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여중생 A) 살아있으면 이런 글도 쓰는구나

민토리_blog 2017. 7. 23. 23:09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부모 없이 간 아이였다. 그 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에 사는게 부의 상징이라 여겨지고, 반장은 주로 돈 많고 입바람 센 학부모의 아이가 되었고, 촌지도 꽤나 흔했던 시기라서.. 아무 것도 없이 그렇게 출발선부터 뒤쳐져 시작한 내게 학창시절은 그리 좋은 기억을 주지 못했다. 반장이나 부반장의 생일 때가 되면, 그 부모님이 전 학년에 빵과 우유를 돌리고, 그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다는 건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찍히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내가 그랬다. 일학년 때 반에서 초대받지 못했던 사람은 나와 다른 여자아이 단 두명. 다른 여자아이는 얼굴이 까맣고 무당집 아이라고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난 집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데다가 늘상 바닥만 보고 다니는 음침한 아이라 초대받지 못한 것 같았다. 이학년 때에도 초대받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약간 모자랐다고 늘 놀림받던 남자애 한 명도 나처럼 제외되었다. 초등학교 이전에 유치원이나 학원 같은 곳에 다녀본 적이 없었던 까닭에 글을 배우는게 늦었고, 늘 혼자 있었던 까닭에 사실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어울려야 할 지도 몰랐다.. 나는 조용했고, 늘 어두웠기에 주위 어른들에게도 '쟤는 애가 어린애 같은 맛이 없어서... 애가 벌써부터 저렇게 어두워서야..'하는 소리를 늘 듣고 다녔고.. 그래서 그런 소릴 듣기 싫어 일부러 고개를 더 숙이고 그들을 못본 척 하고 다녔다. 여자아이들은 나와 같이 앉기 싫어했고, 남자아이들은 놀리거나 그러다 내가 발끈하면 위협하거나, 때리거나.. 그렇게 얼굴에 멍이 들면, 그래서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는 사람이 생기면, 그냥 벽이나 문에 부딪혔다고 대답했다. 다만 대놓고 그 괴롭힘이 심하지 않았던건, 내 성격이 더러워서... 때로 화가 나면 미친 년처럼 소릴 지르며 책이나 의자 등 아무거나 집어던지면서 난동을 피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나를 더 고립적으로 만들긴 했지만.. 뭐 나쁘진 않았다, 차라리 혼자 있는게 편했으니까... 

그 때는 초등학교에서도 월말고사를 쳐서, 그 성적에 따라 매달 상장같은 걸 주곤 했는데.... 3학년 2학기 쯤 가서 처음으로 악이 받쳐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집 하나를 사서 처음으로 밤을 새서 공부했던게 그 때였다. 성적은 올랐고, 매달 상장을 받게 되서 그런지, 난 그 해 반장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았는데... 그 중간에 역시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나와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타고 놀았다. (그 때는 왜 아파트 단지 안에만 놀이터가 있었는지.. 그리고 학교에도 없던 그네가 아파트 놀이터에는 있었다. 그런데 경비도 엄해서, 행여 놀이터에 가서 놀려고 들어가려고 하면 입구에서 부터 막고는 '너 몇 동 몇 호에 살아? 부모님 누구야?'하고 물어댔다... ) 사실 성적이 올랐어도 달라진 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친구는 없었고, 4학년 때 담임은 내 부모가 학교에 온 적도 없고, 당연히 촌지 같은 걸 준 적도 없기 때문에 성적과 상관없이 나를 대놓고 차별하거나 아이들 앞에서 놀림거리로 만들었고.. 5/6학년 때는 자꾸만 여자애들 싸움에 휘말렸다. 내 방어적이고 날카로운 태도 때문에 내 앞에서 우는 여자애들이 많았고, 그러고 나면 꼭 수업이 끝나고 나서 여자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화를 냈다. 그러면 그걸 또 얌전히 받아들이고 사과하는 대신에 또 날카롭게 쏘아대고, 그래서 또 싸움이 나고...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운동장 구석에 앉아 혼자 놀거나, 아니면 그냥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생활은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도 계속 되었고... 

