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불확실함을 대하는 자세

민토리_blog 2015. 10. 9. 05:19

불확실하다 것. 삶을 살면서 '확실'한 상황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그래도 우리는 왠지 예상가능한 삶에서 약간의 안정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불확실함이 강해지면, 마치 안개가 자욱히 깔린 어두운 공간에 들어선 기분이다.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고, 한발을 내딛는 것 조차 과연 안전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하기 쉬운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가만히 있는거다. 물론 그러면 더이상의 진전은 없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상황이 바뀌기를,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어지기를 기다리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삶은 절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진 않는다. 멈춰있는 차 처럼, 시간은 흘러가지만, 우리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거다. 그렇게 깊은 안개 속에서 가만히 서서 재깍 재깍 시간이 가는 소리만 듣고 있자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럼 그 다음에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상황을 원망하고, 더 쉽게는 그 상황에 있는 나 자신에게 화를 내고 탓하는 거다. 감정적이 되어서, '왜 나만 이래야 되는 거야? 세상은 불공평해,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주어지는 거지, 내 삶은 언제쯤이나 나아질까, 아니 나아지긴 할까? 나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 잘 하는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도와줄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부모가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사람이였다면, 내 외모라도 괜찮았다면, 내가 뭐하나 특별나게 잘 하는 거라도 있었더라면... ' 등등,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건 아~~~주 쉽다. 좀만 맘을 먹으면 아주 쉽게 들어가서 휘말릴 수 있다. 감정이 격해지면 소리도 지르고, 울고, 이렇게 울고 괴로워하다 보면, 하늘이나 땅에 있는 누군가는 내가 측은해서라도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이 안개를 걷어내주지 않을까, 어디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짜잔~~~' 하고 어딘가에서 빛이 비추면서 내게 길을 인도해주지 않을까, 누군가 안개 속에서 나타나 내 손을 잡아 이끌어주지 않을까....... 


없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런 거 없다. 내가 안움직이면 안개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만약 저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업고 나를 대신해서 가야할 길을 정해서 내가 안개를 벗어날 때까지 데려다 주거나, 정말 운명처럼 어딘가에서 나를 인도하는 빛을 보고 불확실성을 이겨낸 사람이 있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정말 드문 행운과 복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만약 첫번째 경우처럼 누군가 당신을 늘 지탱해주고 대신 결정도 해주고, 손잡아 이끌어 주고, 부추기고, 심지어 대신 위험도 감당해준다면, 정말 당신은 그 사람한테 잘 해야해요. 완전 보살 만난 거죠. 좋으시겠어요... 


그런 축복이 나처럼 인생에 잘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굳건하게 내 두발로 앞에 뭐가 있건 걸어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슬퍼할 건 없다. 우린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그건 그리 나쁜 일도 아니다. 불확실하다는 건 위험요소가 많다는 거지만,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게 러시안 룰렛처럼 한방에 내 생명을 요구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그런데 두려움에 몸을 맡기고 감정적이 되면, 마치 그게 세상의 끝처럼 느껴진다. 뭐... 만약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그대로 시간이 가는데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게 끝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가능하다면, 감정을 배제하고 좀 더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보려고 한다. 일단 할 수 있는 결정부터 내리면 된다. 그게 누군가에게 사소한 연락을 하는 거든, 작은 습관을 바꾸는 거든. 그렇게 한발을 내딛고 나면, 마치 그게 연결 돌이라도 되는냥 다음에 할 수 있는 일들이 고리처럼 걸려서 생겨나곤 하니까. 퍼즐을 푸는 것처럼. 하나 풀고, 다시 확률을 따져보고, 다음 행동을 정하면 된다. 물론 처음에는 꽤나 진행속도가 느려서, 이거 한다고 뭐가 되겠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신에게 날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한방에 훅 하고 날아갈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로또로 한방에 인생 역전하겠다는 건, 당신의 바램. 그전까지는 내게 주어진 다리로 열심히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종종 거리며 가다보면 가끔은 너무 피곤하고 그 느린 속도에 막 짜증이 나서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하고, 혹시 이게 아닌거 아냐, 하는 의심이 소록소록 샘솟기도 하고, 다시 옆으로 뛰고, 걷고, 기고, 나는 사람들을 기웃거리며 '나도 한번?' 하는 유혹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을 내던져 신나게 흔들리다가 너덜너덜해진체 나오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럴 때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내게는 내가 만든 그 때의 선택이 최선이였다고.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내가 만들어낸 최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온 결과라고. 그러니 후회할 것도 없고, 중요한건 여기서 또 얼마나 최선을 다해 다음 선택을 할 것인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작은 결정을 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후와, 여기까지 왔구나'하고 왠지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굳이 목적지가 '성공'이여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행복'이여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열심히 살았다' 하고 스스로를 토닥여줄 만큼의 작은 만족이 생긴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


이렇게 두리뭉실한 글을 쓸 생각은 아니였는데... 요즘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불확실한 안개 속에서 정신못차리고 헤롱거리다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롤러코스터도 겸사겸사 몇번 타고 나니, 몸도 마음도 완전 너덜너덜해졌길래, 이제야 머리를 비울 힘이 생겨 쓰고 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긴 힘들지만, 내 스스로를 깍아내리고 고문하는건 왜 그리 쉬운지;;;; 


괜찮다. 하나하나 하면 된다. 움직이는 차는 고속도로건 벽이건 절벽이건 어디로든 가지만, 움직이지 않는 차는 아무데도 가지 않으니까. 일단 움직이자. 그러다가 길이 나타나면 달리면 되고, 벽이나 절벽이 앞에 나타나면 또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된다. 하나씩 하나씩.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