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한국에서 매트릭스의 냄새가 난다

민토리_blog 2015. 11. 11. 06:38

이번 12월에 한국에 들어갈 계획을 하고 있다. 첫째 때까지만 해도 일년에 한번은 들어가는 정도였는데.. 첫째가 7개월정도 되었을 때 다녀온 후 한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이번에 가는게 거의 3년만이다.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는 여기서 샀고, 이제 인천공항에서 가족들이 있는 부산까지 어떻게 가느냐 등등을 고민하다 이것저것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 뭔가 자꾸 딱딱 막아선다;; 


일단 한국에서는 무슨 웹사이트이든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바탕으로 한다. 그게 없으면 크롬이든 파이어폭스든 사파리든 잘 작동되지 않는 사이트가 많다. 특히 '보안'이 딸려오는 사이트들은.. 우리집에는 남편이 컴퓨터 전공인 까닭에 컴퓨터와 연관된 기기 들이 꽤나 많다. 둘다 기본적으로 맥북을 쓰고 있고, 남편의 영향으로 둘다 리눅스가 깔려진 컴퓨터를 하나씩 쓴다. 그리고 리눅스에 깔려있는 libreoffice 같은 걸 써서 문서를 작성한 후 MS office로 열면 서식이 깨질 때가 많아서, 집에서 작업해서 문서 공유를 해야하는 경우 가끔 쓰는 windows가 깔려있는 컴퓨터가 따로 하나 더 있다. 그 외 남편이 여기저기서 모아다가 고친 후 쓰지 않는 (남편의 취미라면 취미;;;) 랍탑들이 6-7개는 더 있고, home server도 깔려있고, 하여간 뭐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연관된 뭘 하려면 무조건 windows가 깔린 컴퓨터를 켜서 꼭 internet explorer를 써야한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그래서 익스플로러로 한국 계좌가 있는 은행의 사이트에 연결해서 깔라는 거 다 깔았다. 그리고 막상 정보를 조회할려고 하니, 인증서가 있어야 한단다. 분명 전에 인증서를 받았는데, 유효기간이 1년밖에 안되서 다시 받아야 한다. 그래서 또 인증서 재발급 신청 사이트로 다시 가서 깔라는 거 다 깔고, 인적사항 기입하고... 그랬는데, 본인인증을 하란다. 그리고 그건 '휴대폰 인증'만 가능하다;; 그것도 한국 통신사를 사용해서 개통된 내 명의인 휴대폰이 있어야만 한단다. 그래서 일단 은행 계좌는 놔두고, 인천공항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표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기차표를 온라인 상에서 살려니 또 로그인을 하란다. 멤버쉽 번호, 휴대폰 아니면 이메일. 그래, 이메일이 있군. 가입신청서를 열심히 작성했다. 그런데 또 휴대폰 인증을 하란다;; 돌아버리겠다;; 만약 내 명의의 휴대폰이 없으면 i-pin이란걸 사용하면 된단다. 그래서 또 아이핀 가입 사이트로 넘어가서 깔라는거 다 깔아주고... 인적사항 다 넣어주고... 그랬는데 또 본인 확인에서 '휴대폰 인증'이 필요하다;; 아니 이건 뭐 기승전휴대폰인지.. 이쯤되니 슬슬 머리에서 김이 나기 시작한다. 그 때, 창 밑에 작은 글씨로 만약 휴대폰으로 인증이 안되면 공공 아이핀을 신청할 수도 있단다. 또 사이트로 넘어갔다. 근데 아까 봤던 아이핀이랑 사이트가 똑같은 거 같다. 그러더니 또 본인확인을 위해 휴대폰을 쓰던지, 공공기관에서 발급된 인증서를 쓰던지, 아니면 대면확인을 하란다. 서울의 어딘가에 있는 사무소를 찾아가서;;;;; (아무래도 결국은 주민등록번호가 있음에도 '재외국민'을 선택, 여권번호로 가입하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이쯤되니 살짝 두려워진다. 뭘 하던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거나 집어넣어야 했던 그 시절에도 그게 내 개인정보를 보호해 준다기 보다, 왠지 내 사생활을 더 드러내는 것 같아 찜찜했는데.... 이제는 주민등록번호도 안되고, 아예 온라인 상에 나라는 인간과 연결된 고유번호를 받으라는 것 같아, 왠지 '개인정보보호'라기 보다, '개인정보공개/통제'같은 기분이 더 든다;;;;;; 그리고 이해가 안되기 시작했다. 그럼 한국에서는 미성년자를 제외한 모든 성인이 다 자기 명의로 된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 아이핀이든 뭐든 그럼 한국에서는 모든 인터넷상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말인데, 그럼 그렇게 통합되어져 저장된 데이터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단 말인가 (4개의 민간기업에 저장되어 있단다;;). 투자를 할 때도 계란을 한바구니에 넣어두지 말라 그랬는데, 그렇게 한곳에 한나라 국민 전체의 데이타를 몽땅 모아두는게 과연 안전한 건가?? 아니, 처음부터 왜 그런 시스템이 필요해 진거지?? 주민등록번호만으로는 뭔가 모자라단 말인가??? 


