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는 시월드가 없다?
그래. 이 민감한 주제를 한번은 말해야했다. 결혼생활에 맛도 더해주면서 과하면 매운맛도 선사해주는 이 후추같은 관계를 말하고 싶었는데.. 사실 그동안 별로 할 말도 없었고, 꺼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면 일년에 한두번 정도, 그것도 길어야 이주정도 함께 하는 관계에서 별로 문제가 될 것도 없거니와 (그래도 그분들이 영국에 2주정도 오셨던 후에는 글을 써야했지만..ㅎㅎ;;;;), 시부모님이라는 위치를 벗어나더라도 그분들은 무척 괜찮은 분들이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글에 국제 결혼에 대한 미혼여성들의 생각이 실렸었는데.. 거기서 국제결혼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시월드가 없어서'였다. 나는 그걸 보고 잠시 웃음이 났는데.. 국제결혼에서도 시월드는 있다. 굳이 다르게 얘기하자면, '해외판' 시월드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는거다.
예를 들면... 아마 한국처럼 매해 명절마다, 생신때마다, 어버이날마다 용돈을 따로 챙겨 드려야 하는 건 없을 지 몰라도, 돈대신 선물을 보통 준비하고, 때론 식사대접도 해야한다. 선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히 어르신들 선물은 어렵다. 일년에 한번 하는 것도 아니고, 생신때, 어머니/아버지날 (여기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Mother's day, Father's day, 따로 있다), 크리스마스 등등 다 따로 챙겨서 뭘 선물해드리자면 정말 머리아파온다. 명절 때마다 가서 음식을 도와야 하는 건 없을지 몰라도, 여전히 가족행사에는 다같이 참여해야 하고, 언젠가는 내 집에서 가족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해야 하고, 그럴 때 음식준비와 뒷처리는 온전히 자기 몫이 된다. 그래, 결혼 준비때 예단이니 혼수니 신경써야 할 건 없다. 그런만큼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친한 친구 K의 부모님은 두분다 의사로 거대한 정원이 딸린 집과 수영장도 딸린 별장 등 으리으리하게 사시지만, 정작 그 친구는 결혼해서 월세를 내며 작은 빌라에 살고 있다. 이번에 집을 살 계획이라는데, 둘이 모은 돈을 제외한 자금은 은행대출을 통해 마련한다. 가족마다 다르겠지만 (그리고 요즘은 유럽에서도 독립안하고 부모님집에 얹혀사는 경우가 많아졌다지만...) 시부모가 돈을 빌려주더라도, 그건 정말 말그래도 '빌려주는'거라서 이자는 내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가능한 계획을 가지고 빨리 돌려주는게 낫다 - 그러니까 한국에서처럼 '부모가 부자면 나도 부자'라는 그런 등식이 그다지 설립되진 않는다는거다 (물론 유산상속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수중에 '내돈'하고 떨어진게 아닌 이상, 물질적 도움은 바라지 않는게 최고;;)
유럽은 다 개인주의니 남편만 행복하다면 시댁에서는 우리의 결혼생활에 터치도 안할 것이고, 시어머니나 시누이의 눈치를 보거나, 동서들끼리 눈치싸움 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가족마다 다르지만, 여기도 그런 거 다 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사이가 친할수록 내가 끼기는 좀 어색하고, 동서 한 명이 너무 잘나거나 혹은 시댁에 미운털이 박혀있으면, 같은 며느리로서 그것도 불편하다. 크리스마스 때 누가 큰 선물을 줘버리면, 작은 초콜렛이나 스카프 하나 준비한 입장으로 눈치도 보이고... 그럼 다음해 크리스마스 때는 왠지 더 큰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스트레스 받고... 난 줬는데, 상대방은 준비도 안했거나, 정말 성의없는 선물 주면 그걸로 기분상하기도 한다. 그동안 아이를 잘봐주시다가, 시누이가 아이를 낳는다니 이젠 시누이 아이를 봐줘야 해서 너희 아이는 봐줄 수 없다, 라고 하신 시어머니때문에 아기 유치원 시간을 늘리자니 돈이 들고, 이제 둘째도 임신했는데,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발을 구르는 영국인 친구가 있고, 얌체처럼 식사 때가 되면 근처에 와있다며 연락을 해서 밥도 얻어먹고, 차도 얻어마시고 그랬으면서 정작 다른 가족들을 초대해야 해서 식사 준비 좀 같이 도와달라고 하니, 바쁘다며 발을 빼는 얄미운 시누이를 가진 영국인 친구도 있다. 자꾸만 자기 아이들과 큰형님네 아이들을 비교해대는 시어머니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엄마도 만나봤고... 사실 이만하면 한국의 '시월드'와 별로 다를 것도 없어보인다.
