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독해져도 지친다.

민토리_blog 2017. 10. 31. 07:10
올해 초 대학내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었다. 신입생들 모집을 받기 전에 브렉시트다 뭐다 해서 학생들의 수가 줄어들고, 거기에 연구비 감축등이 일어나면서 대학에서도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시작한거다. 일단 일순위로 행정/사무직 - admin staff - 들이 잘려나갔고, 계약직들의 계약이 추가로 연장되지 않았고, 전공과목에 따른 학과들이 몇개 합쳐지면서 중간 매니저라 할 수 있는 교수진들도 위기를 맞았다. 여름 동안 우리는 거의 매일 대학 어딘가에서 행정업무때문에 이메일을 수도 없이 주고 받아, 얼굴은 몰라도 이름만은 익숙한, 대학에서 몇십년간 일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며, 담담하게, 가볍게, 때론 살짝 신랄하게 적은 ‘farewell’ 이메일들을 받았고.. 그 와중에 자진 사퇴한 사람들의 작별 파티에 다녀왔다. 
내가 있는 학부도 사정이 별반 다르진 않아서, 학과 조정이 있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 급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재임용 면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전에 있던 매니저들은 9명, 새로 생길 자리는 4개. 이미 3명은 일찍 은퇴를 하거나 자진사퇴를 해버렸고, 1명은 사실 매니저 일이 안맞다고 워낙 떠들어 대던 사람이라.. 다들 결과적으로는 한 사람만 떨어지고 별 다른 변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결과가 나오고 나니, 의외로 다른 학부의 사람이 재 임용되고, 매니저가 아니라도 다시 연구/교수진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마저도 되지 않아 갑자기 3명이 재임용도 안되고 돌아갈 자리도 없이 붕 떠버린거다. 그 중 두명은 Dean, Associate Head of the School 까지 했던 사람들인데.. 공공연하게 대학 내 정치 싸움에 밀려 매니저 자리까지 내려왔다는 얘기가 들렸는데.. 이번 재임용에서도 탈락됐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대학도 사조직 이라면 사조직인데 구조조정 있을 수 있지. 그런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건... 그 일이 있고 나서, 재임용에 탈락된 그 세 명에 대해 대학 운영진부터 시작해서 암묵적인 침묵이 시작된거다. 다들 내가 알기로는 십년 넘게 대학에서 일했는데... 한 두달 전까지만 해도 같이 복도에서 마주치면 얘기하고, 웃고, 농담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그러던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는데... 학부장 등등을 비롯한 윗쪽에서는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있지 않았던 냥 뭐라 설명도 없고 말도 안한다. 심지어 학기 시작 전에 늘 하는 School Meeting에서도 구조조정 이야기는 아주 간략하게 하고, 대학에 1년 남짓 있다가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는 사람의 작별 카드 얘기는 하면서, 그 세 명에 대한 이야기는 이름 조차 꺼내지 않는거다. 그 이상하고 거북하고 무거운 침묵. 다들 의문의 눈빛을 주고 받았지만, 마치 발가벗은 임금님의 투명 옷을 말하면 안되는 것 처럼,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이름들을 물어보면 안될 것만 같은.. 보이지 않는 압력. 

그렇게 어느샌가 증발해 버려서 보이지 않던 3명 중 한 명이 다시 강의진으로 돌아온다는 메일을 몇 주 전에 받았다. 그런데도 나머지 두 사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저지르기로 했다. 질문 하나 하는게 뭐 그리 문제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 안일한 내 메일에 학부장으로부터 날카로운 답이 되돌아 왔다. ‘부적절한 - inapporiate - 질문’이라는 것. 때가 되면 다 말해줄 건데 왜 질문을 하냐고.... 솔직히 좀 서늘해졌다. 그 보이지 않던 압력을 애써 무시하며, ‘아니, 말할 자유가 보장되는 대학 가에서 이런 질문하나 못하나?’하고 돌을 던졌는데, 잠잠하던 호수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난 걸 본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 이후 아닌 듯 맞는 듯 윗쪽에서부터 내게 돌을 하나씩 던져오기 시작했다. 내 라인 매니저는 자기 물 만난 마냥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을 꼬아서 듣기 시작했고, 2주 전에는 난데없이 이메일을 보내서는 ‘너에게 이 일을 맡기기로 했으니 해라’하고 뜬금없이 일을 하나 던지더니, 내가 상의없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따지자, 그럼 지금 당장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그래서 지금은 대학 외부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돌아가면 얘기하자고 하니, 강의가 없으니 당연히 시간이 빌텐데 그럼 자기를 보러 와야 한다고 지랄을 떨다가, (대학 교수진들은 당연히 강의 시간표의 제한이 있긴 해도 그 외의 시간은 연구/강의 준비등으로 시간와 장소의 자유가 주어진다), 내가 강하게 나가니 그럼 학부장 학부 부장한테 말하겠다고 쪼르르... 그래서 나도 내 입장 정리해서 강하게 항의했더니.. 학부 부/장 들은 나를 달래는 듯 말을 하다가 곁가지 마냥 내가 너무 공격적인 경향이 있다는 거다;; 이런 게 몇번 반복되고.. 사실 나도 지쳤다. 그냥 일만 하자, 다른 건 생각 안하고. 
 
