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참 꾸준하구나

민토리_blog 2016. 3. 17. 22:37

싸이월드를 2012년 까지 쓰다가 갑자기 해외 아이피 접속 차단이 걸려서 쓰지 못하게 된 이후, 저번에 한국 들어갔다가 접속 차단을 풀고 혹시 몰라서 일단 폰에 어플을 깔아두고 다시 영국에 들어왔는데, 그 이후 혹시 내 과거의 오늘 날짜에 내가 뭔가 쓴 글이 있으면 이 어플이 친절하게 '오늘의 히스토리'가 있다며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때때로 과거 여행을 떠나게 되곤 하는데, 과거의 글들을 읽으며 든 생각은.... 참 나란 인간은 꾸준하게 고통받는 삶을 살고 있구나....;; 


싸이월드야 예전부터 인기 있었다지만, 정작 내가 가입해서 쓰게 된건 2003년 말. 내가 2004년 가을에 영국으로 나왔으니, 한창 졸업을 앞두고 유학준비등 불확실한 미래에 들쑥날쑥 하던 때였고.. 그렇게 기다리던 유학길에 오르긴 했지만, 첫 유학 생활이 그리 만만하진 않았으니 어찌보면 그런 감정의 기복이야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나라는 인간의 성격을 볼 때, 혼자 고민하고 머리속을 채우다가 글들을 더이상 담아내지 못하고 알파벳과 단어들이 뒤엉켜 날뛰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글을 써서 내보내기 때문에, 써진 글들이 그토록 불안정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참 한결같이 '고통'과 '견딤'의 일괄적인 주제로 지내왔다는 걸 요즘들어 적나라하게 깨닫는다.. 


그렇게 돌이켜 보자면, 2004년 3월의 나는 어떻게든 달리고 싶어서,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서 초조해 하고 있었고, 2008년 3월의 나는 더디게 나가는 논문 준비로 지긋지긋해 하고 있었고, 2011년의 나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방인'의 삶에 대해, 여전히 존재하는 유럽인들의 무지와 그들의 자만심에 분노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또다시 불확실한 미래와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주변환경에 대해 답답해 하고 있다가 그 글들을 보자면, 참, 나란 인간은 발전이 없구나, 싶어진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왜 이리 여전히 초조해하고, 내 온 몸의 에너지를 소갈시켜가면서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건지.. 그렇게 다 소진된 후에야 비로소 차분해지고,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올 힘을 얻는 걸 보면, 참 인생 힘들게 산다, 싶다.. 중도는 개뿔, 그나마 롤러코스터라도 좀 적게 타니 다행이지 허. 


그런데 또 웃긴건, 그렇게 쓴 감정들은 남아 있는데, 도대체 뭣 때문에 그랬는지는 분명치 않을 때도 많다는 거다. 대충 짐작을 할 수 있는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조금씩 쌓인 감정들이 거대한 막을 형성하면서 마치 진짜 내가 무슨 거대한 암흑의 정중앙에 놓인양 허우적거린건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시기도 견디든 버텼든 싸웠든 어쨌건 건너왔고, 그 때에 비교하면 지금은 또 괜찮다, 싶은거다. 어떤 이들은 '차라리 그 때가 좋았지'라고 추억을 되새김질 한다는데, 내게는 그런 우울한 잔상들만 남아있어서 그런지, '그 때는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그 때보단 지금이 낫지'하고 토닥거리게 된다. 그런 걸 보면 좀 나아지긴 한건가?? 


손으로 공책에 쓰는 글이든, 이렇게 전자상으로 어딘가에 남게 되는 글이든, 어차피 글로 풀어낼 수 밖에 없다면, 이제는 좀 긍정적인 글들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왜 일이 해결된 뒤에는 '해냈다. 아자!' 이런 글 조차도 써놓은게 없는건지.. 그래서 어둡고 고통스런 과정의 글들만 남아있고,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글은 없다. 결과를 즐기느라 머리가 텅 비어버려서 안쓴건가, 아니면 혹시라도 부정탈까봐 안쓴건가? 마치 소설에서 행복한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고 있으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처럼?? 


그래도. 혹시라도 또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나중에 보게 된다면. 

괜찮다. 나쁘지 않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거야 원래 그런거고, 그 와중에서도 잘 버티고, 잘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