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인맥쌓기?
이번에 한국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뉴스 하나를 보게되었는데요, 유치원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아이 인맥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순혈(?) 엘리트 코스의 일환으로 영어유치원 같은 사립 유치원은 비싸도 자리가 없다더라, 뭐 그런 내용이였죠. 사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게 아니니 실제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 저도 내년 아이 유치원 입학때문에 고민을 했던지라 흥미롭게 읽다가, 저 "인맥쌓기"란 말에 잠시 멈춰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영국에서는 만 3세부터 정부의 지원으로 유치원 입학이 가능해지는데요, 공립 같은 경우 여기도 사는 지역에 맞춰 일단 지원서를 넣어두고 기다린답니다. 보통은 근처 공립 유치원에서 그 지역 아이들을 대부분 수용할 수 있지만, 여기서도 인기 좋은 지역의 공립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을 경우 해당지역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우선순위로 자르기 때문에 미리 이사가두는 부모들도 있어요. 물론 유치원이야 아이가 3살 이전부터 보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사립이라 하더라도 정부지원이 가능해서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초등학교 쯤으로 넘어가면 여기서도 교육에 신경 좀 쓴다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이 활발해지죠. 그리고 그때부터 어떤 간격(!)이 생기는 건 사실이에요.
영국도 지역에 따라 중산층 (middle class)들이 몰려있는 동네, working class 들이 몰려있는 동네가 나누어지기 때문에, 사는 곳만 잘 골라잡아도 나름 괜찮은 공립에 보낼 수 있어요. 실제로 좀더 좋은 공립에 보내기 위해 6개월간 그 지역의 집에 월세를 구해 들어간 후, 아이의 입학허가가 나면 다시 본래 집으로 돌아가 장거리 통학을 시키거나, 그 지역에 사는 가족 혹은 친척 집으로 주소를 임시로 바꿔두거나 하는 영국인 부모들도 있답니다. 즉, 아이 교육에 있어서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열올리는 부모들은 다 비슷하게 있다는거죠.
그런데, 그렇게 따로 이사가기도 그렇고, 주위에 괜찮은 공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가까운 공립에 보내자니 별로 내키진 않고, 이왕이면 믿을만한 학교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라고 생각하면 사립을 선택하죠. 물론 그만큼의 재정을 감당할만 하니까 보내기도 하구요. 그럼 그렇게 같은 사립을 보내는 아이들끼리 어울려 나중에 엘리트 인맥이 만들어지는게 아니냐,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1. 사립을 보내는 부모들은 교육에 대해 비슷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때문에 사립이 공립보다 좀더 나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거나 좀더 다양한 교과과정이나 방과후 활동의 선택 폭이 넓은 건 사실이죠.
그런데,
2. 어린 아이들의 인맥은 여전히 부모에 의해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같은 유치원에 간다고 그 아이의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되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막말로 한동네에서 계속 살더라도 부모들 사이에 아무 교류가 없는데, 나랑 잘 놀았던 유치원에서의 그 짝꿍과 아직 만나거나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리고 유치원 등에서 알게된 아이들의 생일 파티 등에 단체로 초대되서 몇 번 가보면 결국 부모들의 수준, 취향, 성향과 맞는 사람들끼리 친해져서 따로 사적인 자리에서도 만나고, 그렇게 자주 보니까 아이들끼리도 친해지는 거지, 그저 같은 유치원, 학교에 있다는 것만으로 뭔가 인맥이 생긴 거 같다는 건 착각이에요;; 물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무리없이 잘 놀면 좋겠지만, 내 아이가 누구와 잘논다고 해도, 내가 상대방 부모와 어울리지 않으면, 아이에게 그건 그냥 한때 재밌었던 기억 중 하나로만 남지, 유지되진 않는다는 거죠..
