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완벽한 하루
- 정보
- KBS2 | 일 23시 45분 | 2013-02-17 ~ 2013-03-10
- 출연
- 송선미, 신동미, 김세아, 변정수, 사현진
- 소개
- 강남 초호화 유치원 아동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누구네 엄마’로 불리며 아이들의 인생에 모든 것을 올인 하는 대한민국 강남 엄...
글쓴이 평점
한창 진지하게 아이 공부를 시킨다고 몰아부치고 있는 엄마가 나오는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 드라마 3화를 보고 있는데 이제 7개월된 꼬맹이가 옆에서 꺅꺅거렸다.
눈이 마주치니 씩- 웃고는 다시 자기 놀 일로 들아간다.
그런 꼬맹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아가야, 공부는 너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거야" 하고 읇조렸다.
육아 관련된 글들을 읽다가 우연찮게 소개받아 보게 된 저 드라마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현재 한국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물론 그래도 드라마이니 만큼 극적인 요소들도 있긴 했지만.. 참 현실적이다, 라는 생각이 보는내내 들었다.
아기가 아픈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맞벌이 직장맘,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겠다며 유치원을 알아보고 다니다가, 3년전에 넣어둔 유치원의 자리가 났다는 말에 월 200만원 하는 강남의 최고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다른 강남의 엄마들. 룸살롱 출신이였다가 강남 사모님으로 팔자 고친 후 자기 딸만큼은 최고의 공주로 만들기 위해 열정을 다 쏟는 두번째 맘, 서울대 출신이지만 별로 가진 것은 없으니 스스로 과외를 하고 다른 엄마들을 학원에 소개시켜가며 어떻게든 강남에 머물며 자식을 영재 교육 시키려는 세번째 맘. 겉으로는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재벌 맘이지만 애정없는 부부관계에 지쳐서자식에게만 모든 것을 - 돈으로 - 해주려는 네번째 맘.
보고 있자니 아기를 낳기도 전에 좋다는 어린이집에 원서를 넣었다는 친구가 생각났고, 전문대를 나와 몇년간 돈 많은 집의 남자만 쫒아다니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한 후, 결혼 후 시부모가 다해주는 대신 이대를 가라고 들들 볶는 바람에 몇년간 때아닌 수능 공부에 시달리게 된 아는 언니가 생각났고, 자기 딸만은 최고로 만들겠다고 SKY대 법대가 아니면 보내지 않겠다며 서울의 고시원에서 3년간 딸과 수능공부를 한 친척분이 생각났고, 10년만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자기 딸이 발레를 하는데 영국 국립발레단에 관심이 많다며 내게 살가운 척 하던 강남에 사는 사촌이 생각났다.
물론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였다. 여기서 가끔 만나게 되는 한국 엄마들도, 그 기준이 SKY에서 옥스브릿지로 바뀌었다 뿐이지 하는 행태는 다 비슷하다. 한국에 아버지가 남고 엄마와 자식들만 영국 국적인 경우도 많고, 심지어 대학에서 안식년으로 잠시 방문하러 오는 교수들의 경우, 편법을 써서 자기는 영국에 있지 못해도 어떻게든 자식과 엄마를 좀더 영국에 오래 머물게 하려고 하는 분들도 많이 봤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다 싶다가도.. 가끔은 참 무서워지곤 했다. 정말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좀 '정도껏' 하면 안되나.. 싶다가, 그 '정도껏'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난 어릴 때 그 흔하다는 피아노 학원이나 속셈 학원 한 번 다닌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유치원도 다니지 못했으니, 8살 때 초등학교 입학이 내게는 정규 교육과정의 시작이였다. 굳이 내 부모가 자식 교육 철학이 투철해서라기 보다, 내가 어릴 때 집이 가난했고 집안사정도 안좋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내 교육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치된채 초등학교 입학식도 부모없이 혼자 갔다가 뒤늦게 찾아온 고모를 따라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까지 사립교육이라고는 고등학교 방학때 근처 단과학원의 수업을 한두개 끊어 들어본 것을 제외하고는 없다.
