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연애하는 당신들 화이팅!

민토리_blog 2015. 8. 14. 15:07

여전히 청춘이라고 믿고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연애'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주는 모든 어감들이 마치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홍수가 났다더라, 하는 뉴스를 듣는 것과 비슷하게 동떨어진, 나와는 상관없는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때. 


아직 스무살도 채 안된 누군가가 내게 설레는 목소리로 최근에 알게된 누군가와 매일 연락을 주고 받는데, 그 사람에게 설레고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도 날 그렇게 생각할 지, 나혼자만 좋아하고 있는건 아닌지, 아니면 혹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어떤 두근거리는 사인을 그 사람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또 그러다가 그 사람은 다른 이성과도 연락을 주고 받는 것 같은데, 그 사람에게 난 그저 많은 이성 친구 중 한사람일지도 모르는데, 하며 괴로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런 이런 행동과 말을 한 걸 보면...'하는 생각에 희망이 부풀어오르고 가슴이 뛰고..... 이토록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당장이라도 고백해서 다 쏟아버리고 싶다가도, 혹시라도 그 심장이 조각나 부서져서 다시는 그런 두근거림을 못느낄까봐 겁이 나서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분명 본인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걸 본 사람마냥 어딘가에라도 그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든 밖으로 조금이라도 내보내려고 말을 한거겠지만, 그리고 그만큼 그사람으로 인한 작은 설레임들이 나비효과마냥 마음에 거대한 폭풍우를 만들어서 몰아쳐대고 있겠지만... 그 말들을 들으며 내가 생각한건, '아.. 아직 어리구나, 그리고 참 예쁠 때구나'...


반면, 이혼한지 3년이 넘어가는 아이가 하나인 친구는 작년부터 데이팅 마켓에 뛰어들었는데.. 여러번의 실패와 한 두번의 썸타기와 한번의 그나마 좀 심각했던 연애를 마치고, 최근에야 다시 연인관계에 입성했다. 그녀는 이번에 새로 만난 남자친구가 얼마나 자상한지, 지적인지, 섬세한지 등을 말했지만, 야속하게도 그 말을 듣는 나를 포함한 다른 (이미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의 관심은, 그 남자가 그녀와 진지한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이를 좋아하는지, 무엇보다 그녀의 아이를 만나봤는지, 그녀의 아이를 자기 아이마냥 생각하고 예뻐해 줄 수 있는지, 등에 쏠려있었고... 그녀가 그남자는 법적으로 미혼이지만, 오랫동안 동거를 했었고, 지금도 그 옛 여자친구와 '하우스 쉐어' 중이며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아직 그녀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말에 우린 모두 어색하게 침묵했다. 물론 그녀는 그런 우리의 침묵을 이해한듯 서둘러서 그의 사정을 변호하기 시작했고 (둘이 집을 같이 샀다, 요즘 부동산 가격 알지 않느냐, 팔 수가 없어서 그냥 같이 살고 있는거라더라, 둘이 같이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도 문서상으로는 동업자인데, 사적으로 관계가 깨졌다고 사업까지 때려치울 순 없는거 아니냐, 등등..), 우린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Of course, it must be hard for him too' 하며 이해한다는 듯 맞장구를 쳐줬지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But...'하고 생겨났던 걱정과 의문들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생겨났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리뭉실 'We are so happy for you'하고 훈훈하게 그녀를 안아주고 우리는 각자 헤어졌다. 그리고 나 혼자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느낌을 비유하자면.... 마치 다시 군대로 소집되어 간 친구가 '그래도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더라, 이젠 이런 이런 것도 할 수 있어'하는 말에, 겉으로는 '그래, 다행이네, 열심히 해라'하는 격려의 말을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다신 군대 근처에도 가기 싫다'하는 기분?;;; 


설렘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누군가를 만나고, 저 사람도 내게 관심이 있는건지,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관계를 시작할지, 그런 모든 고민 끝에 설사 연인이 된다 하더라도, 이 사람과의 관계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고민하고.. 처음에야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즐겨듣는지, 취미생활은 어떤지 정도가 궁금하겠지만, 혹시라도 그 관계가 결혼이나 동거처럼 장기간의 연애로 이어진다면, 그저 좋아한다는 감정보다 생활패턴, 일상 생활에서의 사고방식은 비슷할지, 나와 맞을지 등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공원이나 레져센터 같은 곳에서 보게 되는 한 무리의 어린 학생들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게 슬쩍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림이 예뻤던 옛날 동화책을 다시 펼쳐본 듯한 회상어린 좋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레져센터에서 남자 아이 넷이 방금 운동을 마치고 나왔는지, 말끔히 씻긴 얼굴로 음료수를 사서 긴 소파가 두개 테이블을 마주보고 놓인 자리에 앉아 서로의 폰을 보며 뭐라 떠들고 있었다. 그 때 그 아이들 또래도 보이는 여자 아이 셋이 꺄르르 거리며 다가왔다. 다들 아는 사이인냥, 여자 아이들이 다가오자 둘씩 나눠 앉아있던 남자아이들이 한 소파로 몰려 끼어 앉았고, 그렇게 빈 맞은편 소파에 여자애 셋이 모여 앉았다. 여자애들은 뭐가 재밌는지 서로의 팔짱을 끼고 귓속말을 하며 꺄르르 꺄르르 거리고.... 남자애 둘은 여전히 서로의 폰을 보여 주며 빠져있고, 중간에 끼인 남자아이는 음료수만 연신 들이키고, 가장 끝에 앉은 남자아이는 살짝 다리를 떨며 여자애들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왠지 웃음이 나는거다. 마치 초등학교 때, 성장이 던져주는 혼란의 앞뒤 부분에서 나눠져, 여전히 노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던 남자아이들이나, 아직 이성에 대한 감정이 낯설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는 쑥맥의 남자아이들과 그 관심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보여주기 싫으면서도 보여주고 싶어하는 여자아이들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ㅎㅎ 


그러다가 문득 내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런 감정을 느끼겠지.. 어디 여행가면 이젠 부모와 노는 것보다, 경치를 감상하는 것보다,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또래의 이성들에게 더 관심이 가는 날이 오겠지. 아침식사를 하면서 주고받는 몇번의 눈맞춤이 더 설레는 그런 날이 오겠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적인 기분을 느낄 날도 올거고, 그렇게 가깝고 절대 변하지 않을 마음이 변해서 이젠 도리어 내게 더 심한 상처를 남기는 고통도 맛볼 날이 올테고... 


ㅎㅎㅎ... 그 당시를 지날 때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뒤집히고, 천국과 지옥을 맛보고, 심장도 여러번 깨져 다신 사랑따위 안해, 같은 소릴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 때가 살아있다는 실감을 절절히 할 수 있는 순간이다. 다른 것 다 필요없이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이 채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순간뿐일테니까.. 


물론 이제 30대인 나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 20대에 충분히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해봤기 때문에 왠지 내 인생에 할당된 연애량은 그럭저럭 채운 기분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착오 끝에 마침내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직까지는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관계를 유지할 거라는 전제를 하고 있고, 그 전제는 내게 안도와 작은 마음의 평화까지 안겨다준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생애의 전부인 듯한, 혹은 롤러코스터같은 연애를 하고 있는 당신이 살짝 부럽긴 하다. 심장이 산산조각나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보고 있는 당신은 이런 말 싫어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경험을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거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러니 깨지든 말든 일단은 사랑했음 좋겠다. 연애하는 당신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