그랬던 시간들 중에 유일하게 위안을 받았던게 나 역시 책읽기와 글쓰기였는데... 그래서 초등학교/중학교 때에는 글짓기 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내가 지은 시가 학교 복도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에 보여주는 글 외에 진심으로 쓰는 글들은 모조리 일기장에 적었었는데.. 그것도 어느날 엄마에게 들켜 뒤지게 맞은 후 (내용들이 하나같이 죽고 싶다, 가출하고 싶다, 였기 때문에;;), 흔적도 안남기게 갈갈이 찢어서 불태워버린 후 글을 계속 숨기게 되었다.. 사실 그 후로 내가 쓴 글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블로그는 꽤나 대단한 발전이다. (그런데 이 발전도 이십 몇년이나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니;;; ) 책은 집에 아이들용 전집 같은 게 없어서 사실 아무거나 보이는데로 주워 읽었는데... 이제야 고백하자면, 사실 그 때 미성년자 금지의 글들도 많이 읽었다;; 예를 들어, 장정일 작가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이미 중학교 때 읽었었는데...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어쩌다 그 책 이야기가 나와서, 선생님이 "그 책은 아직 너희가 읽으면 안되는 책이야. 야한 얘기도 많이 나오고!" 하고 말했을 때, 이미 읽었다는 걸 안들키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 처럼.. 

바보같다는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작심하고 성격을 바꾸기로 결정한 후, 정말 성격이 바뀌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여중생 A)의 미래처럼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탈출은 아니였다. 그냥 쓸 수 있게 된 가면의 종류가 늘었다고 할까... 나는 웃고 떠들었지만, 여전히 다른 아이들과 개인적인 일들은 이야기 하지 않았고, 가족사따위는 절대 나누지 않았으며,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거나 초대 받은 적도 없다. 여전히 나는 혼자 걷고,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리고 그걸 숨기고.. 인터넷도 모르고, 컴퓨터도 없던 시기라,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로 시간을 보내고.. 

허5파6 작가의 (여중생 A)는 그런 시간들을 기억나게 한 만화다. 이걸 읽으면서 내 과거가 생각났고, 동시에 문득 의문도 생겼다. 도대체 내 구원은 뭐였을까? .... 

(스포일러 있습니다)

미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생활의 안정을 되찾은 듯 했지만, 난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구원이나 행복, 안도 같은 걸 얻지 못했다. 도리어 방향을 잃어버린 질문과 원망만 남았지. 이미 퀘스트 하나를 마무리 짓고 고등학교에 가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준 미래와 달리, 난 고등학교 가서도, 대학교 가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나름 친구는 많아졌지만, 관계는 여전히 나를 피곤하게 했고, 충전량이 떨어지면 또 혼자 막을 치고 잠수를 탈 정도였으니까. 언젠가 나 역시 내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댄 적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나는 이제 자유로운가?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죽는 게 두렵긴 하다. 아이들이 있어서 두렵다. 내가 없어지면 이 어린 것들은 어쩌나 싶어 두렵다. 우습지, 예전에는 '어차피 죽어버리면 되는거'하고 생각했는데... 

내게 아픔이 있으면, 다른 아픔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게 상대적으로 쉽다. 그런데 다가가기는 힘들다. 뭐라 말한다고 당장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내가 뭘 대신 해줄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그래도 때로는 공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도 그 아픔을 안답니다, 라고 말해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은 한다. 이런 원망스런 기억들도 쓸 곳이 있구나 싶어서, 허허, 하고 웃을 만큼의 여유도 생기긴 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살다보니 이렇게 익명이긴 해도 열어둔 일기장 같은 곳에 글도 쓰고 있지 않은가. 예전이라면 곪아터지도록 내버려두었을 기억들까지 이렇게 꺼내가면서.. 나도 이렇게나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몰랐지만... 그래도.. 이래서 다들 살라고 말하나 보다. 허허... 

덧. 
네이버 웹툰에 아직 있어요.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 당장이라도 읽으실 수 있답니다! 
책을 사고 싶은데... 결재는 어찌하고, 영국까지 어떻게 올 것인가, 뭐 그런 생각때문에 여전히 주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국가면 살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 
만화는 소설 다음으로 빠진 장르인데... 소설은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지만, 만화는 그게 안되니까.. 그리고 만화는 빌려 보려고 해도 돈이 드니까. 가끔 오빠가 친구들한테 밀려오는거 옆에서 끼어서 보고, 대학 때는 틈틈이 만화방가서 보고.. 그래서 그런지 만화는 항상 허기지게 읽었는데.. 웹툰이 생기고 나서는 정말 좋아요. 완전 신세계랄까요 ㅎㅎ 아무때나 볼 수 있고, 눈치 안봐도 되고, 국경 상관없고!!!! 모든 웹툰 작가분들께 감사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