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다녀오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첫발을 내딛으면 늘 그런 기분이 든다. 멈춰졌던 비디오 레코드가 다시 돌아가는 느낌.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영국에서 살고 있는 2015년 겨울의 내가 아니라, 2013년 봄에 한국에 있었던 나로 돌아가는 거다.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으며 확인하고, 달라진 것들은 새로 발견하고.. 그렇게 2015-2016년 겨울의 비디오를 예전 기억 위에 덧씌워 새로 만드는 거다. 그러면서 또 더듬더듬거려보는 한국(정확히는 부산)은 이렇더라, 하는 소소한 생각들..
1. 공사를 많이 하긴 하는구나
첫째 꼬맹이는 차 종류는 다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차들은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와 같은 구조용 차들, 그리고 거대한 트럭이나 굴삭기 등 공사용 차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오는 동안, 그리고 부산에서 차를 타고 부모님 집으로 가는 동안, 첫째 꼬맹이가 수시로, "Digger!" "Cranky (토마스 기차에 나오는 크레인의 이름)!!" 하고 외쳐대는 통에 알았다. 한국에는 정말로 공사하는 곳이 많구나. 그러고 보니 바뀐 곳이 꽤나 많았다. 집 주변에 오래된 이층 단독주택이 있던 곳들은 거의 없어지고 원룸텔같은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고, 어느 사이엔가 새로운 공원이 생겨져 있었고, 도대체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날만큼 뭔가 번쩍거리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곳도 많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가게가 바뀐 건 흔한 일이라, 예전 그대로의 가게나 이름을 발견하면 왠지 반갑고 '그래, 너는 살아남았구나'하는 안도의 한숨까지 쉬게 된다고 할까 ㅎㅎ... 건설업이 보통 한나라의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한 축이라고 생각할 때, 한국은 여전히 활발히 살아숨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다행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10년도 더 지나 찾아간 외갓집이 있는 여수의 바뀐 모습에는 좀 씁쓸함까지 생겼다.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언덕길에 각 골목마다 황소키우는 누구네, 어디 텃밭에 농사짓는 누구네, 그런 정말 시골스런 마을이였던 곳을 다 엎어버리고 그 자리에는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쭉길쭉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고, 분명 작은 역에 시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엑스포 건물들로 도저히 예전 모습을 짐작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느 곳에나 똑같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고,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 곳... 또 새로 파헤쳐지고 있는 산들을 보거나 아파트 공사현장을 볼 때면.. 그걸 작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우리네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작은 땅을 가지고 어떻게든 큰 돈을 벌어볼려고 하는 땅주인들의 욕심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럼에도 내 집하나 장만하기 어렵다는 뉴스들을 생각하면, 저 수많은 아파트와 원룸들은 누굴 위한건지.. 뭐 그런 해답도 없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2. 모든 것은 휴대폰으로!
