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Woman in Black] 끝나지 않는 공포

민토리_blog 2015. 8. 27. 20:32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책을 빌리기 위해 줄을 서있는 동안, 반납대 근처에서 이책의 영화 DVD를 보게 되었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 제목이라 그냥 들고서는 줄거리를 읽어보다가 약간의 흥미가 생겨서 도서관 사서에게 이 원작 책이 있느냐고 물어서 바로 빌려왔다. 



Woman in Black

저자
Hill, Susan 지음
출판사
Profile Books | 2011-09-29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수전 힐은 데뷔 이래 순문학, 장르문학, 청소년소설과 전원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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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만을 소개하자면, 200페이지 정도 되는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다. 장르는 공포/호러. 읽는 동안 참 영국스럽다는 생각이 물씬 풍기게 묘사를 잘 해두긴 했지만, 내게는 소설이 중반이 넘어가도록 약간 진전이 없다는 느낌을 줄만큼 살짝 지루한 부분이 있긴 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자면, 젊은 변호사 Arthur가 영국의 아주 외진 시골, 습지로 둘러싸인 Eel Marsh House의 주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실 여자 유령이 나온다고 하면,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부분 사랑이나 자식에 관련된게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미스터리'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이 사람은 이토록 뻔한 이야기를 더이상 어떻게 공포스럽게 만들 생각인걸까'하는 궁금증이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봐야 책인데 무서워봐야 얼마나 무섭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도 하면서.... 


사실 중반이 넘어서고 10페이지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적어도 내게) 가장 공포스럽고 끔찍했던 순간은 바로 마지막 페이지였다. 마지막 5페이지를 읽으면서, '설마.. 설마..' 했고, 3페이지가 남았을 때 살짝 소름이 돋기 시작하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보고싶지 않았던 호러 영화의 장면을 방심하다가 정면으로 보게 된 것마냥 소름끼치고, 심지어 짜증까지 났다. 그래서 당장 책을 덮어버리고 그 날 당장 반납하러 가기로 했다. 다신 이 여자의 글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


그렇게 돌아서서 먹기 싫었던 음식을 먹은것마냥 찝찝한 마음에 어떻게든 생각을 씻어내려는데, 책 내용 대신 선명히 머리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최근 며칠 동안 계속 뉴스를 통해 봤던 시리아의 난민들이였다. 옛날 유대인이 이집트를 빠져나왔던 것 마냥 줄줄이 무리를 지어서 나라와 나라를 건너서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 국경지역에서 경찰들이 막아서고 수류탄을 쏘아대는 와중에 어린 아이들을 앞세워서 어떻게든 국경을 넘으려던 그 사람들. 울부짓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떻게 아이를 이용할 수가 있어!'하고 화가 나다가, 그렇게 해서라도 방어막을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길에 남겨질 아이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고... 길가에서 어미에게 안겨 잠을 자고 있거나, 맨발로 흙먼지 투성이인 바닥을 누비며 동그란 눈을 뜨고 카메라를 바라보던 아이들을 볼 때 느꼈던 그 감정. 화가 나고, 슬프고, 두려워지면서 먹먹해지던 그 느낌. 


어렸을 때는 귀신이라던가, 종말에 관한 것이라든가, 그런 불확실한 어떤 것들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끝이 없는, 해결이라든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어떤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아니, 공포라기 보다는 '무력감'에 가깝다고 할까. 안전지대가 없다는 그 사실. 이제는 왠지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도리어 현실적이 되어버려서 새로운 종류의 두려움과 갑갑함이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아이들에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읽어주고서는, 이야기는 베짱이가 추운 겨울에 개미의 집을 찾아가고 개미들이 베짱이에게도 음식을 나눠주면서, 베짱이는 자신의 게으름을 반성하며 훈훈하게 끝이 나지만, 내 생각은 '겨울은 긴데 그 한끼만 먹고서 해결될 일은 아니잖아. 겨울 내내 개미가 베짱이를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줄까? 개미는 쉬지않고 열심히 일해서 겨울동안 그나마 쉬고 있는 건데, 그렇게 열심히 모은 양식을 베짱이가 공짜로 축내고 있는게 싫진 않을까, 그렇다고 베짱이를 며칠 후에 내쫒아내면 베짱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설사 개미가 베짱이를 겨울내내 있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베짱이가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구는 건 아닐까, 그리고 여름이 온다고 한들 베짱이가 개미를 도와 일을 하긴 할까? 그렇게 일을 하면 그건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처럼;;; 시리아의 난민들을 보면서도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거다. 저렇게 어떻게든 살겠다고, 자기 나라와 그동안 일궈왔던 삶의 모든 걸 버리고 떠나온 사람들, 북유럽으로 가면 어떻게든 삶이 보장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살아남았다'라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며 땅에 키스하던 사람들. 그렇게 북유럽 어딘가로 퍼져갈 사람들, 혹은 어딘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땅에서, 혹은 물에서 그렇게 삶을 마감한 사람들. 유럽 어딘가로 퍼지더라도 몇몇은 운좋게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먹고 쉴 공간이라도, 기회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이도저도 아니면 또 사회의 어두운 한 그늘에 갇혀서 살아갈 수도 있는 사람들... 


공포는 그런 순간 찾아오는 것 같다. 탈출구나 안전지대가 없다는 사실. '끝'이 없을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 내게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 '죽음'이라는 미지의 그림자를 늘 품고 사는 우리네 삶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공포는 어떻게 해도 지워낼 수 없는 얼룩같기도 하다. 물론 그 얼룩을 늘 신경쓰고 초조해하며 살다가는 내 제대로된 자아마저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그리고 참 뻔하게도, 결론은 하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자. 가능하면 내 안에 있는 빛을 좀 키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