여기에 '외국인 며느리'라는 새로운 조건을 첨가시키면, 살짝 시월드의 형태가 바뀔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외국인 며느리인 당신을 아주 배려하면서 챙겨주던가, 당신을 미운오리새끼마냥 바라보거나...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좀 어색해하더라도 당신을 배려하려 해줄거고, 그들이 무심코 당신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던진다면, 그건 많은 경우 그저 '모르기때문에' - 한국전통혼례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찾아 보여드렸는데, 그걸 보고 내 시어머니가 '일본 스타일같은데?'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_- - 발생한다. 내 가족과 시댁 가족 모두 외국 문화를 접한 경험이 많고, 서로의 나라를 결혼식때문이라도 오고가며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만큼 외국인 며느리의 입장으로서 시댁과의 관계가 좀 편해지긴 한다. 내 경우만 예를 들어도,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리고, 시댁 가족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식을 보고, 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저렇게 막연히 한국을 중국과 일본에 빗대어 '상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테니까....
여기서 잠깐, 내 시부모님이 '한국인'인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아주 흔한 짐작들을 얘기해보자면...
1. 맵거나 강한 맛이 나는 걸 좋아한다.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음식을 그렇게 먹는건 아니다!! 한국음식하면 김치만 떠올리는 대부분의 외국인들 생각과 비슷.. 한번 점심 때 시어머니가 시금치 국 비스무리한걸 요리하셨는데, 한접시 다 먹고 더 줄까, 하시길래 괜찮다고 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가 시어머니에게 "얘는 강한 맛이 나는걸 좋아하는데, 이렇게 밍밍하니 좋아하겠냐"하며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아... 그 때 굳어진 시어머니 표정.. 시아버지, 진짜 왜그러세요?!! ㅠ_ㅠ)
2. 한문으로 된 걸 당연히 다 읽고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한자를 학교에서 배우고, 많은 한글단어가 한자에서 파생된 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한자를 중국인이나 일본인처럼 일상생활에서 늘 쓰진 않는다구요!! 스페인어의 대부분이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고,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우지만 실제로 라틴어로 써진 모든 글을 스페인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ㅠ_ㅠ 사실 이것때문에 다시 한자공부를 시작했다. 아우 진짜.... 제 지식의 강을 넓혀주시는구요 ㅠ)
그 외 한국에 대해서는 사람이 붐비는 홍콩의 모습과, 전통복을 입고 치장한 일본의 모습, 중국의 시골 풍경, 공손히 두손 모아 합장하며 '나마시떼'하는 인도 승려의 모습 등을 토대로 짐작하고 계신다. 뭐.. 직접 보신 일이 없으시니.. 뭐라 할 것인가.... 에휴...
어쨌건, 다시 돌아와서... 국제결혼의 경우, 가장 좋은 경우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시댁이 (여행/방문 등을 통해) 외국인 며느리의 나라나 관습, 문화에 대해 이해가 충분한 경우, 그렇지 않더라도 관심이 있어서 결혼 후라도 외국인 며느리의 나라를 방문해보거나, 그 나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 경우다. 그런데 만약 시댁이 한국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면 (혹은 그다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면), 사실 가장 편한 경우(!)는 나처럼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다. 그럼 따로 굳이 이해를 시켜야 할 필요도 없고,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오해를 피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말이라도 잘하면 어떻게든 설명이라도 하면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텐데.. (하긴 손짓발짓 다해가며 세계대전 도중 한국과 아사아전역에서 이루어진 일본의 만행을 설명한 까닭에 더이상 그분들은 농담으로라도 일본이 아시아의 대표모습인냥 하시는 말들은 안하게 되셨지만 ㅎㅎ...) 그렇지도 못한 상황이면.. 시간과 거리를 두고 차근차근 이해하려고 하는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내 나름의 합리화일지도?).
사실 말이 그렇다는거지, 가까이 살면서 늘 부대끼는 사이가 아니라면, 길어야 하루 이틀, 혹은 일/이주일 정도는 사회화된 인간답게 기분이 좋던 말던 그정도는 감춰가며 적당히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만날 때마다 "How are you? - I am fine, thank you, and you? - We are all well too. Thank you" 한 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수퍼마켓 등에서 연습한 날씨 얘기하기 등의 대화법을 펼쳐야 할 수도 있겠지만;; 시댁 가족들이 자기들만 아는 추억의 얘기를 시작하며 웃으면,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라도, 혹은 이미 몇번이나 들었던 얘기라도 관심을 보이며 같이 참가하려고 하고, 시댁 가족들 사이에 다툼이 있거나 냉기가 흐르면, 알아서 분위기 파악해서 중간에 끼지 않으려고 하고.. (아마 결혼하신 대부분의 분들이 다 아시는 이야기일듯...).