간단히 검색을 해보니, 민간기업에서 주민등록번호를 과도하게 수집해서 개인정보 유출이 문제가 되자, 정부에서 '그럼 우리가 다 관리해주마'하고 나서서 만든게 그거라는 얘기를 찾았다. 그런데.... 이미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주소와 가족관계, 심지어 재산 상황까지 다 알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데, 온라인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넣지 않고 그 아이핀이니 인증서니 뭐를 사용하는게 더 뭘 안전하게 만든다는 건가? 어차피 그 아이핀이니 인증서니 하는 것도 다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가 있어야 받을 수 있는건데. 그럼 이젠 단순한 그 사람의 인적사항뿐 아니라 번호하나로 그 사람이 뭘 사는지, 어디서 뭘 타고 어디로 이동했는지, 뭘 먹었는지도 다 알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그리고 사실 이런 말 한국정부에게 미안하지만, '정부'라고 해서 더 안전하다는 보장은 어디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그냥 온라인상에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시스템 자체를 없애면 안되는가? 아니, 왜 가입할 때 굳이 실명 인증이 필요하단 말인가? 인터넷 상으로 결제가 필요한 경우는 내 이름과 내 은행계좌의 이름이 동일한지 확인만 시키면 된다. 은행과 내가 돈을 지불하려는 온라인 상의 회사와의 일이지, 거기에 주민등록으로 대표되는 정부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는거다. 내가 관심있는 글이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서, 내가 살고 있는 주소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항까지 포함되는 내 정보를 알려야 할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모든 온라인 상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가? 애초에 과도하게 개인의 정보를 요구하니까, 유출의 문제가 생기고, 더한 통제가 시작된거 아닌가?? 


그럼 악플로 인한 건 어떻게 하느냐고? 잘은 몰라도, 어차피 악플이나 온라인 상의 범죄가 발생하면, 가입자의 정보도 그렇지만 접속한 아이피 주소따윌 체크해서 범인을 잡지 않나? 그리고 그런것 역시 주민등록제가 없는 나라들에서도 다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왜. 온라인상으로 주민등록이 필요한가? 실명이 아니면 끝장나나? 어차피 가짜로 작정해서 일을 칠 사람이면, 주민등록도 다 가짜로 해서 쓸텐데, 그게 도대체 뭔 소용인가.... 


영국에 있으면서, 혹은 유럽을 여행할 때도 많은 걸 인터넷을 통해 해결하곤 한다. 물론 많은 걸 사기도 하고, 예약도 하고... 계산을 할 때 필요한건, 내 주소와 계산할 카드. 어디에 가입할 때도 필요한건 내 이메일 주소와 내가 사는 곳 주소. 인터넷 뱅킹을 할 때는 보통 여러개의 본인확인을 할 질문들이나 비밀 번호들. 그리고 은행에 따라 키패드를 따로 주기도 한다. 처음 가입할 때 휴대폰을 이용한 서비스일 경우, 폰을 통해 인증번호을 보내줄 때도 있고, 다른 경우에는 이메일로 확인 링크를 보내주기도 한다. 스페인의 경우, 한국처럼 주민등록번호같은 게 존재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심지어 뭔가를 결제할 때도 그 번호를 요구하는 일은 없다.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금지되는게 대부분이다. 


유럽은 이런데 한국은 왜이래, 하는 말을 하려고 글을 쓰고 있는게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뭘 하나 사려고 하니, 어디 사이트를 쓰려고 하니, 왠지 뭔가 거대한 막이 둘러쳐져 있는 느낌이 들어서. 그 안으로 좀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니, 왠지 나 어딘가에 바코드가 찍히는 기분이 들어서.. 좀 과장되고 드라마틱하게 말하자면, 마치 내가 도망갈 수 없게, 숨을 수도 없게 바코드를 찍고서, 내가 이제부터 한국에서 뭘 할건지 누가 지켜보고만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민감한 걸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 구글도 그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것 같아 왠만한건 좀 불편하더라도 다 싱크를 시키지 않고 따로 쓰고 있고, 여전히 왠만한건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하려고 하니까... 그래도 궁금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잘 모르시는군요, 한국에서 온라인상으로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고, 아이핀같은 게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거 이겁니다' 하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지도 않을까? 혹시 있으시다면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 여전히 기차표도, 국내선 비행기표도 못사고 있다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