까닭에 죽음보다는 좀더 삶을 생각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좀더 다가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한다. 자꾸만... 내가 그 동료에게 좀더 신경을 썼다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되니까... 

마지막. 새해에 대해서. 

스페인에서는 새해 자정 전에 포도알 12개를 먹는 풍습이 있다. 다들 포도알 12개와 샴페인은 준비하고 대기하는데, 12시 1분 전 쯤에 댕, 하는 종소리와 함께 마드리드 광장에 있는 거대한 종이 내려오는데, 그걸 기점으로 12번 종소리에 맞춰 포도알을 하나씩 먹는다. 어제도 시댁 가족들과 함께 새해 전날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티비를 보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로부터 시차를 두고 새해 인사가 들어오고 있었고... 답장을 보내며, 새해맞이 공연도 보면서, 정말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들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고, 새해 소망, 행복, 건강 기원 등 좋은 말들만 잔뜩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력 상으로 그저 하루가 바뀌기만 할 뿐, 사실 세상은 별로 달라질 것 없이 흘러갈 텐데. 북한은 여전히 도발하고,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헛소리를 해댈거고, 시리아는 여전히 전쟁 중 일 거고, 예멘의 아이들은 여전히 굶주릴 테고, 영국의 정치인들은 브렉시트를 두고 또 우아한 개싸움을 벌일테지, 그리고 스페인 카탈루냐의 상황도 달라지진 않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로 바뀌는 그 순간만큼은 다들 희망을 날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또 그런 생각도 드는거다. 아, 이래서 새해 맞이를 하나? 전 세계적인 염원을 담은 기도회/굿판 같은 거랄까? 다들 한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좋은 기를 세상에 보내는 그런 행사?? 그렇게 생각하니 내 신랄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바라고 싶었다. 제발. 올해에는 사람들이 좀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좀더 건강하고, 좀더 아프지 말고, 좀더 희망찬, 그런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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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를 한지도 벌써 몇 해가 흘렀네요. 이러다 금방 그만두겠지, 하고 저 조차 믿지 못한 블로그였는데(;;), 그래도 이렇게 여전히 쓰고 있네요 ㅎㅎ 
성실하고 꾸준한 주인장이 아니여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사소히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정말 좋은 일들 많이 일어나시기를.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기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