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열문화] 지방출신이면 어때서
한국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최근 부쩍 한국 사이트를 둘러보는 중인데, 그러다가 다움에서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라는 글을 발견했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261) 보니까 스토리펀딩이라고 프로젝트를 누군가 진행하고 그걸 후원해주는 시스템 같은데, 그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신선해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방'이 들어간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일단 관심을 갖게 됬다. 20대의 학생들 5명이 지방 청년들의 삶, 취업, 문화 생활 등등을 취재한 글들이 10개 있었는데, 어떤 건 공감도 가고, 어떤 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꽤나 애를 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무엇보다 생각에 잠기게 만든건 그 글들에 달린 답글들이였다. 어떤 답글들은 한탄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어떤 답글들은 그래도 우린 지방에서 행복하다, 라는 말을, 어떤 답글들은 아주 공격적으로 지방을 무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글들은 내가 겪었던 어떤 목소리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써보는 이야기..
난 고향은 수원이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산에 내려와 영국으로 나오기 전까지 계속 부산에 살았었다. 아버지는 몇년간의 서울살이와 경기도 살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억양이 고쳐지지 않는 전형적인 부산 사람이셨고, 어머니는 전라도 사람이다. 처음 부산에 내려왔을 때, '자빠졌다'라는 말을 듣고 그 말이 재밌어 웃었고, '가씨나'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심한(!) 욕을 들었다는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물론 학교에 들어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은 없어졌지만. 그리고 예상하다시피, 난 부산의 국립대를 나왔다. 그러니까, 실제 어원은 어찌되었건 간에, '서울'이 아니면 몽땅 싸잡아 '지방'으로 뭉떵거려 부르는 이들에게 난 지방출신의 지방대를 나온 사람이다.
기억 1.
캠브리지에 다닐 때, 카이스트 재학생들이 여행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영국에 왔다가 캠브리지 대학을 둘러보러 오는데, 공대 재학생들이 시간을 내서 저녁에 그들과 만나볼 수 없겠냐는 메일이 왔었다. 당시 카이스트에 다니던 친구가 그 얘기를 해주며 자기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그 전에 했던 지라, 그 모임에 나도 참가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안왔다 -_-;;). 그리고 그 저녁. 카이스트 방문 학생들은 열명이 좀 안되었고, 우리도 열명이 좀 안되었다. 서로 대충 이름과 전공을 말하고 나니, 그 다음에는 '동문찾기'가 시작되었다. 다들 내노으라 하는 서울의 이름있는 대학 출신들이였고, 그 안에서 내가 출신 대학교를 말했을 때는 약간의 정적마저 감돌았다. 그리고 다들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는데, 내게는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 혼자 앉아 그저 옆자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카이스트 재학생 한명이 다가와 말을 했다.
"부*대 출신이시라구요? 인간승리네요. 대단하세요"
그 학생 얼굴을 보니, 비꼬는 것 같지 않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내게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렇게 다가와서 말을 해준 그의 친절이 고맙긴 했지만,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네. 저 대단하죠?'라고 말해야 하나, 지방대 출신이 캠브리지까지 오게 된게 인간 승리라고 까지 여겨질 일인가? ... 결국은 그냥 "아... 네.." 하고 말았다. 꽤나 살가워 보이던 그 친구는 간단하게 캠브리지 지내는 거 어때요? 좋죠? 등등을 말하다가, 그의 고등학교 선배인가 하는 사람이 불러 사라졌고, 난 내 앞에 있는 기네스 파인트만 만지작 거리다가 거의 원샷하듯 들이키고 일찍 모임에서 나와버렸다.
기억 2.
박사를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박사과정 학생들도 있었고, 물론 한국인 학생들도 있었다. 대부분 남자들이였고, 대학원인 까닭에 나보다 나이가 많고, 역시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이름의 대학 출신들도 많았다. 혹시라도 같은 나라 출신이라고 우대하니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오다가다 볼 때는 인사를 하고, 짧게 얘기를 하더라도, 따로 그들의 행사에 참가하거나 술자리를 가지거나 하는 건 피했었다. 그러다가 그런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몇명 남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오간다고.
"ㅅㅂ 내가 부*대 한테 강의들을라고 영국온줄 아나"
기억 3.
한국에서 여전히 대학에 다닐 때 일이다. 서울에 있는 국제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거의 50명이 가까운 참가자들 중에 지방의 대학에서 올라온 사람은 10명이 안되었다. 어쨌건 행사기간 동안 저녁마다 그들 중 몇명은 따로 한 방에 모여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며 놀았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어떤 특정 대학들 출신이였고, 서로 서로를 출신대학의 애칭으로 부르며 놀았다. 그러다 어쩌다가, 그들의 모임에 특별히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어렸을 때 외국물을 먹어본 사람들이거나,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학 출신들이라 그런지, 대화를 하다가도 마지막은 '오~ 역시 연*대 출신! 오~ 역시 미국 출신~'하는 식으로 끝나서, 혼자 낯설게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학 서열이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나, 외국물을 좀 오래 먹고, 영어만 들어도 차원이 다른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항상 대화의 중심이 되었고 환영을 받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어색하게 남들 웃을 때 웃고, 손에 든 잔만 만지작거리며 앉아있었다.
