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사소한 인간관계] 우리 가끔은 그냥 bitchy할 수 없을까?

민토리_blog 2016. 5. 18. 07:28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에서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친해지게 된 나를 포함한 8명의 아기 엄마들.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서, 그리고 서로를 좀더 알아가면서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파악하게 되었고, 우리는 우습게도 대략 반으로 나눠서 a-type, b-type으로 갈림을 알았다. A-type에 속하는 T, M, D와 나는 대체로 루틴을 중시하는 편이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일정한 시간에 잠이 들고, 밥을 먹고, 우리는 일을 하고 있고, 초혼의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만나자고 했으면 만나고, 계획적이다. 반면 L, H, K, C를 포함한 B-Type은 즉흥적이고 아이들 중심이라 불리는 육아법을 선호하고, 그들의 아이들은 어떤 날에는 3시간의 낮잠을 자고, 9시나 10시에 잠들기도 하고, L을 제외하면 정규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없고, 그 중 두명은 이혼과 재혼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만나자고 약속을 하면 으레 늦거나 마지막 순간에 취소를 하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당일날 만날 약속을 잡기도 한다. 그런 다름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메신저에 A-type 사람들로만 구성된 채팅방이 따로 생겼는데, 그 후 몇달 후에는 B-type으로만 구성된 채팅방에 초대를 받았다. 그래서 어쩌다보니 나만 혼자 박쥐마냥 두 그룹에 발을 담근 상태가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명은 이사를 갔고, 몇명과는 자주 볼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A-type과 B-type간의 간격도 점점 멀어졌는데.. 그들만의 심각한 고민과 이야기들은 8명이 다 포함된 단체방보다 타입별로 나누어진 채팅방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았고, 어쩌다 보니 혼자 두루 다른 7명의 안부를 알게 되긴 했지만, 입장이 입장인지라 그냥 스위스 은행마냥 그들의 방에 그들만의 이야기를 남겨놓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좀 살짝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A-type의 M과는 분명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 몸이 불편하다, 피곤하다 등등의 이유로 온갖 약속을 취소하면서 부터 간격이 벌어지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뭐 임신하면 그럴 수 있지, 거기에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었으니, 주말되면 그냥 쉬고 싶다는 걸 이해하려 했다. 그 주말에 그녀가 쉰다고 바쁜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다른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주선하고 다니느라 바쁘고 더 힘들어서 우리와의 약속을 다 취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 그래, 그래도 그럴 수 있지,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다. 아이를 계기로 만나서 고작 3년 남짓 알아온 우리보다는 더 오래 알아온 그녀의 다른 친구들이 중요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의 그 친구들을 대신해서 그녀의 baby shower를 준비했고, 그녀 남편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친구들까지 다 초대하고 연락했다. 그녀의 surprise baby shower 날 그녀는 감동했고, 고마워 했으며, 아이만 태어나고 나면 그 때부터 출산 휴가니 마음껏 만나자고 다짐했다. 


그 후 한달 후 그녀는 제왕절개로 둘째를 낳았다. 그렇지만 우린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역시 바빴고, 바빴다. 그녀의 가족들이 몇개월씩 머무느라 바빴고,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매일 방문하느라 바빴다. 그동안 우리는 그래도 꾸준히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남편들이 스쿼시 하는 동안 공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는데 같이 만나자고 연락했지만, 그녀는 아이가 어려서, 모유수유한다고 피곤해서, 바빠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기가 아직 어리니까. 물론 이 이해도, 믿음도 나중에 그녀가 그 시간에 수퍼마켓 가느라 오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 또 금이 갔지만.. 그래서 만나자고 먼저 연락하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그녀를 제외한체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그녀는 또 연락을 한다. 다들 어떻게 지내느냐고, 못본지 너무 오래 됬다고, 저녁에 만나자고. 그러면 A-type의 우리들은 모두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각자의 달력을 들여다보고 적당한 시간을 맞춘 후 만난다. 만나서 아이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출산 이야기를 듣고, 모유수유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의 남편들에게 지나가는 말로라도 이런 저런 힘든 것들을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Apparently, everything is fine. All good. No problem. 


