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만나는 그녀들
동양인 여자가 길을 걷고 있다. 그녀는 외국인 남자 (정확히는 백인 남자)와 함께 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애인일 수도 있고, 일관계로 오늘 만난 남자 일 수도 있으며,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옆집의 행복한 가족의 가장일 수도 있고, 어디선가 등장한 그녀에게 작업거는 남자일 수도 있다. 그런 건 상관이 없다. 그녀는 길을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대부분 같은 동양인으로부터 온다. 설사 그들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지 않더라도 그녀 스스로 시선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백인 남자와 연애 한다는 동양인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개 두가지로 나눠진다. 동경하거나 의심하거나.
1. 동경
백인 남자친구와 한국에서 길을 걷거나 어딘가 가본 적 있는 여자라면 아마 그런 소리 한 번 쯤 들어봤을 거다.
"좋겠어요. 부러워요"
그런 말들은 대부분 같은 여자에게서 듣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그 남자를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얘기한 번 나눠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러움 섞인 탄성을 내뱉곤 한다. 왜?
그 심리는 남자들이 외제차에 갖는 동경과 비슷하다. 일단 비슷비슷한 거리의 차들 속에서 눈에 확 띄는 디자인에, 잡지에서나 들어 본 브랜드가 번쩍거리며 박혀 있고, 한번도 타보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주어들은 정보에 의하면 승차감도 죽이고, 엔진 성능은 말할 것도 없으며, 위에 뚜껑열고 겨울 밤거리를 달려도 전혀 춥지 않다더라.... 막상 타보면 그리 편하지 않을 지 모르고, 실용성도 떨어지고, 유지비도 많이 들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등등 안좋은 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외제차가 없는 입장에서는 그 외제차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 - 외제차 몰 수 있을 만큼의 재력 - 과 그로 인한 기대감 - 저 차 끌고 나가면 여자들이 내 앞에 줄을 설 텐데, 나도 어디가서 멋진 대접 받을 수 있을 텐데 - 이 섞여서 동경을 만들어 내는 거다.
여자들도 비슷하다. 한국 남자들에 비해 큰 키 (사실 작은 남자들도 많다), 하얀 피부 (정확히는 하얗고 붉은 피부, 막상 피부결은 한국남자가 더 좋을 수 있다), 긴 팔과 다리 (짧고 배나온 사람도 많다), 높고 잘 빠진 코 (그렇다고 다 잘 생긴건 아니다) 등등, 일단 보기만 해도 다른 한국남자들과는 다르다. 게다가 어디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외국인 남자는 다정하고, 로맨틱하고, 행여 결혼이라도 하면 시월드 걱정은 안해도 된다더라, 등등... 막상 만나보면 성격은 개차반일 지 모르고, 오픈 릴레이션쉽 어쩌고 하며 보란 듯 다른 여자 만나고 다녀 속을 뒤집어 놓을지 모르고, 그 남자 부모는 대놓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대질도 모르는데, 어차피 외국인 남자를 만나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그런 것 따위 알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혹은 알더라도 막상 내가 만나게 되는 외국인 남자는 그런 말종들과 다른, 나만을 사랑해 국경도 넘어서 달려와 준 로맨틱한 남자, 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외국인 남자'가 상징하는 환상이 있다. 외국인 남자 친구가 있으면 내 돈 주고 가기도 힘든 외국 구경 실컷 할 수 있을 것이고, 영어실력도 늘 것이며, 한국남자들에게는 인기 없던 내 평범한 외모도 저 남자 눈에는 루시리우처럼 이국적이고 매력있게 보일 것이고, 다른 여자들이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볼 지도 모른다... 하는 기대감 등이 섞여 동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거다.
2. 의심
"부러워요, 좋겠어요"하는 것 만큼이나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을 거다.
"어떻게 만나셨어요?"
표면적으로는 그저 어떻게 만나서 사귀게 되었냐, 를 궁금해하는 지독히 정상적인 질문 같지만 그 내면에는 한국인 커플에게 묻는 것과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기도 한다. 검열을 하는 거다. 당신이 외국인이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외국인 빠순이인지, 영주권 얻을려고 사랑도 팔아먹은 사기꾼인지, 아니면 '사랑했는데 그사람이 외국인이였어요' 하는 운명적 사랑을 하는 여자인지.. 알고 싶은거다. 사실 그 중 뭐가 진실이라도 타인의 입장으로 상관할 일은 아닌데도, 우린 궁금해 하는 거다. 정작 외국인과 만나는 그녀들도 다른 백인남자-동양인여자 커플을 보면 그런 질문을 마음 속으로 던진다 - 저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만약 백인 남자가 여자보다 나이 있어보이거나 별 볼일 없어보이면 (대머리라든가, 배나온 몸이라든가, 후줄근한 옷차림이라든가..), 때로 사람들은 그녀에게 경멸적인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마치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히 첫번째 둘 중 하나 - 외국인 빠순이거나 비자 얻으려는 사기꾼 - 임에 틀임없음을 확인한 것 처럼 말이다.