어쨌건, 내게도 시댁이란 대체로 그런 곳이였다. 내 시부모님들은 주위에 사람들도 많으시고 침착하고 차분하시면서 사리분별을 하시는 분들이라.. 자식들의 문제도 자식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조언을 해주시긴 하지만, 그렇다고 강요하시거나 간섭하시진 않으시고.. 반면 당신들의 사회활동도 활발하시고, 자식 둘이 오래전에 독립한 까닭에 두분만의 생활방식도 꽤 오래동안 고수하고 계시기 때문에.. 시댁에 갈때면 가능한 그분들의 생활패턴에 맞추려고 하고, 가끔 성격 강한 남편과 시아버지가 부딪칠 때면 그저 조용히 방에 들어가 상황이 종료되길 기다리는 정도만 감수하면 되었다. 물론 말이 썩 잘 통하는 것도 아니여서 (이것도 핑계인데.. 솔직히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을 땐 좋은 구실이 되곤 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냥 시부모님과 남편의 스케줄대로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그냥 남의 집에 잠시 놀러왔다 라는 기분으로 적당히 쉬고, 돕고 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 둘을 데리고 거의 석달을 시댁에 머무르는 동안, 그 '적당하던' 관계가 무너지고, 그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게는 이번이 그분들을 내 '시부모님'으로 인식하게 된 전환점이 되었다...
솔직히,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유럽의 분위기 상 연인이거나 결혼만 한 사이에서는 그렇게까지 시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일이 별로 없다. 남편이 유달리 자기 가족과 돈독한 사이이거나 시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좀 남다르시다면 몰라도, 대부분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관계가 아이 - 그러니까 손주 - 가 태어나면 조금 달라진다.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는 거다. 내 사랑하는 자식의 핏줄을 이어받은 또 한 명의 새로운 가족, 내 자식의 어릴 때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그렇게 작던 내 자식이 언제 이렇게 커서 부모가 되었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생명체는 가만히 있어도 사랑과 관심을 끌어모으니까.... 그런데 어디 아이가 관상용이던가;;;; 이 손많이 가는 생명체를 기르기 위해 부모는 도움이 필요하고, 주위에 조부모가 살고 있으면 자연스레 도움을 요청하거나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또 그만큼 그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게 되는거다.
주위에 육아와 관련해서 시부모님과 갈등이 가장 많이 생기는 경우는 대략 두가지인데... 첫째. 간섭을 너무 심하게 하거나, 혹은 둘째, 아예 나몰라라 할 때...
예를 들어 약사인 영국인 친구 D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본인만의 치료법(?)을 알려주셔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다른 영국인 친구는 자기가 아이를 혼낼 때, 옆에서 아이편을 들어주거나 그만하라고 말려서 자꾸 아이가 자기 말을 안듣고 시어머니 뒤로 숨으려 한다고 속상해 했고.. 발렌시아에서 만나 알게된 독일인 R같은 경우는 아기가 울 때마다 침실까지 들어와서 아기를 달래주겠다며 아기를 안고 나가버리는 스페인 시어머니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고... 반면, 두번째의 경우, 어떤 엄마는 시부모님이 집에 오셔도 아이를 안아주는 법이 없고, 아이가 울거나 하면 그저 "Max is crying"하고 자기를 부른다며, 어떨 땐 차라리 안오시는게 자길 돕는거 같다고 말했다. 다른 친구는 아기 기저귀도 한번 갈아주지 않으면서 아기 음식이나 집안의 정리정돈 상태에 대해 지나가는 말인 척 코멘트하는 시어머니가 얄밉다고 했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죠? ㅎㅎ)
부모입장에서는 나도 이제 부몬데 내가 내 자식 알아서 키우게 좀 놔두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그래도 자기들 손주이기도 한데 좀 봐주면 안되나 싶어 서운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조부모된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다. 나도 자식 키워봤고, 또 내 손주이기도 하니까 신경쓰여서 나름으로는 걱정해준다고 하는 말이 듣는 입장에서는 간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행여라도 뭐라고 말하거나 아기를 돌보는게 도리어 부모된 이들에게는 간섭이 될까봐 아무 것도 못해주고 있는건데, 그런 모습이 아예 손놓고 있는 무심한 조부모마냥 비춰질 수도 있는거고... 그래, 대화를 하면된다. 그리고 그게 말이 쉽지;; 며느리된 입장에서는 차라리 자기 부모면 대충 성격파악도 되고, 맘에 안들면 안든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대놓고 말이라도 하지만 (물론 친정가족이 더 웬수 같은 경우도 있다;;;;), 시부모님은 조금 더 어렵다. 거기에 바로 의사소통이 안되는 외국인 시부모님을 두고 있으면 더~ 어렵다 ㅜ_ㅜ