만나고 헤어질 때면, 또 그런 얘기를 한다. 출산 휴가 중이라 시간이 많으니 어느때든 연락하라고. 물론 그렇다고 진짜 연락을 하면, 그녀는 바쁘다. 누군가가 와있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그것도 아니면 집이 공사 중이다. 그녀의 집은 항상 뭔가 공사중이다. 다락방을 보수했고, 새로 페인트 칠을 했고, 거실 바닥을 바꿨고, 지금은 욕실 공사와 정원 보수중이란다. 


그렇게 또 몇달이 흘렀다. 이제 나는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아주 Polite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에 동조하고, 맞장구를 쳐주지만, 그렇다고 그녀와 직접 만날 약속을 정할 마음도 계획도 없다. 그러는 와중에, B-type에서는 L과 K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고, K가 몇번의 유산 끝에 드디어 임신했으며, C는 갑자기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고, H는 올해 초에 만나 이제 막 관계의 꽃을 피우고 있는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뜻밖의 임신을 해서 패닉상태에 빠졌다. K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간 후, 고립된 상황에 임신까지 겹쳐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고, H 역시 그녀 개인적으로는 원하던 임신이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디에 말도 못하고 혼자 우울해 하고 있다. 물론 A-type의 그녀들은 이런 상황을 모른다. 8명의 단체방에서 우린 여전히 웃고, 아이들의 새로운 발달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선을 지키며, 'We are all fine, thanks'하는 정도의 안부를 전해 묻고 있으니까. 


그러다 그제였다. A-type 채팅방에 또 한달만에 M이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 만나자고 했다. T가 자신의 달력을 뒤져본 후 날짜를 제시했다. M이 그 날짜들 다 안된다고, 어디를 가거나 친구가 놀러오거나 한다고 답을 했다. 이번에는 D가 날짜를 제시했다. 역시 M이 또 어딘가 휴가를 간다고 답을 했다. 그걸 보고 있다가 솔직히 내 안에서 'bitch'가 고개를 들었다. (그날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기도 했다. 방어선이 무너진거지 -_-;;) 그래서, "We seem to be the only one without any schedules, ties, meetings and even friends"하고 답을 보냈다. 보내놓고 살짝 '아뿔사'했다. 우리의 'polite & careful'한 관계의 선을 넘은 것 같아서...;; 아니나 다를까.. 그 채팅방에 정적이 흐르고, 나와 자주 만나고 친한 T에게서 따로 사적인 메세지가 날라왔다.. 'Are you OK? Having a rough day?'하고;;;; 그 후 D에게서도 따로 연락이 왔다. 역시나 괜찮냐고, 커피마시러 자기 집으로 올래, 라고 물으며.. 그런 후 M에게서도 따로 연락이 왔다. 내일 자기 시내에 나갈건데 만날래, 아니면 집이 공사 중이긴 해도 괜찮으면 와도 된다고.. 물론 다들 신경을 써주고 있었고, 그게 고맙긴 했지만, ......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좀 답답했다. 


그러니까 유치하긴 해도.. 난 M에게 좀 섭섭했던 거다. 우리는 친구의 영역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거 같아서.. 그녀가 그 바쁜 시간들을 쪼개내어 만나고 다니는 그 친구들의 범주에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거 같아서 서운하고 섭섭했다. 그래서 그냥 말해버리고 싶었던 거다. "Hey, I'm annoyed, are we friends? You are always busy, but not busy for everyone else except us!!" 어쨌건 따지고 보면 그렇게라고 '만나자'하고 연락을 해준 M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솔직히 더 짜증이 났다. 마치 이제야 인심써주는 듯 만나자고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원래 어제 B-Type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라 나도 안된다고 했다. 


