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해도 괜찮은 것을..
오늘은 첫째 꼬맹이 첫돌이 되는 날이다. 그래봤자 떠들썩하게 한국처럼 돌잔치를 할 것도 아니고, 설사 그런걸 계획한다 해도 초대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미역국이나 끓이고 케익이나 구워주자.. 그랬는데.. 어제 저녁 애들을 다 재우고, 내일 시간이 없을 수 있으니 일단 미역국을 끓여놓자, 해서 끓이고.. 그러다보니 둘째는 면종류를 좋아하는데, 싶어서 그럼 뭘해줄까 하다가 잡채를 만들자, 해서 요리를 하고, 생일케익도 굽고.. 밥도 새로 안치고, 설거지를 다 끝내고 잠시 주방의자에 앉아있자니.. 괜히 기분이 살짝 우울해지는거다.
남편이 3일동안 출장을 가서 아이들을 혼자 밤에 재우느라 이틀을 진을 빼고 (아빠가 늦게 오는 거라고 말을 했는데도, 꼬맹이들... 눈치는 빨라가지고.. 잠도 안자고, 서로 자기 방에 와달라고 울고, 하나 울면 다른 애도 따라 울고 -_-;;;), 어제도 그렇게 지친데다가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느라 완전 진이 빠졌는데도... 혼자 주방에 앉아 있자니 왠지 꽤나 허전한 기분이 드는거다. 둘째 꼬맹이 첫 생일인데 첫째 꼬맹이는 유치원에 갈테고, 남편은 일하러 갈테고.. 그럼 둘째랑 나랑 뭘하나.. 뭔가 특별한 걸 해주고 싶긴 한데.. 뭘할까 싶기도 하고, 뭘 좋아하나, 전에 수영장에 갔더니 좋아하던데 그럼 수영장에 갈까, 뭘알지도 못하는 꼬맹이에게 선물을 준들 나중에 첫째 꼬맹이가 가지고 놀게 뻔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남들은 뭐하나, 여기서도 아는 사람이 많으면 파티를 하기도 하지만, 보통 가족끼리 모여 식사를 하거나 같이 놀러가거나 하는데... 우린 그럴 가족도 없구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둘째 꼬맹이가 돌인거 기억은 할까 (기억 못했다 -_-), 나도 어릴 때 생일 챙김받아 본 적이 없는데 내 아이들은 그러기 싫은데, 등등...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간만에 우울증이 슬금슬금 몰려와 나랑 친구먹자며 친한 척 하는게 느껴지는거다;;;
그런 우울증 녀석을 밀어내고자, 오기를 부려서.. 아무도 기억못하고 챙겨주지 못하면, 내가 축하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주지, 하는 생각으로 집에 있는 재료를 탈탈 털어서 9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컵케잌을 굽기 시작했다;;; 10시가 다 되어서 20개 가량되는 컵케익을 완성해서, 하나는 남편 회사에 보내기로 하고, 하나는 자주 가는 모유수유 그룹에 있는 사람들과 나눠먹기 위해 상자 두 곳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또 케익 만드느라 엉망진창이 된 주방을 다시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다 끝내고 이젠 완전히 지쳐버려서 위층에 올라가 잠시 뻗었는데... 참... 나란 사람도.. 삽질을 골고루 하는구나;; 꼬맹이는 어쩌면 그냥 나만 있으면 충분할 수도 있는데.. 이런 뻘짓거리한다고 피곤해서, 지 밥 차려준다고 혼자 내버려 두는 것보다, 그냥 같이 놀아주는 걸 가장 좋아할텐데... 이것저것 음식을 가리지도 않으니, 잡채든 미역국이든, 그냥 뭐든 주면 잘 먹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헛웃음이 났다.
이런게 부모 욕심이구나.. 처음부터 아이에게 가족은 나와 남편, 그리고 오빠인 첫째 꼬맹이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조부모니 삼촌이니 고모, 이모니 챙겨주고 그러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게 없다고 그래서 왠지 쓸쓸할거라고 생각했던건, 순전히 내가 내 꼬맹이들 생일도 챙겨주지 않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서운했기 때문이고, 타지에 나와 있는 내 상황이 쓸쓸하고 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덮기 위해 내 아이가 아닌 내게 보상을 하기 위해 요리를 해댄 건 아닌지..
조심해야겠다. 엉뚱하게 내 상황과 감정을 아이들에게 이입하지 않도록.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온전히 이 아이들이 가급적 적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행여 가지더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게 건강하게 키우는 것.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내 지나간 과거는 과거대로 놔둬야 한다. 내 아쉬운 현재도 내 인생의 아쉬운 부분으로 남겨놓자. 그런 것까지 내 아이들에게 아쉬운 부분으로 줄 필요는 없으니까. 내 인생도 가끔 감당하기 힘든데... 허허... 부모로 살기 힘들구나 ㅎㅎ
둘째야, 생일 축하한다. 첫째와 늘 함께 보다보니, 언제까지고 아기인줄 알았는데.. 이젠 걸음마도 뗄 줄 아는 꼬맹이가 되었구나. 성질도 이제 막 부리고 말이지 ㅎㅎ 건강히 자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
...........
덧. 어제 자정이 넘어서야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오늘 휴가를 냈다고 말해줬을때 어찌나 기쁘던지. 남편과 둘째 꼬맹이, 이렇게 셋이서 뭐 한 것도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첫째를 유치원에서 일찍 데리고 나와 같이 도서관에서 하는 Rhyme time도 가고, 책도 빌려오고, 그랬는데.. 그냥 그 자체만으로 참 특별하고 좋았다 ㅎㅎ 이렇게 소소할 수 있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