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츠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과거의 당신들, 미안해요.

민토리_blog 2016. 2. 1. 06:27

한국에 갈 때마다 꼭 하고 싶은 일들 목록을 정해놓는 편인데, 그중 하나는 서점에 들려 마음에 드는 책을 2-4권 정도 사오는 거다. 특히 전에 들어갔을 때 알게된 '알라딘 중고서점'의 존재에 푹 빠져서 시간이 나면 꼭 들려서 책꽂이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오곤 한다. 그러다가 발견한 책. 아사다 지로의 '츠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스포 있을 수 있어요)


49세의 백화점 세일즈맨인 그가 갑자기 죽고 나서 사후의 7일간을 다룬 책인데.. 불교의 사상과 일본의 공무원 사회를 적절히 조합시켜 사후 세계를 만들어 낸 것도 기발했고,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하자면... 그는 죽은 후 불교의 5계 죄 중 '음행의 죄'를 판정받는데, 그 죄목을 받은 이유는 그와 18년 동안의 친구/섹스파트너로 지내온 여자의 진심을 모른 척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관계를 이용했다는 것. 물론 그는 그저 친구였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녀도 같은 생각이였을 거라고.. 상대방이 애인이 있는 동안은 깔끔히 정리했고, 특히 그의 결혼 후에는 동료, 친구 이상으로는 지내지도 않은 내가 음행의 죄를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억울해 한다. 


책에서는, 음행의 죄란 불건전하거나 기괴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의 욕심대로 이용한 것도 죄라고 한다. 첨에는 솔직히 좀 억지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왠지 그렇다, 는 생각도 들었다. 


상대방이 진심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아니, 도리어 그 진심을 내 알량한 '친구'라는 말로 포장해 이용하고.. 그러다 나중에는 '몰랐다'라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회피하고.. 그 와중에 진심이였던 사람의 심장에는 얼마나 많은 가시가 박히고 피멍이 들었을까.. 그리 생각하니, 정말.. 죄구나.. 그런 죄가 또 없구나.. 싶어서 내 가슴에도 못이 더불어 박혔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일들이 너무도 많고, 그렇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또 어느 잠못이루는 밤에는 망령처럼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도대체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싶고.. 더 잘해줄 걸... 싶기도 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도 하고.. 그 미안함과 후회가 쌓이고 쌓여 가끔은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처럼, 그 사람을 찾아가거나 어떻게든 연락을 해서, 진심으로 '그 때는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하고 하고 싶지만... 그러는 건 또 내 맘 편해지라고 상대방의 덮어놓은 상처를 들쑤시는 것 같아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그 사람이 그 때의 상처로 맘에 빗장을 닫지 않았기를.. 다른 사랑으로 그 때의 상처가 치유까지는 아니라도.. 더이상 나같은 인간 생각도 나지 않고, 생각나더라도 아프지 않을 만큼 치유되었기를... 그리고 지금 행복하기를... 그렇게 바라는 것. 물론 그런 바램도.. 그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다는 상당히 이기적인 요구에서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가끔 생각하는데.. 사랑에도 등가법칙이 성립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많이 주고 최선을 다한 사람은, 그렇게 줘버린 사랑을 잊기도 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나중에 미련도 후회도 적다. 그런데 받기만 하거나 외면한 사람은 뒤늦게 그렇게 내가 외면해버린 진심과 사랑에 베이기도 한다. 도대체 그 때 왜 그랬을까 후회도 되고, 미련이 남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상처입혀버린 그 사람에 대한 죄책감이 남는다. 그렇다고 사죄를 받을 수도 없는.. 그런 가시가 그 사람과의 인연이 끝난 훨씬 후에 뒤늦게 가슴에 박힐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내게 고백해오는 모든 사람과 사귀라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만나주라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게 더 큰 상처). 지금의 연인과 나쁘지는 않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결혼까지 가란 소리도 아니다. 그냥.. 사귀든, 사귀지 않든, 헤어지든, 더 만나든,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것. 이론상으로는 그게 내게든 남에게든 남는 상처를 가장 줄이는 방법인데... 언제 삶이 이론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었나... ;; 


그래서 이렇게 갈팡질팡 부딪히고 살아온 나같은 인생은, 책 한권에 과거의 상처들을 떠올리고, 미안해하고, 그저 마음 속으로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지금은 행복하길'하고 바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현실에 충실하자, 그런 다짐을 하고.. 그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