부모님댁에 도착해서 와이파이를 연결하려고 하니 잘 뜨질 않았다. 모뎀이 오래됬니 루터가 오래됬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 어머니가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빠름의 나라 한국답게 인터넷 수리 기사 아저씨께서 바로 그 날 방문하러 오셔서 고쳐주고 갔다. 그런데 의아한건 우리가 오기 전까지 집안 사람 누구도 와이파이가 안된다는 걸 몰랐다는 거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고, 그럼 집에서 인터넷은 어떻게 쓰냐고 하니, 어차피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보통 다들 폰을 쓰는데, 모바일 네트워크의 속도가 와이파이보다 훨씬 빠르고 데이타도 무제한인 경우가 많아 와이파이를 별로 쓸 일이 없었다는 거다. 데이타 제한이 있어도 동생같은 경우는 10G라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영국에서는 보통 1G 정도인데;; 심지어 내거는 500mb -_-;; 그래서 영국에서는 와이파이가 없으면 인터넷을 하면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ㅜㅜ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는 그냥 와이파이도 공짜로 막 연결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도, 심지어 공원에 가거나 기차를 타도;; 영국에서 공짜인척 하고 꼬여낸 후, 막상 연결할려면 나타나는, '이메일 등등을 내게 주면 데이타를 주지~ 이런 것도 없이, 그냥! 막!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밖이건 안이건 지하철 안이건 기차 안이건 심지어 터널안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폰을 사용하고 통화를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건물안에서 안터지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밖에서도 안터진다 -_- 기차로 이동하고 있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전화가 갑자기 끊기면, 아, 터널에 들어갔구나, 하고 짐작한다;; 그걸 깨닫고 나서 한국에 있는 동안 자세히 살펴보니, 온갖 곳곳에 통신사에서 설치해 놓은 기계들이 가득하다.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얀 콘 모양의 녀석들, 지하상가 같은 곳에서 한 방향으로 더듬이를 내밀고 줄 서 있는 녀석들 등등.... 확실히 통신에 관해서는 한국이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
3. 더 많아진 커피숍
2013년에 갔을 때도 커피숍이 꽤나 많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체인점들이 확 늘어난 기분이였는데, 이번에 가니 체인점도 체인점이지만 작은 규모의 커피숍도 엄청 많이 생겼다. 예전에는 규모도 좀 있고 주문을 직접 받으러 오는 커피숍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대부분 크든 작든 셀프서비스의 커피숍들이 많아진 듯했다. 커피도 이런 저런 종류로 다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나와 남편이 생각한건.. 커피숍의 커피가 비싸고, 달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영국에서는 보통 돈을 내고 추가하는 시럽이 한국에서는 설탕마냥 그냥 배치되어 있다 (대신 영국에는 우유가 그냥 배치되어 있다 - 물론 영국의 우유가 한국의 우유보다 훨~~씬 싸다;;). 그래도 이번에 가서 기분좋은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건, 전통 찻집과 현대 커피숍의 개념을 접목시킨 카페에 가봤다는 거다. 이런 저런 빙수를 먹을 수 있었고, 인절미같은 떡 종류도 먹을 수 있었고, 커피 종류뿐 아니라 한국 전통차도 주문해 마실 수 있었다. 어떤 곳은 전통찻집처럼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을 수 있게 해 놓은 곳도 있었고... 나처럼 떡 좋아하고 너무 단 디저트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꽤나 환영할 만한 곳 ^^
4. 먹을 걸로 시작해 먹다가 끝난다
커피를 얘기하다가 생각난건데, 한국에는 유달리 음식과 관계된게 많고 먹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관대하다. 여수에 갔을 때,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계속 뭘 들고 먹고 있거나 하는 모습에 살짝 당황했다. 영국에서도 아쿠아리움에 간 적이 있는데, 먹을걸 들고 돌아다니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뿐 아니라 박물관이든 어디든 글쎄... 야외가 아닌 이상 들고 다니며 먹는 경우는 잘 본 적이 없다. 자판기를 비롯한 먹을 것들도 보통 입구나 마지막에 있는 카페에 몰려 있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줄 때도 대부분 그렇게 탁자에 앉힌체 먹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반면, 여수의 아쿠아리움에 갔을 때는 곳곳에 자판기가 배치되어 있고, 대형 수조 관람석 바로 옆에 카페가 있기도 했다. 그러고나서 생각하니 원래 그랬는데 이번에 새로 깨달은 건지, 지금 한국에서 유달리 그런건지, TV를 보더라도 유달리 먹는 방송이 많다. 요리를 하고, 맛집을 찾아 갔는지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막 보여준다. 그걸 보고, 남편은 '저렇게 먹는 걸 꼭 보여줘야 하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먹기'의 행위를 저렇게 공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 흠.. 그러고보니 영국에서도 요리하는 프로그램이 많긴 하지만, 사람들이 먹는 걸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글쎄? 왜 그럴까? 남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으라고? 식욕을 자극해서 너도 먹어보라고? 이건 나도 모르겠다;;; 누구 아시는 분??