기억 4.
아기를 낳고 나서 어쩌다 여기서 한국 사람 몇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부산 출신이라고 말하자, 진심으로 걱정어린 말투로 그러셨다.
"아기들 한국말 사투리로 배우면 어떡해요" .........
.............
한국에 살면서 부산에서만 20년을 넘게 보내서 그런지, 솔직히 '지방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물론 서울에 갈 때마다, '확실히 인간이 많구나. 다들 바쁘구나, 뭐가 많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하진 않구나, 도대체 여긴 어디지? 가깝다고 생각하고 걸었는데 꽤 머네? (버스는 잘 몰라 못타고, 전철도 애매해서 동대문, 종로, 을지로, 명동 다 걸어다녔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혼자 대학로에서 연극도 보고, 그러긴 했지만, 장기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서울살이가 어떤 건지도 잘 모른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었던게, 그 국제행사를 통해서 였는데, 좀 충격받긴 했다. 그 때 스키장에 처음 가봤는데, 부전시장에 들러 대충 두툼한 방수된다는 싼 바지와 장갑을 가지고 간 나와는 달리 다들 참 예쁘고 날씬한 스키복 차림이였고, 마지막 행사의 밤에서는 클럽에서 요즘 이렇게 놀잖아, 하면서 세련되게 입고 춤추는 이들을 그냥 멍하니 보기만 했었다 (한국에서는 클럽에 가본 적이 없다;;). 그 때는 정말 내가 '촌스럽다'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에 가서도 공대를 다니면서 화장이니 꾸밈과는 거리가 멀게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면서 놀았던 내가 그냥 촌스러웠던 거지만, 그 때는 괜히 그게 내가 '지방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부잣집 아이들을 보는 심정으로 왠지 나만 다른 세상에 속한 그런 느낌. 그런데 그런 이미지는 다른 매체를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투영되지 않나? 드라마나 소설 같은 곳에서 시골이나 지방이 배경인 경우, 서울에서 전학오거나 이사온 애들은 항상 부잣집 아이들이거나 새침하고 사연도 있고, 그 동네 아이들 다들 공차고 흙에서 구르며 노는데, 그 애들은 옷도 깔끔하거나 드레스를 입고 서서 보고 있고, 뭐 그런 식으로 그려지지 않는가.
그리고 대학. 원래 단순히 집을 떠나고 싶어서 부산이 아닌 곳에 있는 대학으로 가려고 했지만, 고3때 일이 생겨 결국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대학에 갔다. 대학에는 여러 곳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고,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붙긴 했지만 재수를 준비하거나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긴 해도, 내가 들어간 대학에 대해 별 불만은 없었다. 물론 국제행사에 참가해서 대놓고 서열놀이하는 걸 보고는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초라함이나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냥 서울에서는 이렇게 노는구나, 혹은 이 사람들은 이렇게 노는구나, 내가 별로 낄 자리는 없겠구나, 정도 였다고 할까. 그 때는 그냥 나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 때는 대학 생활의 거의 막바지라서 유학 준비니 뭐니 내 미래 계획을 하느라 온갖 에너지를 쏟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관심이 없었던 것일지도;;;
그러다 한국에서 느껴본 적없던 자괴감과 열등감은 영국으로 유학을 온 후 거의 매일같이 나를 찾아왔다. 난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한국은 그렇게나 작은 곳이였구나. 세상은 정말 넓구나.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1-2년 빨리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구나 (이게 가장 부러웠다. 난 이제 석사 준비하는데 얘들은 벌써 박사과정;;),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 등등... 그래서 더 악을 썼다. 나도 살아내고 싶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내 인생을 끝낼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내 존재를 이 세상에 남기기 위해 버텨야 겠다고, 노력해야 겠다고. 이제라도 늦은 건 아니라고, 이렇게 지금이라도 시작한게 어디냐고. 벙어리가 되려고, yes man이 되려고 그 돈과 시간, 노력을 투자해서 영국까지 온건 아니라고. 나도 말할 수 있고, 생각이 있다고. 영어가 서투르다고 내가 바보는 아니라고.
