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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미학

민토리_blog 2017. 7. 14. 23:13

... 따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거절의 미학을 따지는건 거절하는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하다가 좋게 헤어지는 것도 연애를 잘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예의다, 뭐다 하는 소리도 솔직히 차는 입장에서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하는 소리 아닌가? 막상 차이는 입장에서는 그게 어떤 식으로 포장되어서 배달된다 하더라도 결과는 같은 거니까. 똥을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서 배달한다 해도, 결국 그걸 열어보고 치워야 하는 건 받는 사람의 몫인 것처럼... 똥을 보낸 사람에게는 그래도 내가 할만큼 했다, 라는 위로라도 되겠지만, 그렇게 멋지게 포장된 똥을 받은 입장에서는 도리어 뭐 이따위 걸 보냈냐고 대놓고 짜증낼 구실조차 뺏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사실 모든건 자기 탓이라며 이유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고, '다 내 잘못이니 날 미위해, 넌 잘못한 거 없어'하며 헤어지는 연인이 제일 재수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네가 잘못했든 뭘 했든 난 상관없이 너와 계속 만나고 싶은데, 자길 미워하라며 굳이 헤어지자고 하는건, 딱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너와 헤어지고 싶다. 이미 너에게서는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말하자면 넌 상처받을테고, 그리고 나만 나쁜 사람이 될게 뻔하니 이렇게라도 말해야 겠다. 그리고 어차피 다시는 안볼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 그럼 네가 날 미워하든 안하든 나와 뭔 상관이란 말인가, 적어도 난 내 할 도리 다 했다고 돌아서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덤으로 나같은 거 잊고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말도 해줘야지, 사실 네가 나를 떠나 누굴 만나든 관심도, 상관도 없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혹시 내 결혼생활이 파토날 위기라도 된 것 같은데, 다행히도 내 결혼생활은 아직도 잘 굴러가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건, 도대체 자기가 바람을 펴서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남편을 일방적으로 집에서 쫒아내고, 지금 그 바람핀 남자와 예전의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크리스마스 때면 전 남편에게 비싼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는 부인의 의도는 뭐란 말인가??

또 하나, 6년 사귄 남자친구를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펴놓고, 그 같이 바람핀 남자가 그 여자가 현재 남자친구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그럴 거면 그냥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마치 진짜 버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처량하게 굴다가 그 남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자 '그래, 너라면 좋은 남자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내 생각하지 말고 그 여자한테 잘해, 난 괜찮으니까..'하는 따위의 말을 하는 여자의 심리는 뭐란 말인가?


난데없이 이런 잡다한 이야기들이 나오긴 했는데 (사실 진심으로 그 심리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정신줄 놓고 글을 써대고 있는건, 이번 달에 거절 이메일을 줄줄이 여러개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이메일에서 프로젝트 퇴짜 이메일까지... "Next time"하는 소리만 하고 있다가 짜증나서.. 이넘의 거절 이메일!! 하는 마음에 글을 쓰고 있다.


거절 당하는 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다. 물론 세상 살면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걸 생각하면 거절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건데 (물론 시도를 안해서 아예 그 전체 수 자체를 낮출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은 참 빨리도 없어지는데, 거절당했을 때의 그 우울하고 때론 비참해지기까지 하는 그 기분은 참 강하게 기억되고 오래도 남는다. 물론 그걸 '털어낼 수'는 있겠지만, 어딘가 기억 저편으로 묻어 버리고 잊으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파편같은게 어디 남아 있다가 다음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되면 슬금슬금 속으로 찔러오기 시작하는거다. 그래서, 처음에 좀 아파도, 그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다음에는 괜찮아지겠지, 다음에는 잘될거야, 하는 자기 암시따위를 해대며 지나가려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파편이 깊숙이 파고 들어서 어찌할 수 없이 아프게 되는 거다. 자신도 모르게 참고 참다가 쌓인 분노를 작은 계기 하나로 터트리게 되는 것처럼... 거절도 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터지게 된다.

"또 왜!!!!"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외부로 향하면 나중에 수그러들기라도 하는데, 그게 안으로 터지면 꽤나 충격이 오래 간다.


정말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의심도 들고.. 나란 인간이 정말 가치가 있는건지, 바보같고 멍청한 것 같고, 어찌 돌이킬 수 없는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 마냥 스스로를 괴롭히고, 의심하고, 자책하고.... 참 끝도 없다.


그러고 보면 때로 인간은 '자아존중'의 욕구보다 '자아파괴'의 욕구가 더 강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기는 힘든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건 얼마나 쉬운지....


나는 때로 꽤나 잘 살아남은 이민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래서 때로 어떤 이들은 마치 내가 꽤 괜찮은 운을 타고 난 사람인냥 생각하기도 하는데... 하긴 100번의 시도에서 얻은 1-2개의 성공으로 그런 외관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어찌보면 꽤 괜찮은 것도 같지만.. 그외 98-99번의 실패와 거절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는가는 사실 의문이다;; 물론 모든 경험이 그렇듯 뭔가 배웠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10번 시도해서 1번 성공할 수 있는 인생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래서 11번의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면, 그래, 내 인생이 그리 편할 일은 없지, 하면서, 그래도 이정도면 평균보다 나은거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21번째, 31번째,... 51번째도 실패로 돌아가면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만했으면 좀 풀려야 하는게 인생의 예의(?)아니냐고 화를 내가며... 그러다가 시도의 수가 올라가면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만약 영원히 풀리지 않으면 어쩌지, 혹시 계속 실패만 하는 거면 어쩌지, 사실 이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이 아니면 어쩌지, 다른 걸 시도했는데도 또 이만큼의 실패를 겪어야만 한다면 어쩌지... 하는 그런 불안들...


뭐... 이렇게 잡소리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포기할 수 없으면, 다른 길이 없으면, 또 시도해야만 하니까. 제발 다음에는 내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길 바라고, 빌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덧.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 여행가이드가 행운을 주는 동상으로 안내해준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번갈아 돌아가며 동상을 만지며 사진을 찍어댈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헝가리의 역사를 보면 연관된 모든 전쟁에서 지고, 영토를 그만큼이나 뺏기는 등, 참 국가적으로 운도 지지리 없는 곳인데.. 이렇게 행운을 주는 동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하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그렇게 운이 없으니 제발 행운을 달라고 빌면서 만든게 그 동상이 아닐까, 싶더라구요... 행운의 편지가 그렇게 없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염원이 아닐까.. 절대적으로 많은 거절/실패의 확률 속에서 제발 누구든, 뭐든, 다음에는 날 좀 도와달라고.. 이런 거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아예 뭔가를 시도할 때 '실패'를 정해진 값으로 해두고, 성공을 예상치 못한 보너스로 생각하면 되는데... 그러자니, 그럼 어차피 실패할거 왜 시도하나 하는 생각을 할 것도 같고..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