(아, 음식과 관련된 덧. 한국 식재료 값이 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유 치즈 등 유제품류, 빵종류, 고기, 야채, 과일, 시리얼 등등... - 아니, 그럼 싼 건 뭐야?! 대체적으로 영국보다 외식비는 싼 거 같은데, 그것도 편차가 큰 것 같다. 음식이 아니더라도 유아용품등은 다 비싸다... 한국 물가, 장난아니게 올랐구나 -_-;;)
5. 대중교통은 아이들에게 인색하다
지방마다 다를지 모르겠지만, 최소 내가 겪어본 부산의 버스는 좀 거칠다(!);; 마구 흔들리고, 쿵쾅거린다. 버스에는 노약자석, 심지어 이번에 새로 발견한 임산부를 위한 분홍색 좌석도 있지만, 어린 아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부산에 있는 동안, 우린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했는데, 버스를 타서 자리를 양보받은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왠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닌 이상 버스는 잘 타지 않게 되고, 좀 돌아 가더라도 지하철을 타게 되는데, 지하철이 그나마 넓고 움직임이 덜하다 보니 편하다는 것뿐이지, 자리 양보같은 건 역시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게 대중교통 이용에 살짝 지쳐갈 때쯤 생각을 해보니, 버스나 지하철에서 우리아이들 만큼 어중간하게 작은 (만 1-3살) 아이를 데리고 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거다. 가끔 더 어린 아이들을 아기띠에 업고 타는 사람이 있거나, 좀더 큰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아이 또래의 아이를 둔 친구에게 물어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서 왠만하면 그냥 차로 이동한다고 했다. 주차가 귀찮고 비싸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치이느니 차라리 그렇게 한다고.... 작아서 혹시 치일까봐 안고 있자니 무거운 딱 그 시기의 아이들.. 에고.. 뭐... 다들 피곤한 세상에 굳이 내 아이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안전하게 서있을 공간이라도 좀 확보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휠체어 공간에 서계신 분들. 혹시라도 유모차가 오면 자리를 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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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한국에 잘 있다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에 작년 말부터 일들이 많이 꼬여서 머리속이 복잡해지느라 글을 많이 쓰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그 복잡한 일들을 일단 덮어두고 온전히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기려고 했구요.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지 않는 꼬맹이들 덕에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로 한국에 도착했고, 또 영국에 돌아왔지만, 대체로 시차적응도 서서히 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족들은 꼬맹이들을 반갑게 맞아줬고, 꼬맹이들도 생각보다 빨리 가족들에게 적응해서 애교도 부리고 하더군요. 그 작은 존재들이 어색하던 관계들도 녹여주었고.. 생각보다 많은 곳에 가지도 못했고, 아이들 중심으로 움직이다 보니 별로 한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였습니다.
막상 기차역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려니, 또 이들을 언제보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났고.. (요즘에는 선녀의 심정을 이해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둘이 있다보니, 여정도 힘들고 경비도 많이 들고.. 매년 여행은 사치겠지, 싶습니다) 실제로 영국에 돌아와서는, 또 혼자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히드로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딛고 들었던 생각은, '이넘의 낙후된 유럽 시설들, 무뚝뚝한 서비스들 같으니..' 였고, 역시나 영국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비바람을 내리치며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한국이 그립습니다. 옆에 있어주는 가족들이 그립고, 언제 나가도 사람냄새 나는 밝은 한국의 밤거리가 그립습니다. 모든게 몰려있고 꽤 괜찮은 카페와 아이들 놀이방 마저 있던 한국의 대형 수퍼마켓은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죠. 이렇게 나와 산지 이제 12년. 물론 이젠 다시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거기에 완전히 적응할 순 없겠죠. 그렇다고 완전히 영국인이 되지도 못할거고. 이 영국에서 얼마나 더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는 어차피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올해는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지던 육아의 바다에서 슬쩍 빠져나올 준비도 하고 있구요. 이 작은 집에 간간히 들려주시는 분들. 올해에는 좀더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시고, 기억에 남을 추억도 많이 만드시고, 살짝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도 많은, 그런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행여 왠지 삶에 마이너스만 가득찬 것 같은 기분이 드시더라도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는 힘이 솟아나는 한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