그렇게 몇년을 버티고 나니, 내게 낯설게 다가오는 경우는 한국내에서의 서열가르기였다. 내게는 한국에서의 경험이 그저 나라는 사람을 있게 했고, 이루고 있는 요소 같은 거지, 굳이 그게 나라는 사람의 위치를 낮거나 높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하지 않는다. 나는 서울의 지리를 모르고, 강남과 강북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서울 버스 요금이 어떤지, 지하철 노선이 어떤지도 잘 모른다. 대신 부산의 지리를 알고, 지하철 노선을 안다 (버스 요금이나 유행은 나도 모름;;). 부산이나 경남의 관광지를 더 잘알지만, 한국의 여러 곳을 여행도 해봤고, 한국의 역사를 알고, 사회적 이슈들을 알고, 한국말을 할 수 있다. 그정도면 어디가서 '나 한국인'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생활 역시 지방이건 뭐건 간에, 내게는 꽤나 즐겁고 좋은 시간들이였다. 고등학교 이후 처음 주어진 자유의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다 해봤다고 생각하고, 별로 후회도 없다. 내가 속했던 대학이 다른 지방의 어떤 대학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도, 다들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서울의 몇몇 대학들에 비해서 질이 떨어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유학을 준비함에 있어 한국의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는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어떤 걸 전공했는지를 궁금해하지, 그게 어느 학교였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라는 사실로 마무리 될 때도 많고...
그래서 영국에서 만난 누군가가 내 한국에서의 대학으로 내 순위를 매겨버리면 좀 당황스러워진다. 거기에 '비'서울 출신이라는 것까지 더해서 잣대를 매기면 더더욱 당황스럽다. 아니, 사투리를 하든 말든 다른 한국사람들과 소통 가능한 한국말을 할 수 있으면 된거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영국에서는 방송을 보더라도 온갖 억양과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BBC용 말투같은게 있긴 해도, 아이리쉬 악섹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스코티쉬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발음 교정을 하는 일은 없는 듯하다. 굳이 다들 '표준어'를 쓸 필요는 없는거다.
.............
이건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고, 물론 한국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지방-서울간의 격차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리고 한국 툭유의 방식으로 그런 사회적 문제는 종종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서울 가던가' 혹은 '그러게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 가면 됬잖아. 네가 노력을 안해서 안간걸 가지고 누굴 탓해' 등등.. 그러다가 사람들은 편을 갈라 자기들끼리 돌을 던지며 싸운다. '서울은 진짜 사람 살 곳 못된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제발 서울오지 말고, 그냥 지방에 살아라' 등등... 정작 화살을 돌려서 단합해서 맞서야 할 대상은 정부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정부가 머리가 좋은건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들은 이렇게 개인의 문제로 돌려지고, 사람들은 알아서 편을 갈라 싸운다. (e.g. 여성-남성, 서울-지방, 고용주-피고용인, 등등). 그리고 그 내부에는 자기도 어쩔 수 없는 분노가 있다. 분명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해결될 수 없는, 개인의 수준을 벗어난 보다 근원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해결될 기미도 안보이고, 어떻게 해야할 수도 없고, 그 와중에 비난과 책임의 화살은 나에게 돌아오니 화가 나는거다. 그래서 우리는 그 화를 내가 못가진 무엇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를 탓하는 다른 이들에게, 나보다 나아보이는 상황에 있는 다른 개인들에게 돌린다. 그 화를 풀어내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식은 바로 사회를 바꾸려는 어떤 움직임이나 노력을 하는 거지만, 개인에게는 너무도 큰 일이고, 정부가 알아서 그걸 개선하려고 하거나, 그런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 자치단체나 사회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아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굳이 개인적인 입장에서 뭐라도 말을 해보자면... .... 지방출신이라고, 지방대출신이라고 자기에게 붙어있다고 생각되는 꼬리표 때문에, 지금도, 오늘도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그런 생각은 내 내부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모르게, 서울 중심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자라면서, 은연중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건 아닌지. 내가 국제행사에서 느꼈던 것처럼, 어쩌면 그냥 내가 처음 겪는 상황이라서,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라서 당황한건데, 그걸 내가 '지방사람/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이야'라고 손쉽고 빠르게 결정을 내려버린건 아닌지. (단언컨데, 서울에 살면서도 우리가 티비에서 보는 것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_-+)
그리고 실제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 혹은 지방이나 지방대 출신이라고 업신여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편을 가르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것에 이끌려 무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다른 이들을 배척하면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역, 대학, 심지어 나라를 떠나 그냥 인간들이 그렇다. 그저 그걸 내보이는 정도가 다를 뿐이지. 그럴 때, 나를 배척하는 사람의 무리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일날 일은 아니다. 내게도 나를 지탱하고 받아주는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아무리 그게 사소하고 시시해보인다 할지라도). 단순히 '지방'으로 분류되지만, 그 곳은 내가 살아왔던 곳이고, 나의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곳이고, 그만큼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많은 조각들을 만들어준 곳이다. 그리고 그걸 누구도 무시할 권리는 없다. 만약 누군가가 그걸 빌미로 나를 얕보고 비웃는다면, 그냥 그 사람의 얕음과 무지에 대해 안타까워 해주면 된다. 나란 사람은 당신의 그런 얕은 수작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당신이 비웃는 내 출신 지역은,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준 토양 대신, 내게는 이렇게 강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만들어준 토양이라고.
세상이 우리를 지탱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살짝 서글프긴 하지만, 그렇게 강해진 우리가 또 세상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