그런 후에 8명의 단체방에 D의 둘째 생일을 계기로 갑자기 서로 본지 오래됬다는 소리가 돌기 시작하더니, 난데없이 이번 금요일에 만나자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더니 하나 둘 자신이 아끼는 레스토랑 이름들을 대기 시작했고, 지역이 점점 넓어지더니, 나중에는 K 집 근처인 타운이 유망지로 떠올랐다. 어쨌건 8명이 다 모였을 때 으레 그렇듯 만나자는 약속은 두리뭉실 떠올라서 어딘가로 흘러가다가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못한체 그냥 머물렀고, 정확한 계획들은 따로 A-type 채팅방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으레 그렇듯, B-type들이 확답을 하지 않고, 그 때가서 보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까닭에 A-type들이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임의로 정한 후 단체방에 의견을 내던진 후 올 사람은 오고 못올 사람은 못오는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걸 과거의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K의 집 근처 타운으로 의견이 대충 모여 있던 걸, M이 갑자기 둘째를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는 좀 힘들 것 같다고 우리 집들에서 가까운 타운에서 만나면 안되겠냐고 제안을 한거다. (A-type 넷의 집들은 상대적으로 가깝게 몰려있다) T와 D는 역시나 예의바르게, K 집근처의 타운 이야기가 나왔고, 그곳의 레스토랑이 좀더 흥미롭긴 하지만, 네가 힘들다면 네가 원하는 곳으로 바꿔도 좋다, 라는 대답을 했고, 결국에는 장소를 바꿨다. 


그런 토론들이 메신저에서 열심히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난 B-type의 L, H, C를 만났고, 그녀들에게서 K의 고립된 상태와 그녀가 얼마나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하는지를 들었다. A-type들이 결정을 마치고 단체 예약방에 의견을 제시했을 때, K는 다소 실망했다는 듯, 그렇다면 자기는 갈 수 없을 거라고 답을 했다. 거기에 T와 D는 아무래도 K가 실망한 것 같다고 A-type 채팅방에 이야기를 했고, 난 그저 돌려서, 아무래도 그녀가 좀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원래 예정했던 대로 그녀 집 근처 타운으로 장소를 바꾸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시간이 좀 흐른 후에, M이 장소를 바꾼다면 자기는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T와 D는 당장 대화창에 뛰어들어, 그렇다면 그냥 원래 우리끼리 정했던 장소로 하자고 의견을 다시 모았다. ...


그리고 나는 또 기분이 살짝 불편해졌다. 가슴 깊숙히 '넌 우리가 뭘하자고 하면 다 거절하면서, 왜 우리는 너 하자는대로 해야하지?솔직히 이제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너를 더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으니까.. K와 그렇다고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전에 포스트를 썼듯히 살짝 열받게 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나는 최소한 그녀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잠깐의 만남으로 그녀가 조금이나마 해방감을 느낀다면,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한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K의 상황이고 뭐를 다 떠나서, M과 벌어져버린 간격이 그냥 훅하고 치고 들어온 건지도 모른다. 그냥 삐져있는 것일지도;; 


솔직히 나는 여자들과의 관계를 좀 어려워하는 타입이다. 어렸을 때 여자친구들과 모여 논 적도 없고, 오빠 덕에 좀 거칠게 자란 탓도 있겠고, 초등학교 때 심하게 여자들 싸움에 휘말려서 그런지, 좀 트라우마같은 게 생겨서 여중고를 다닐 때도 정말 친한 몇을 제외하곤 늘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래서 차라리 공대에 갔을 때 편하고 좋았다. 그러다 다행히도 유학하는 동안 정말 친한 여자친구들이 생겼다. 나를 포함한 네명이 주축이 되어 다른 여자들을 모아 파티도 하고, 클럽도 가고, 우리끼리 모여 정말 잘 놀았다. 우리는 농담삼아 우리를 'ABC'라고 불렀는데, 풀어 말하자면, 'Aggressive Bitches' Club';; 넷다 다른 국적을 가졌지만, 우리는 정말 온갖 이야기를 했고, 뭉쳤고, 어떨 때는 Bitch들이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자면, 그게 내가 가져본 가장 가까운 여자친구들과의 관계다. 어린 시절 부터 알아온 몇 안되는 한국의 여자친구들과도 그런 관계를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그 맛(?!)을 처음 맛봐서 그런지 여전히 그런 관계를 그리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우리 ABC 넷은 다들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니까.. 다시 맺게 되는 관계도 그러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는 거다. 그래서 더 심술이 나고 상처받는지도 모르겠다. 


사람관계, 힘들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정말 괜찮고 믿을 만한 '우정'을 찾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정말, 우리 가끔은 그냥 bitchy하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