설사 백인 남자가 여자와 비슷한 또래거나, 보기에도 멀쩡해 보이는 남자라 할 지라도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저 여자 평범해 보이는데 (혹은, 나보다 못해보이는데), 저 남자는 저 여자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 걸까, 저 여자는 영어를 그렇게 잘할까, 저 남자는 뭐하는 사람일까, 혹시 동양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남자가 아닐까, 등등...
이래저래 해도 그냥 두 사람이 좋아서 만났다, 라고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거다.
.....
그럼 한국여자는 왜 백인남자를 만날까?
우선 이런 질문 자체가 사실 잘못된 거다. 누가 누굴 만나든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 까지 하는가? 다들 비슷할 거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말을 하다보니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된 걸 수도 있고, 첫눈에 반해서 누군가의 열정어린 고백 끝에 인연이 만들어 진 걸 수도 있고, 친구로 지냈는데 감정이 커져서 연인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고... 그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거지,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물론 그저 외국인이라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외국인이라는 게 신기해서, 외국인과 사귀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혹은 외국인과 만나면 좀 있어보일 것 같은 허영심에,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관계는 어차피 진심이 더해지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외국인'이라는 요소를 빼고 생각하면 다들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같은 한국사람끼리 만나도, 그저 외모나 돈만 보고 시작한 관계나, 몸만 섞으며 만나는 관계, 호기심아니 허영으로 시작한 관계 같은 건 오래 유지 못하지 않는가. 그리고 행여 그녀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택했다 하더라도 누가 뭐라 할 순 없는 일이다. 자기가 좋다는데 그걸 누가 뭐라하겠는가.
그러나, 같은 문화 언어 공유하는 한국인 말고 어렵게 외국인과 만나길 선택하려 하는 그녀들을 위해 이런 것만은 말해주고 싶다.
1. 언어소통은 필수다.
행여 외국남자 만나서 영어 공부에 써먹으려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말이 필요하듯,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려면 언어소통은 기본으로 바탕이 되야 한다. 그리고 외국 사람이 바보는 아니다. 당신이 그를 다른 용도로 써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 사람도 당신에게서 다른 것으로 보상받으려 할 것이다.
2. 그 사람이 자라온 사회의 문화, 역사, 언어, 등에 대한 이해과 관심이 뒷바쳐줘야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과 만나 사랑하고 싶다면 우선 그 사람이 쓰는 언어, 문화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당신이 그 사람이 한국말을 좀 알고 한국 문화에 관심가져 주길 바라는 것 처럼 말이다. 동시에 당신이 만나는 그 외국 남자가 한국에 관련한 것에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무조건 화내기 보다는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쁜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당신도 그 남자의 나라에 관련해 모든 걸 좋아할 리는 절대 없을 테니까. 다만, 그 남자가 그 감정과 관련하여 당신을 비하하거나 조롱한다면, 그 관계는 다시 고려해봐야 한다.
3.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는데 있어 권력이나 힘의 관계가 들어오면 그 관계는 뒤틀여지곤 한다. 이건 같은 한국 남자와 만나더라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외국 남자와 외국에서 만나는 여자들의 경우, 특히 더 주의하라고 말하고 싶다. 먼저 자신의 생계에 관련한 걸 그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저 사람 아니면 당장 갈 곳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라고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 의존적이거나 낮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남자가 말도 안되는 소릴 하거나 행동을 해도, 그런 생각때문에 화를 참기도 하고, 수모를 견뎌 내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면 남자는 더 당신을 험하게 대할 지도 모른다. 수시로 '싫으면 네 나라로 돌아가!'하는 협박성 농담을 던지기도 하면서...
보통 외국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가족과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위축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럴 수록 하나뿐인 끈인 남자에게 매달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수록 자신의 위치는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싫은 건 싫다고 확실히 말하고, 당신에게 그런 취급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앞에서 말했듯 언어소통이 필수다. 10살 어린애 수준의 말을 하는 사람의 의견은 누구도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국행 비행기 표 한 장 살 돈은 비상금으로 늘 준비해 두는데 낫다. 정말 위기에 몰렸을 때, 내 나라에 갈 돈도 없다, 라는 절망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이야기다. 겉모습이 다르고 자라온 문화, 쓰는 언어가 다를 지 몰라도, 같은 한국인이라도 다 통하는 건 아니다. 매번 한국 들어갈 때마다 거리에 외국인의 수는 더 많아 보이고, 외국으로 나오는 한국인의 수도 더 늘어난다.
단일민족의 피를 염려하는 한국인들도 여전히 많고, 외국인이라면 그게 동경이든 의심이든 일단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고, 익명의 자유를 느끼며 마음껏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냥 사람 사는 거 내버려 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