그래도,
3.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유명하다는 비싼 사립 유치원을 보내서라도 내 아이에게도 좋은 인맥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부모 자신의 인맥부터 넓혀야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립, 공립을 떠나서 부모 스스로가 다른 부모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으면, 그래서 그렇게 부모가 다른 이들과 친해지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자식에게도 호의를 갖게 되고, 그렇게 친분이 유지되면 아이들이야 빨리 친해지니까요. 그런데, 당장 부모는 그 비싼 사립 보내놓고, 교육비 번다고 낮이고 밤이고 일하고, 사람 만날 기회는 커녕 아이 아플 때도 당장 못달려올만큼 바쁘게 살면서, 이렇게 비싼데 보내놨으니 난 네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다, 그러니 열심히(?) 다녀서 장차 네게 도움이 될 인맥을 쌓아봐라, 하는건..... 좀 ...무책임한 것 같기도 하고... 자기합리화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제야 말도 좀 하면서 세상과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그런 식의 차별을 보여주는게 그들의 자존감 형성에 그렇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그리고,
4. 인맥은 서로 뭔가 주고 받는 등가관계에 있을 때 유지되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떤 현실적인 도움이든, 정신적인 안정이나 위로 등, 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게 있다고 서로 생각할 때 유지되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인맥이 좋은건 아니란거죠. 유학 때 그런 사람들을 좀 봤는데... 한국인들끼리라도 그냥 데면데면하다가 언어연수생이 아니라 캠브리지 대학 학생이다, 그러면 태도가 달라지는 분들이 있는 거에요. 갑자기 칭찬을 한다거나 뜬금없이 안부연락이 온다거나, 말로만 "내가 진짜 맛있는거 사드려야 사는데.." 그러시다가 꼭 뭘 부탁해요. 그렇게 부탁을 들어주고나서 커피라도 하나 사주심 좋은 편이고, 대부분 정말 고맙다, 다음에 꼭 맛있는거 사겠다, 아님, 한국오면 꼭 연락해라, 뭐 그러고 말죠. 그러다 또 뭐 정보 필요하거나 부탁할거 있음 연락오고... 어쩌다 부탁을 못들어 주게 되면 또 태도가 달라지고... 그런데 또 그런 분들이 어디 가서는, "내가 캠브리지 대학 다니는 애를 아는데..."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인맥(!)인냥 팔고 계시더란 말이죠;;;
그런 분들 스스로는 나름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뿌듯해하실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주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빚을 내서 내 아이를 유명한 사립유치원, 학교, 학원에 보내더라도, 내 아이가 "유명한 아무개의 자식과 같은 유치원 출신" 정도 될진 몰라도 그것만으로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될 인맥이 되진 않을거란거죠.
또 사실
5. 인맥은 다양할 때 빛을 발하는거거든요.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그럴 때 내게 진심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사람을 알아두는게 좋지, 나도 의산데 친구들도 죄다 의사라면 그것도 좀 그렇지않겠어요? (갑자기 의사가 아니면 친분관계도 잘 맺지 않으려던 남편의 친구 부인이 생각나네요;; 듣자하니 친하다는 이유로 너무 주위에서 사적으로 조언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기랑 같은 의사가 아니면 기피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예를 들면, 유학시절 왕족의 친척에서 유엔에서 일하다 온 친구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왔는데,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정말 도움을 많이 받은건 대학 건물 청소 담당분들이였어요. 그분들이 건물내 유지보수 등을 담당하시다 보니, 관계자전용 출입문 비밀번호도 가르쳐주셔서 건물 사이를 빨리 옮겨다닐 수도 있고, 행사 때 비품들도 빌려주시고, 어디 연구실 이번에 가구 바꾼다고 공짜로 의자나 스탠드 같은걸 얻기도 하고 말이죠 ^^
어쨌건 어차피 나중에 대학가고 사회 나오면, 싫어도 전공따라 직업따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니까, 어떻게 보면 차라리 어릴때 아이에게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해볼 수 있게 하는게 그 아이 미래 인맥 형성에 더 도움이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아이에게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인맥을 쌓게 해주고 싶다면, 비싼 사립이나 유명하거나 좀 있는 집 자식들이 많이 간다는 유치원, 학교, 학원에 빚을 내면서 까지 해서 보낼게 아니라...
아이가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을 갖도록 건강하게 키우는게 더 낫지않나 생각합니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밝고 긍정적이고,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은 사람과, 문서상으로는 뭔가 대단한데 만나면 지 잘난줄만 알고 남 배려도 안하거나, 뭔가 같이 있는게 불편한 사람 중, 누구와 같이 있고 싶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구김없이 성격 좋고 차별당하는 상황에 많이 노출되지 않은 애들이 크면, 알아서 지 삶에 좋은 인맥들을 만들어요.
뭐 결론은... 제발 아이를 어른들 잣대에 집어넣지 말고, 그냥 내가 해줄 수 있는 여건 안에서 기본적인 것(common sense)대로 사랑 듬뿍 줘가며 키우면 안될까요... 참... 아이들 키우기 힘드네요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