내 경험이 그러하다 보니.. 난 사립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좀 부럽곤 했다. 초등학교때 음악시간이면 자랑스럽게 앞에 나가 피아노 반주를 하던 이쁘장한 여자아이나, 미술시간에 석고상을 낯설어 하지 않고 쓱쓱 잘로 연필로 그림을 그려대던 남자아이, 다니는 학원 별로 무리지어 다니던 반아이들, 내가 전혀 모르는 영어단어들을 자기끼리 떠들어 대며 나를 무시하던 사촌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위축되고 부러웠었다. 그렇다고 크레용도 어디서 얻어와서 몽땅한 것들만 쓰던 형편에 그 비싼 돈을 내고 학원을 보내달라 할 순 없는 노릇이였다. 그래도 억울한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공부야 그렇다 쳐도, 솔직히 예체능같은 건 학교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진 않으니.. 사립교육을 받지 않는 이상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는 잘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쪽은 계속 뒤쳐진다는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아기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도 어릴 때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놔야 귀가 트이지 않을까.. 뒤늦게 대학교 가서 합기도를 시작했을 때, 날고 기던 꼬마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래도 어릴 때 운동하나는 시켜야지, 하고 생각하고.. 언어야, 이미 3개국어를 해야하는 상황임에도, 이왕이면 다른 것도 미리미리 들어놔야 나중에 언어를 배울 때 쉽다는 말에, 그럼 다른 나라 친구들을 꼬드겨서 가능한 많은 외국어를 듣도록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부모가 둘다 공학박사에 인문학도 공부했으니, 그럼 얘는 다른 것에도 좀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심지어 대학은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 캠브리지에서 졸업할 때, 조모와 손자가 나란히 졸업하던 게 생각나서 그럼 이 애도 나와 동문이 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허허... 이렇게 딱 듣고 보면 누가 날더러 극성엄마가 아니라 하겠는가! 이대로면 정말 드라마에 나오는 강남 엄마들 뺨도 치겠다!
그런 욕심이 들 때마다 내가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은..
먼저 이 아기가 내 소유가 아닌, 자기나름의 생각과 판단력을 가진 고유한 존재라는 걸 상기한다. 물론 어릴 때 보고 배우는 환경이 아이의 성격이나 성향을 결정짓는데 큰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이 아기가 나나 내 남편의 축소판이 아닌 전혀 다른 제 3자라는 걸 생각하면, 내가 남의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아이의 인생에도 내가 참견하거나 간섭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두번째 엄마의 경우처럼, 아이가 내게 주어진 제 2의 인생이 아니고, 독립적인 존재인데, 거기에 내 모습을 투영시키면 결국에는 나나 아이가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로는 이 아기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확인시킨다. 지금이야 이 아이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하지만, 결국 자라면서 아기는 독립해 갈 거고, 현재 내 역할은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특히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게... 엄마들 모두 '난 이 아이를 위해 나를 희생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래서 아이가 자기 뜻에 따르지 않을 경우, '내가 널 위해 참은게 얼만데!'하고 배신감마저 느끼며 화를 내고 스스로 좌절까지 하는 거다. 그런데 솔직히 아이는 엄마를 보고 날 위해 희생해주세요, 한 적이 없단 말이다.. 결국 엄마 자신의 선택이였고, 그게 엄마와 아이 둘의 목을 조인 것 밖에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는 스스로 행복해 지려고 한다. 아이가 내게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아이가 행복한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듯이, 아이도 내 상태를 은연중에 느낀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꾸미려 들어도 아이는 눈치 챌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으면 결국 아이도 행복하진 않을거란 생각에, 일단 내 행복부터 찾으려고 노력한다. 드라마에서도 엄마들 자신은 행복하지 않으면서 아이들 더러는 '너만 잘하면 돼'라고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거다.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잘해서 엄마가 화를 덜 내도록 해야지'하고 스스로를 몰아치기나 하겠지....
아... 정말 자식 키우기 힘들다. 매 순간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마냥 그 엄마들이 너무 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건...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본인도 힘들고 잘 모르고, 정답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최선이라 믿으며 그만큼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덩달아 아이들마저 몰아부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내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정말 화이팅이다. 특히, 이 수많은 경쟁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살아남았지만, 또 내 자식이 그 경쟁의 소용돌이로 휩쓸리는 걸 바라보며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나라 한국의 어머니들... 정말.... 화이팅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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