나같은 경우, 예전에도 사실 남편없이 첫째 꼬맹이만 데리고 시댁에 머문적이 있긴 한데.. 그 때는 아이가 하나뿐이다 보니, 버겁긴 해도 어떻게든 혼자 해결할 순 있었다. 점심식사 후 시부모님의 시에스타 시간을 위해 꼬맹이를 데리고 거의 텅빈 거리를 배회하거나,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같이 이런저런 놀거리를 찾아 놀기도 하고, 저녁에 외출이 잦으셔도 아기 혼자는 나 혼자 먹이고 씻기고, 재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가 둘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갈등도 많아졌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경우를 두 아이와 함께 있다가 다 겪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전에는 시부모님의 스케줄에 맞추는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였는데.. 이번에는 아이 둘을 데리고 있다보니, 그게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일주일에 2-3번, 심저어 많게는 4번까지 아무 도움없이 저녁에 아이 둘을 돌보고 재워야 하는 건 물론이고, 주말에도 그분들 스케줄을 따라서 아이들을 움직여야 하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아이들이 지쳐서 울거나 짜증을 부리면 그분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아이들에게 - 특히 첫째에게 엄하게 대하거나 하셨는데... 그분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리고 두분이서만 조용히 지내오시다가 난데없이 어린 아이 둘이 집에서 난리를 치는게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라는 걸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상처처럼 새겨지는거였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첫째 꼬맹이 뺨을 때린 적이 있는데, 그 땐 놀라서 말도 안나왔다. 남이라면 화라도 낼텐데.. 아이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그렇고, 또 꼭 그러셔야 했냐고 따져 묻자니, 적절한 말을 찾아서 어떤 순간에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놀라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 속에서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내가 뺨을 맞은 양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 속에서는 내가 여기 왜 왔나, 하는 후회부터, 내 스페인어가 좀더 나았다면 하는 스스로에 대한 화남과, 시부모님에 대한 원망, 그리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별의별 생각들이 왔다갔다 했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욱씬거린다.....
또 한번은 다같이 수퍼마켓에 갔다가 첫째를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 둘째를 데리고 먼저 차에 가계시라 했는데.. 돌아오니 주차장에서부터 둘째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였다. 놀라서 첫째를 안고 차로 달려가니 둘째는 카시트에 눕혀진체 뒷좌석에서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고, 시부모님은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에 가득찬 표정으로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계신거 아닌가. 가서 일단 첫째를 차에 넣고, 둘째를 안아 올리니 꺼억꺼억거리다가 우유를 다 토해냈다. 머리속으로 '왜 울었지? 왜 안아주시지도 않은거지? 왜?왜?'하는 질문이 차고오르면서 다 올려내는 둘째 모습에 가슴이 메여지고, 그런 모습에는 아랑곳없이 차안에서 이것저것 만지며 뭐라고 떠들어대는 첫째 모습에 또 시부모님의 '쉿'하는 소리가 들리니, 첫째가 또 혼날까봐 마음도 불안해지고...
둘째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아직 어려서 시부모님이 뭘 해야할지 몰라서, 아마 안아주셨다가 계속 우니까 놔둔게 아니냐고 남편이 나름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첫째가 맞은 거에 대해서는 남편도 충격이라고..) 어쨌건 혼자서 그 모든 걸 겪으면서, 그저 '좋은 분들'이기만 했던 그분들이 내게 좀더 복잡한 의미를 가진 '시부모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제야 시'부모님'처럼 애증을 주고받는 '가족'이 된건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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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냥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저처럼 만약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시부모님이 내 아이를 때리는 등 (물론 심하게나 나쁜 감정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강한 훈계의 모습을 보이신다면 어떻게 대처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머리속으로는 나중에 따로 대화를 해서 그런 모습에 나도 상처를 받았다, 안그러셨음 좋겠다, 하는게 최선인거 같은데.. 남편이나 친부모님, 혹은 친형제라도 그러겠는데.. 시부모님이랑은 어쩐지..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거기다 말도 안통하는데.. 나중에 남편보고 얘기하라고 하자니 내가 마치 고자질해서 남편 뒤에서 험담한거처럼 보일거 같기도 하고...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