그랬는데, 저번 주 금요일 오전, 그것도 8시도 안된 시간에 대학에 출근했다가 그 재임용이 안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그 이른 아침에 대학에 와서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C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이 곳에 더 오래 있고 싶지 않다며 굳어버린 표정으로 거칠게 자기 물건을 박스에 담고 있었고... H는 내가 놀랜 표정으로 이게 뭐냐고, 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묻자,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치우러 왔다고 웃으며 말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나도 울컥 울음이 나오면서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이게 몇십년간 일한 사람을 내쫓는 방식인가. 
그들은 대학으로 부터 재임용 심사에 탈락되었다는 소식만 듣고, 그 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른 체 ‘garden leave’  (퇴직 후 일정 기간동안 월급을 받으며 머무르는 상태, 한국말로는 뭔지 모르겠다;;) 연락을 받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동안 대학에 오거나 다른 이들과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솔직히 화가 났다. 내가 그들과 딱히 친해서 그런게 아니라, 그들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재임용에 실패할 수 있지. 권고사직 당할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십년간 같이 일해온 동료 아닌가. 그들을 왜 이렇게 짐짝 치우듯 버리는가.... 그렇게 아침에 그들이 떠나고 난 뒤, 그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웠다는 교수들을 나중에 찾아가 아침의 일을 얘기하고, 내가 카드랑 사서 올테니 대학 내의 사람들에게 돌리고, 사인하고, 선물이랑 준비할테니 시간 되는 사람들과 모여 같이 점심이라도 먹으러 가자고... 

그리고 오늘 오후. H로 부터 단체 메일이 왔다. 자기 이메일 계정이 끝나기 전에 보내는 마지막 이메일이라고... 나는 혹시라도 다른 매니저들이 답을 보낼까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답신도 없었다. 그래서 또 일을 저질렀다. 답 메일을 보내서 그녀에게 고마웠다고, 알게 되어 좋았다고, 멋진 매니저이자 동료였다고. 그리고 이렇게 떠나 보낼 수 없으니 얘기한 것처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혹시라도 이 메일을 보는 학부 교수진들 중 관심있는 사람있으면 알려 달라고. 

그리고 오늘 저녁. 또 학부 부장으로부터 답메일을 받았다. 나에게로만 보내는, 그 대신 학부장과 내 매니저를 대동한. 또다시 ‘부적절’하다는 이메일.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아. 정말 지친다.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젠데?? 나는 도저히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후회가 된다. 그 떠나 버린 이들과 막역한 사이도 아니면서. 단지 그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고, 그런 식으로 떠나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naive 하게 호수에 다시 돌을 던지기로 결심한 내가. 난 영웅 놀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속이 끓어오른다. ‘내가 왜 이런 식의 지적을 받아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건가’하는 내가 정체를 아직 밝히지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하다’라고 느끼는 이 감정. ... 이 공간에 대한 어떤 인간적 감정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기분이다. 이젠 나도 신경안쓰겠다. 누가 괴로워 하든 말든 이런 곳, 어차피 나도 떠날 곳. 그래, 나도 내 일만 하고 기회되면 나가면 되지.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기 위해 내가 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 

...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늘 내게 ‘조심하라’라고 말했다. 제대로 눈 돌릴 줄도 모르고 굽히기도 싫어하는 내 성격에 징 맞을까 겁나신다고.. 어렸을 때부터 어른한테 눈 똑바로 뜨고 대든다며 맞거나 혼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대학 들어와서도 운동권 선배들에게 러브콜을 받고, 친한 학과 선배들과 동기들은 행여 내가 운동권에 속할까봐 따라다니며 말리기도 했지만, 사회비판을 주제로 한 동아리에서는 내가 도리어 너무 어려움을 모른다고, 비판 받기도 했다. 나는 사실 그리 정의로운 인간도 아니고, 내 불이익을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나 자신을 던질만큼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다. 도리어 대다수의 경우, 그저 다수에 속해지는게 편한 사람이고, 어떨 때는 이기주의자에 기회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꼭 어느 순간 견디지 못하고 툭 튀어나와 버린다. 자존심인지, 영웅심인지, 나도 모르겠는데... 머리로는 불필요한 싸움이란 걸 알면서도 차마 굽히지 못해 버티는 것처럼, 싸울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거다. 아. 피곤하다. 아직 징을 덜 맞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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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또 영국의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라 더니, 정말 맞는 말이에요. 까면 깔수록 참 새롭고 눈물나게 맵고 아프다 못해 당장 음식물 쓰레기 통에 집어던져 넣고 싶은 심정이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