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xit] 진심으로 뺨맞은 기분
"UK decided to leave"
아침 6시, 잠에서 덜깬 상태로 들은 오늘의 첫 말. 남편의 그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져서, 계속 "What? What?!"만 반복했다. 아직 개표가 다 끝나진 않았지만 이미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마지막 결정은 Vote leave 52%, Vote remain 48%...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가 잠이 확 깨면서 생각과 감정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진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진짜로 이 나라가 이만큼 막장이였단 말인가. 진짜로 이 나라에 그토록 많은 idiots과 ignorant한 인간들이 산단 말인가, 싶어서.. 그러고 나서는 머리속으로 온갖 현실과 관련된 걱정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분노. 진심으로 화가 났다. 도대체 이민자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많은 수의 이민자들이 이 땅에서 일을 하고 세금도 꼬박꼬박내면서 살아왔는데, 난데없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흉이 이민자들인냥 비난받는 것도 모자라서, 그 결과가 당장 많은 이민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결정에는 말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결과가 나왔다. 우려했듯이 결정은 나라를 반으로 갈라 놓았다.
Northern Ireland, Scotland, London의 대다수가 Vote remain 의 손을 들었고, Wales 대다수와 England의 많은 곳에서 Vote leave표가 나왔다. 70%가 넘은 18-24살의 젊은 투표자들이 유럽연합에 남아있길 원했고, 반대로 70%에 가까운 60세 이상의 Pensioner (연금 수령자)들이 떠나길 원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영국에서도 미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이미 전성기를 누린 옛세대가 큰 목소리를 냈고, 남은 몫은 그 결정에 동조하지도 않았던 젊은 세대들이 짊어지게 되었다. 대다수의 Working class, deprived area 사람들이 대거 Vote leave 손을 들었다....
아침부터 내 폰에는 몇십개의 메세지가 뜨기 시작했고, 페이스북은 이미 전쟁통이였다. 보통 sns로 대놓고 의견을 표하지 않는 나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나온 결과에 대해서, Vote leave 지지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이제 평화의 수호자라도 된냥, "I know you - Vote remain supporters - are upset and hurt, but now this is time to be together, united to make the United Kingdom"하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걸 보자면 역겨워져서 가능하다면 다가가 한대 쳐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캠페인 동안에 나라를 이만큼 갈라놓고, 이민자들을 거머리 취급하며 온갖 소리를 해댔던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Brexit 지지자들 중에 그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하고 투표한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주위에 얘기를 듣자니, 아는 이의 엄마는 "She feels scared when she hears foreign language in the train" 때문에 Vote leave에 투표했고, 어떤 이는 "because she doesn't like how the EU decides the shape of vegetables" 그래서 vote leave 에 투표했단다. 어떤 이의 아버지는, "because he lost his job to a Polish", 어떤 이는 "Because he hates David Cameron", "Because my father and grandfather told me to", "Because we have too many migrants here" 심지어 어떤 인터뷰에서 한 사람은 "Just to fxxx them (Politicians)" 라고 대답했다. 기가 차지만, 그게 사실이다. 충격적인건 정말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를 만들어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데에 있다. Farage가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 웨일즈 동네에서 질리도록 Vote leave 사인들을 보더라도, 솔직히 말하자면, Stupid but loud minority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다. 이제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정상/보통/평범/일반'적이라고 믿고 있던 내 주위의 영국인들이 어느 순간엔가 이 나라의 '소수집단'이 되어 있었던 거다. 특히 웨일즈에서 만나 이루어진 내 인간관계의 전부.
아침내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뉴스를 틀어놓고, 폰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카메론 수상의 발표가 나올 때는 아이들에게 잠시 조용히 하라는 말까지 하며 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티비를 틀어놓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뭐냐고 계속 물어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이 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이라크 전쟁이 났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렇지만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말해주겠지.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한 2016년 6월 24일 금요일 아침 6시의 일부터. 파운드화가 땅을 치고, 유로가 덩달아 끌려들어가고, 세계증시가 들썩거렸고, 그런 현실적인 것뿐 아니라, 너희 부모인 우리가 혹시라도 이 땅에 정착해볼까, 했던 희망에 가까운 생각을 갖다버린 날이란걸. 우리는 철저히 이 땅에 이방인이였고, 이 나라는 오만하게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민자들을 모욕했고, 마침내 국가적으로 '우리는 너희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날이란걸.
카메론은 수상 자리를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그걸두고 이제 10월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수상 자리에 앉을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나라를 유럽연합 밖으로 끌고나온 정치인들은, 유럽연합이 우리를 무시할 순 없을것, 이라며 예전과 달라진게 없을 거라는 말도 안되는 낙관론을 펼쳐댔고, 심지어 당장 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라고도 했다 (온갖 경제지표를 보고서도!!). 그리고 그 말을 비웃듯 유럽연합에서는 이런 불확실성과 위험을 덩달아 우리가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으니 가능한 빨리, 어쩌면 당장 다음주부터라도 영국의 exit에 대해 의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폴란드 대표와의 인터뷰는 인상깊었다. 정치인답게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마지막에 그는 리포터를 붙잡고 말했다. 폴란드 사람들이 다시는 영국 하늘에서 그들의 편을 들어 싸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내 할아버지가 바로 당신 - 영국인- 들 곁에서 싸웠다고. 리포터는 그에게 "Do you feel betrayed? Are you angry?"하고 물었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 "Yes"하고 말하고 뒤돌아 가버렸다. 당연하지 않은가. 캠페인 하는 내내 이 영국이 보여줬던 특히 폴란드사람들을 향한 적대와 멸시. 국가적인 수모. 마치 동유럽 사람들이 열등한 민족이라도 되는냥. 다음 타겟은 누가 될지 어찌 아는가. 미국의 선거까지 앞두고 있는데.. 어쩌면 다음 타겟은 모든 무슬림들이 될지도 모르지. 그 다음에는 또 누굴 쳐낼 생각인가....
첫째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니 어쩌면 첫째날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결정은 하나였지만, 그 결정이 내포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자면 이제 시작이다. 다만 오늘로 인해 내 입장에서 몇가지 확실해진건...
- 영국에 생각보다 많은 계급과 연결된 문제들이 쌓여있다는 것
- 이 땅의 반은 무지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생각이 없거나, 민족주의자이거나, 인종/민족차별자들이란거.
- 더 이상 이 땅이 나와 내 가족이 맘놓고 어울려 살아갈 공간이 되진 않을거란거.
진심으로 난데없이 싸다귀맞은 기분이다. 그러고선 '꼭 네게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남편의 스페인사람다운 표현으로 말하자면, "They kicked your balls, and ask to be friends. Fxx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