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이방인이라는 자각

민토리_blog 2015. 7. 17. 05:57

얼마전에 남편과 한바탕 크게 싸우고 처음으로 차를 끌고 집을 뛰쳐나갔었다. 서러워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가며 울면서 운전을 했더랬다. 그래도 목숨은 소중한지라 신경은 날카롭게 가다듬고 보통보다 좀더 천천히 운전하면서, 일부러 안가본 길만 골라 달렸다. 그러다 결국 전혀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지고, 언덕을 가로지르는 뻥 뚫린 도로를 달리고 달려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는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차를 멈췄다. 그 때는 이미 오랜 운전으로 머리속이 비어있어서 더이상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하늘에는 해마저 쨍했다. 간간히 들리는 차 소리, 언덕 아래 보이는 농장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양들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곤 아주 조용했다. 숲이 있지도 않고, 그저 편평한 언덕만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점마냥 찍혀 있는 집들과 스티커마냥 붙어있는 양들과 말들... 아.. 영국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하는 그런 광경이였다. 


거기서 멍하니 앉아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땅에 정말 내가 있을 곳은 없구나. 


내가 한바탕 뒤집어놓고 온 내 집을 제외하니, 정말 이 땅 어디에도 내가 찾아갈 곳은 없는 거다. 그리고 다신 안볼 것 처럼 소리쳐놓고 온 남편을 제외하니, 이 땅에는 내가 찾아가 하소연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가족은 멀었고, 그 곳은 이미 해가 저문 밤이였고, 이 곳에서 만나서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무작정 찾아가 울음을 터트리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nice 하고 polite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 외로운 시간이 지나고, 남편과 화해도 한 후에는 그들 중 누구에게, "we had a horrible fight"하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이 땅에서 내가 아둥바둥 지내왔던 11년의 시간이 참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을 지나서, 이젠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내게는 늘 내 곁에 있어줄 남편이 생겼고, 내가 지켜줘야하고 곁에 있어줘야할 두 명의 작은 인간들도 생겼다. 그런데도, 우습게도, 여전히 외로웠고, 여전히 정착했다는 느낌보다는 잠시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건 2시간의 일탈 후에 집으로 돌아간 후, 남편에게 차를 끌고 집을 뛰쳐나간 나의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다시 잔소리를 듣고,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말다툼 2차전을 벌인 후 우린 화해했지만.... 그 이후 내 주위가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뭐랄까...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할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가 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살게된 Unfunished house다. 그래서 가구며 조리기구며 다 장만했어야 했는데, 이 곳에 얼마나 있게 될지도 모르는데 큰 돈을 쓰기 싫어 전부 발품을 팔아서 가능한 싼 중고로 장만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하면 부피가 큰 것이나 장식용 물품들은 사지 않는 편이다. 내 집이 아니니 물론 집안 장식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벽에는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고, 쓰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상자에 담아 창고나 다락에 보관해 놓는 식이다. 아이와 관련된 것도 부피가 있는 장난감은 일부러 사지도 않았고, 탈 수 있는 장난감은 누군가에게 얻어받은 것들로 아이들이 다 가지고 놀다가 중고가게에 다시 기부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들이다. 그러고보니, 정말.. 난 늘 떠날 준비를 아직도, 여전히 하면서 살고 있는 거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주위 친구들은 왜 떠나고 싶냐고, 이만하면 이곳에 정착할 법도 하지 않냐고, 아니라면 어디로 갈거냐고 묻는다. 물론.. 지금은 한국에서 떠나와있던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한국에 돌아간들 내 집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순 없을 거다. 그렇다해도, 이 곳 영국이 내 집이 되진 않는다. 내 제 2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남편도 영국과 연관이 없고, 그렇다고 스페인에 간다해도 남편 역시 스페인을 나와 살았던 시간이 나만큼 오래 되었기에, 그 곳 역시 우리에게 'home'이 될 순 없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섬이 되어서 일단 두둥실 떠다니고 있는거다.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정착한 'home'이 생기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